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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참...이거 거의 제 얘기더군요. 딱 대학가기전까지만...
인천에서 나서 고등학교를 나온 저로서는...저자 역시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더구나 세대도 같습니다. 제가 거쳤던 그 길을 그대로 밟았더군요. 뭐 책 내용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이 책에는 제가 황석영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역사를 느끼게 하는 큰 줄거리를 세세한 묘사로 하지 않고... 그냥 그 시절 그 세대라면 의당 겪었을 그런 이야기에 해보지 않으면 그걸 알 수 없는 묘사가 들어가 있으니 어찌 제가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고등학교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둘이서 새벽까지 이야기하고, 친구는 잠들고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이것저것 보는데, 친구가 프라모델을 조립하다 남겨놓은 것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밤을 새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탱크의 캐터필터를 조립하는데 한 손이 모자라서 친구를 깨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곤히 자는 친구를 깨우기 싫어 그냥 자기 손으로 다 해결합니다. 엄지 발가락까지 써서...이거 안해본 사람은 왜 엄지발가락을 쓰는지 모르거든요.
민방위훈련가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 3시간만에 다 읽고나니 할 일이 없는 겁니다. 덕분에 그 책을 읽고 제 인생에 대해 고민좀 하게 됐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82년 5승인가, 10승 올리고 60패던가, 65패로 꼴찌. 16전 연패기록. 당시 대전이 연고지던 OB를 상대로 20전 전패인가 그렇습니다. 삼성에게는 한게임 최다 득점, 트리플 안타 등 국내 프로야구상에서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러나 83년. 장명부, 임호균의 가세로 전기리그 2등, 후기리그 2등. 이때 장명부는 60 게임에 등판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긴데요, 암튼 어제 완투하고, 내일은 마무리하고 그다음날 완투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해서 82년 박철순이 24승인가 올려서 OB를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장명부는 무려 30승을 올렸습니다. 당시 프로게임이 70게임정도였으니 엄청난거죠?
그다음해인 84년. 삼미는 또 꼴찌로 전략합니다. 16연패 기록을 갈아치우고 18연패라는 대기록과 프로야구사상 첫 노히트노런 패라는 역시 전무한 기록을 세우며...이때 장명부도 건재했는데요, 장명부는 거의 패전투수였습니다. 뭐, 삼미구단주가 장명부가 83년에 30승 올리면 1억주기로 했는데, 실제로 올리고 나니까 못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장명부는 던질 힘을 잃어버린거죠. 구단주로서는 그 전해에 박철순이 24승 올려서 우승하고 정작 자신은 허리부상이 됐는데, 설마 장명부가 30승을 올릴 수 있으랴 했겠지요. 하지만 해버렸습니다.
승률 1할 2푼 5리. 저자는 삼미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이런 인생이 뭐 어떠냐고 합니다. 고생하며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중형차 몰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치기 힘든 공은 안 치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본을 받아 적게 벌어서 내 가족과 함께 그냥 오손도손 사는게 뭐가 어떠냐고 합니다. 자, 이쯤하면 '느림의 미학'이요, 소시민의 철학이 나옵니다.
하지만, 왠지 그냥 이 말을 흘려듣지 못하게 이 책은 말합니다. 해서 저도 결심했거든요. 그래 무리하게 살지 말자. 남들 집사서 돈 벌때 못 벌면 어때? 그냥 살면 되지. 큰집에 중형차 모는데, 난 소형자가용에 소형평수 아파트에 살면 어때?라고 말입니다. 근데 이 말을 내가 지킬 수 있을까요? 당장 부딪치는 건 돈에 관한 현실인데요...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고생해도 젊을때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