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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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

이 책을 읽기전 <콜롬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책에서 중국 만리장성이 아메리카 인디오들의 무덤이라는 사실과 서양중심의 20세기 초반의 세계사를 버리고 동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를 보았기에...심청이의 멀고 먼 동북아시아 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를 재배하는 중국 한 부호의 첩에서 아편장사 주인을 섬기는 기녀로, 대만에서의 창녀생활, 그러다 만난 동인도회사 직원인 영국인의 정부생활. 일본 오키나와로의 이주, 그곳에서 만난 오키나와 영주와의 결혼, 영주의 죽음 후 오사카의 기녀에서 을사조약후 인천으로 이주. 고향을 그리며 죽은 심청이.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우리의 근대사가 있다.

지하철에서는 물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아내가 뭐라해도 자기전까지 붙들고 앉아 3일만에 2권을 읽었다. 말로만 듣던 황석영 선생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글로 대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지만...예의 선생의 세세한 묘사는 묘하게 재미있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분명 고통이었을 그런 행위가 사랑하는 행위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심청의 자유의지로 그려진다. 그네에게 동정이 가다가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그네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게 된다.

심청이 화이팅! 하는 심정...그리고 그네가 한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열었던 요정에서 만난 남자. 그가 다시 죽고 혼자가 되었을때 나는 그만 그네에게 다시 동정이 가버렸다.

그 대목에서 밥을 해놓고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식탁에서 읽다가 혼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다 읽고 걸려온 아내의 전화. '오늘 늦어요. 식사는 어떻게 했어요?'

슬픔과 동정, 아픔, 그리고 희망과 함께 나는 밥을 고추장에 비벼 김치와 김과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심청이 먼 타국의 고장에서 그렇게 먹었을지도 모를 기분을 느끼면서...

외국의 역사서는 그런 비장함이 없는데...왜 우리네 역사는 그렇게 슬플까? 이 책과 같이 산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 그렇게 슬픔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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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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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슬프다. 아직도 홍세화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지적이 정당하고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슬프다.

책을 덮기까지 '왜 학교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걸까?'라는 아쉬움이 있었는데...마지막 장에 가서 말씀을 하시내요.

사실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사와 국사가 다르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문이 들어야 했었는데 그렇게 질문하지 못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모른다. 엉터리로 배워야만 했고, 그렇게 가르쳤던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아직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바보같은 제도교육에서 제대로 사회를 배우지도 못하고 민주주의와 공화국 개념을 배우지도 못하고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반민주적인 생각과 관습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는 못해도 최소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내가 '뭐 읽을 책 없어?'라고 물을때 소설을 권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권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은 꼭 권해서 읽히고 싶다. 지금 아내 배속에 있는 나의 2세를 위해서도 올바른 생각을 가진 엄마를 두고 태어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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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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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이거 거의 제 얘기더군요. 딱 대학가기전까지만...

인천에서 나서 고등학교를 나온 저로서는...저자 역시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더구나 세대도 같습니다. 제가 거쳤던 그 길을 그대로 밟았더군요. 뭐 책 내용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이 책에는 제가 황석영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역사를 느끼게 하는 큰 줄거리를 세세한 묘사로 하지 않고... 그냥 그 시절 그 세대라면 의당 겪었을 그런 이야기에 해보지 않으면 그걸 알 수 없는 묘사가 들어가 있으니 어찌 제가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고등학교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둘이서 새벽까지 이야기하고, 친구는 잠들고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이것저것 보는데, 친구가 프라모델을 조립하다 남겨놓은 것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밤을 새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탱크의 캐터필터를 조립하는데 한 손이 모자라서 친구를 깨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곤히 자는 친구를 깨우기 싫어 그냥 자기 손으로 다 해결합니다. 엄지 발가락까지 써서...이거 안해본 사람은 왜 엄지발가락을 쓰는지 모르거든요.

민방위훈련가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 3시간만에 다 읽고나니 할 일이 없는 겁니다. 덕분에 그 책을 읽고 제 인생에 대해 고민좀 하게 됐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82년 5승인가, 10승 올리고 60패던가, 65패로 꼴찌. 16전 연패기록. 당시 대전이 연고지던 OB를 상대로 20전 전패인가 그렇습니다. 삼성에게는 한게임 최다 득점, 트리플 안타 등 국내 프로야구상에서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러나 83년. 장명부, 임호균의 가세로 전기리그 2등, 후기리그 2등. 이때 장명부는 60 게임에 등판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긴데요, 암튼 어제 완투하고, 내일은 마무리하고 그다음날 완투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해서 82년 박철순이 24승인가 올려서 OB를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장명부는 무려 30승을 올렸습니다. 당시 프로게임이 70게임정도였으니 엄청난거죠?

그다음해인 84년. 삼미는 또 꼴찌로 전략합니다. 16연패 기록을 갈아치우고 18연패라는 대기록과 프로야구사상 첫 노히트노런 패라는 역시 전무한 기록을 세우며...이때 장명부도 건재했는데요, 장명부는 거의 패전투수였습니다. 뭐, 삼미구단주가 장명부가 83년에 30승 올리면 1억주기로 했는데, 실제로 올리고 나니까 못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장명부는 던질 힘을 잃어버린거죠. 구단주로서는 그 전해에 박철순이 24승 올려서 우승하고 정작 자신은 허리부상이 됐는데, 설마 장명부가 30승을 올릴 수 있으랴 했겠지요. 하지만 해버렸습니다.

승률 1할 2푼 5리. 저자는 삼미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이런 인생이 뭐 어떠냐고 합니다. 고생하며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중형차 몰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치기 힘든 공은 안 치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본을 받아 적게 벌어서 내 가족과 함께 그냥 오손도손 사는게 뭐가 어떠냐고 합니다. 자, 이쯤하면 '느림의 미학'이요, 소시민의 철학이 나옵니다.

하지만, 왠지 그냥 이 말을 흘려듣지 못하게 이 책은 말합니다. 해서 저도 결심했거든요. 그래 무리하게 살지 말자. 남들 집사서 돈 벌때 못 벌면 어때? 그냥 살면 되지. 큰집에 중형차 모는데, 난 소형자가용에 소형평수 아파트에 살면 어때?라고 말입니다. 근데 이 말을 내가 지킬 수 있을까요? 당장 부딪치는 건 돈에 관한 현실인데요...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고생해도 젊을때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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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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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면 팝송과 가요라는 구분과, 그나마 락을 좋아한다는 것. 그림이라면 중고등학교때 배운 것이 전부인 내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로지 유홍준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답답했던지 내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역사야 좋아하는 분야이지만 누군가 내게 설명을 요구한다면 묵묵부답이 내 전부였다. 언젠가 국제행사때 외국인 안내를 하며 경복궁에 갔지만 짧은 영어로 제대로 설명을 못한 것은 물론 한글 안내판을 보면서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 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알면 모하는가? 우리 역사의 신화와 문화도 모르는데...해서 집어들은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였다. 자 이제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읽어보았으니 하나하나 세분해서 들어가볼까 하던 차에 나온 책이 지난해 유홍준의 <화인열전>이란 책이다. 국내 화가들의 인물에 대한 전기조차 없는 것에 개탄해 월간 미술에 연재하던 시리즈를 책으로 묶어서 낸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화가들의 그림과 그들의 생애에 대해 적어 놓은 책이다.

문화권력으로서의 유홍준은 별개로 치더라도 그의 책은 내 기대를 만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리 그림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던 중 어떤 사이트에서 발견한 어느 독자의 글. '나는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란 책이 훨 좋다'라는 말 한마디에 책을 수소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내 글도 그 독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유홍준의 책이 인물 중심이라면 오주석의 책은 인물보다는 그 그림의 배경과 내가 그렇게도 알고 싶어했던 왜 그 그림이 그렇게 좋은지 그림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절대적인 지침이다. 왜 이런 식으로 나는 학교 공부에서 배우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나온다. 우리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초보자에게 권하고 싶다. 초판은 1999년에 나옴. 우리 옛 그림의 대표적인 그림에 대해 설명하면서 군데 군데 그림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중의 하나.

[옛 그림의 여백]

'우리 옛 그림에는 서양화에 없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바탕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을 말한다......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당연히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에 대한 그림과 설명을 마친 후에 이 글이 나옵니다.)......옛분들은 자연을 겉태로 보지 않고 그 마음으로 보았다. 특히 하늘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큰 것으로 온갖 생명과 도덕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하늘의 가장 큰 특징은 '비어 있다는 점'에 있으니, 그저 화면에 하늘을 위한 여백을 남겨두는 행위야말로 진정 하늘을 잘 그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땅은 어떠한가? 땅 또한 만물이 그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삶의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세한도]에서처럼 땅도 몇줄의 가는 선만으로 표현된다. 특히 겨울 산수화에서 눈을 그릴 때는 흔히 '땅을 빌어서 눈을 삼는 것'이다. 눈을 그리는 방법엔 원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양화에서처럼 눈이 쌓인 부분에 직접 흰색을 바르는 방법(부분법)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눈이 없는 다른 부분을 그려서 그림의 흰 바탕에 눈이 쌓인 것처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방법(유백법)이다. 이 가운데 유백법을 격조높은 기법으로 보았던 오랜 전통은 자연을 보는 옛 사람들의 관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보다, 웬디 수녀의 유럽미술 산책보다는 우리 그림에 대한 읽기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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