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장난감 日記
현태준 지음 / 시지락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전작 <뽈랄라 대행진>(안그라픽스, 2001)에서 자신을 '울트라 캡숑 엉터리 장난감 연구가'라고 소개하며 수집한 자료의 일부를 살짝 공개했던 재미난 아저씨 현태준. 그가 드디어 장난감에 대한 연구 성과(?)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냈다.먼저 아저씨가 수집한 장난감의 면면을 보자. 물은 제대로 안나가고 꼭지부터 빠지기 일쑤였던 싸구려 고무 물총,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구슬을 받아먹느라 바빴던 패크맨, 일본 만화 캐릭터를 흉내내 만든 정체 불명의 로봇들, 흔히 '조립식'이라 불렀던 프라모델에서 누이들이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까지, 모두들 사이좋게 모여 알록달록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칠팔십 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라면 여기에 실린 사진 하나 하나에 '맞다 맞아'를 연발하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추억은 누추할수록 아름답다고 하질 않았던가.

아저씨는 이렇게 장난감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눠서 끼리끼리 묶은 다음, 점점 사라져가는 학교 앞 문방구 이야기와 이미 사라져버린 어린이 잡지 이야기를 보태 씨줄로 삼고, 각 장난감에 얽힌 자신의 추억과 감상을 날줄로 삼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았다.땀에 절은 셔츠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변두리 동네의 낡은 문방구를 찾아다니는 퉁퉁이 아저씨. 주인 아줌마의 눈총을 받아가며 먼지 더미 속에서 그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가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쳐다보기만 했던 그때 그 로봇? 아니면 놀림 받을 게 무서워 차마 사지 못했던 예쁜 종이 인형?

높으신 분들의 안전을 염려한 사람들에게 무선 조종 비행기를 빼앗기고 툭하면 경찰서로 불려갔다는 모형점 사장님의 회상이나, 일본 것을 베껴 만들다보니 독일군 모형보다 미군 모형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TV 시리즈 <전투>에서처럼 늘 소수 정예의 미군이 이겼다는 아저씨의 놀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단순히 장난감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그때의 시대 상황이 묻어 나온다. 서투른 기술로 급히 만든 탓에 원작과 다르게 삐뚤 빼뚤 못난 얼굴을 갖게된 아톰은 당시 우리들-어른과 아이 모두-의 자화상이 아니었던가?

아마 아저씨에게 직접 물어보면 자신은 그런 심각한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면 재미없는 이야기는 관두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디자인과 키치>(시지락, 2002)의 어려운 설명보다, 촌스럽고 어설픈 장난감에 대한 아저씨의 애정에서 '사용 중심적 디자인 보기'라는 키치(kitsch)의 미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이 책의 숨은 매력이 있다. 키치 소비에 내재한 심리가 '향수', '과시', '대리만족', '놀이', '성적 유희', '풍자'라고 한다면 장난감 만한 키치가 없을 것이다.

나이 먹은 사람이 장난감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흉볼 것을 걱정하거나 서점에서 눈치를 보며 이 책을 몰래 읽는 분들에게, 이태준이란 소설가 아저씨가 남긴 '인형'이란 글을 들려주고 싶다.'나는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어린애처럼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진고개를 갔다가도 장난감 파는 집 앞에 가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요. 사지는 못하더라도 유리창 밖에서 기웃거리며 무슨 새 장난감이 나왔나하고 들여다보곤 한답니다. …… 인형을 볼 때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어떤 때는 눈물도 납니다.'(<어린이>, 1930년 2월호)아저씨! 똥폼 잡지 말고 같이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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