비밀의 화원 네버랜드 클래식 11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타샤 투더 그림,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내게는 100권짜리 계몽사 어린이 문고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장서를 가진 어린이였다. 강원도의 바닷가에서 나만큼 책을 많이 가진 아이는 없었다. 그게 열살 무렵. 나는 당장에 백권을 다 읽을 수 없었어도 날마다 행복했다. 비밀의 화원. 클로디아의 비밀. 동굴의 마녀. 빨간머리 앤...루슬란과 루드밀라....등등 최고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100권이나 내 책꽂이에 꽃혀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해진다. 나는 그 책의 절반 쯤은 탐독하고 절반쯤을 설렁설렁 그림이나 넘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0개나 되는 멋진 이야기들이 항상 내 곁에 있었고, 어디 도망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어 잠들때마다 책장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커 나가면서 나의 독서는 어린이책을 떠나 세계문학전집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다양한 책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어린이책이라니?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어린이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내 독서 목록에 어린이책을 한두권 더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릴때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가를 깨달았다. 요즈음엔 너무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온다. 시공주니어의 네버엔드 클래식 목록은 바로 그런 책들이다. 우선 훌륭하게 제본한 양장본이며 원작을 완역한 작품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어릴 때 우리가 읽었던 동화책은 번역이 그리 좋지 못했고, 내용도 마음대로 편집된 것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마도 완역된 비밀의 화원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이야기의 진가를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지난 시절엔 어린이책이 그저 줄거리를 전달하면 된다는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다시 읽기 시작한 어린이책은 문학적으로도 대단히 훌륭해서 문장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읽어야 그 개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누구나 비밀의 화원의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겠지만 새롭게 번역된 책을 읽으면 분명 줄거리 이상의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메리나 디콘, 콜린 세 어린이의 뜰로 조심스럽게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죽음과 함께 10년 동안 갇혀있던 아내의 뜰. 크레이븐씨는 10년 동안 슬픔에 싸여 살았고 뜰의 열쇠와 함께 자기 마음도 땅속에 묻어 버렸다. 그에겐 사랑도 삶의 희망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뜰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밀의 화원의 배경이 되는 곳은 요크셔의 황무지다. 주인공 메리는 처음 황무지를 보았을 때 그곳이  바다와 같다고 생각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황무지는 황량하고 괴기스럽고 음울하다. 그러나 비밀의 화원 속의 황무지는 신선한 공기로 아이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갖가지 아름다운 꽃과 풀들과 동물들이 가득한 따뜻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황무지의 신선한 공기는 못된 아이의 마음을 순하게 하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병약한 아이를 걷게도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삶을 생각했다. 어린이다운 마음이 무언지 다시금 깨닫고 싶다면 고전 어린이 명작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아이들은 매일매일을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아침이 되면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멋진 하루를 보낼 생각으로 가슴 벅차한다. 그리고 날마다 쑥쑥 자라고 있으며, 무언가를 가꾸고 키워낸다. 어린 시절에는 나도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기대에 차 있었고, 아침마다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곤 했다. 공상을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고,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오후가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은 어쩌면 이리도 아이의 마음을 잘 그려낼 수 있었을까.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 글은 어린이들보다 어쩌면 어른들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인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은 자기들과 똑같은 아이들의 모험을 즐기면서 행복해할 수 있을 테고,  어른들은 잃어버린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심지어 교훈을 얻기도 할 것이다.

어린이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명랑한 생각만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나를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때로 이 글 속의 크레이븐씨처럼 시커먼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짐을 놓으려면 아무래도 책 속의 아이들처럼 자신에게 좋은 마법을 거는 방법을 배워가야할 것이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일어난다. 그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엄연한 진실로 통한다. 생각하는 대로 마법을 거는 대로..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아가, 네가 장미를 가꾸는 곳에 엉겅퀴는 자랄 수가 없단다.....

어릴 때 읽었던 책에는 모든 등장인물이 표준어를 썼다. 그리고 버릇없는 데다 신분이 높은 아이 메리도 하인이 어른이라면 무조건 존댓말을 쓰게 나왔다. 그런데 새로운 번역에는 요크셔 사람들은 촌스러운 사투리를 쓰고, 메리와 콜린은 항상 무례한 말투를 쓴다. 원작의 묘미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요크셔 사투리는 거의 충정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섞어 놓은 듯한 이상한 말투로 번역이 되었는데 처음엔 거슬리다가 어느 정도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그게 정말로 요크셔 사투리 같았다. 그랬어예이~ 밥 먹었어예이?

비밀의 화원 너무 재미있거가꾸 시간이 지멋대루다 가는 줄도 몰랐어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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