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조선일보 연재 소설.
감각적인 표지와 속지가 인상적이다.
이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 엄청나게 실망을 한 뒤에
"세상은 정말 유명하다고 해서 다는 아니다."란 평범한 진리를 확인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도 찾아 읽었다.
많은 이들이 그래도 이게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
나의 선배 언니는 Bed time에 읽는 책이 있으시다는데,
나는 W.C. time(-.-;;)에 읽는 책을 두고 산다.
이번에 선택된 책이 바로 이것.
아, 왠지 나의 기능좋은 장이 작동불량에 걸려,
이제부터 변비에 시달려줄 것만 같은 느낌.
다음엔 더 좋은 책을 두고 읽어야지.
내 취향이 그닥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 작품은 정말 맘에 안든다.
>오은수: 서울거주, 31살, OL, 미혼, 대졸
이 작품의 주인공의 Spec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장 여성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아마도 작가는 상정했던 것 같다.
일견 동의한다.
오은수가 특별히 일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막사는 것도 아니고 ...
그 나이 때 있을 고만고만한 친구가 있다.
다 내던지고 꿈을 찾는 친구,
그냥 경로에 따라 맞춰 결혼하고 이혼해버리는 친구 등.
그녀 자신은 연하의 남자와 잠시 동거를 하기도 하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섹스도 곧잘 한다.
직장은 다니긴 하지만, 큰 보람은 없다. 결국 내던져버리고 ...
때때로 모험적으로 연하의 남자와 원 나잇 스탠드도 한다.
자책은 하지만, 뭐 ... 그게 큰 죄책감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결혼을 아직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이 있다.
이렇게 늙어서, 다른 사람들이 노처녀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도 싫다.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면서, 뭔가 불안한 심정도 들고 ...
그녀는 말한다.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정성껏 치장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예의를 다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화사하고 은성한 결혼식장의 빛 속에서 나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함이다.
아직은 충분히 괜찮다고, 나는 보잘것없지 않다고 주문을 외우기 위함이다.
- 정이현(2006), <달콤한 나의 도시>, 문학과 지성사. 196p.
이런 부분은 절묘하다.
이 작품이 갖는 그나마의 미덕이다.
>오은수가 벌이는 평범한 일상
이 소설의 첫 장은 출근을 하면서 신발을 신는 오은수로 부터 시작한다.
별 다를 바 없는 하루, 그러나 어제와 다른 하루
현관 앞에서 서서 잠시 주저하다가 굽없는 갈색 스웨이드 단화에 발을 꿰었다.
이 구두는 오늘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줄까?
그 미지의 시간을 향하여 나는 용감한 척 걸음을 대디뎠다.
- 위의 책, 45p.
사실 이 말을 보면서,
언제나 내가 아침에 하는 생각과 비슷해서 마음이 움직였더랬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
그녀가 가진 공감대는 이런 것에서 뿐이었다.
분명 일상적 에피소드에서 오은수가 말하는 이야기 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상정한 이 주인공은,
자기 자신과 가장 많이 닮은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의 결혼식이라거나,
직장여성이 벌일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뱉어내는 독백은
그런 이유로 꽤 공감가는 측면이 있었다.
그나이 그때 그 성격의 여자들이 갖고 있을 섬세한 감정.
분명 이 작품은 순정만화의 멋진 대사의 코드를 가지고 있다. 뭐, 좋다.
하지만 그녀가 벌이는 대형 에피소드는 다 상상에 기인한 것일테다.
엄마가 장기간의 외도를 했었다고 오해하는 것.
그 상대는 사실은 엄마의 소울메이트였다는 것.
낯선 어린 남자와의 동거.
살인 전과자의 신분은폐, 그와의 약혼 이야기.
친구의 갑작스러운 결혼 ... 왠지 겉도는 그녀의 삶과 전격 이혼.
또 다른 친구의 뮤지컬 배우로서의 도전,
이혼남으로 돌아온 첫사랑과의 재회,
그의 전처 소생과의 애정 경쟁. 그 결과.
이런 에피소드를 지어내서가 문제가 아니다.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그런 자극적 소재도 있어야한다.
헌데, 그녀가 이런 일을 경험할 때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다 거짓으로 보인다는 것.
오은수가 굵직한 사건에서 던지는 생각과 대사들은 계속 겉돈다.
그냥 주워들은 이야기를 슬쩍 나열해 놓은 것 같다. 고민도 하다 만다.
그 깊숙한 부분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예를 들어 엄마의 소울메이트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운 소재였다.
근데 그냥 흥미거리로 던져놓고 말아버린 느낌이다.
얼렁뚱땅 엄마의 무단외출, 딸과의 눈물바람
얼마 안있다가 아버지와 홀랑 별거.
그런 점에서 난 이 작품이 그닥 좋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비행접시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독백을 하는 편이 더 낫다.
그거야 정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니까.
나 역시도 정말 모르니까.
>좋은 작품이 가진 힘
물론,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모두가 같은 감정을 갖는 다는 건 무리다.
나도 그건 너무나 잘 안다. 나름 적지 않은 소설책을 읽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건에 대해 묘사를 할 때에,
적어도 그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공감대 정도는 형성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안하지만, 그래 저럴 수도 있겠구나 ... 이런 정도?
그것이 좋은 작가, 그리고 좋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나에게 문학과 소설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은,
이 세상에 "정전"이 있다고 이야기하신다.
난 그분의 말씀에 일견 동의한다.
실제 내가 일상적에서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가 된 뒤로는 더더욱.
고전이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이 가진 힘은,
인간 본연이 가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미묘한 부분을 건드리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상황에, 다른 설정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설득할 수 있는 그 힘.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
이 작품에서 오은수가 벌이는 이야기와 생각보다는
플랫폼에서 기린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가슴이 아팠다.
>가벼움과 겉멋
난 이 작품에서 남발되고 있는 가벼움과 겉멋이 싫다.
그런식으로 31살의 여자들의 삶이 포장되는 것도 싫다.
이 작품의 유명세에 혹해서 작품을 사들고 읽는 독자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싫다.
뭔가 그럴 듯하고 보기 좋은 문장들의 남발. 멋지게 포장한 그런 말들.
아아.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은 안한단 말이다.
그리고 그걸 내가 알아버렸단 말이다.
결국 이 오은수라는 여자의 삶이, 아니 그녀가 가진 Spec이라는 것이,
나와 많이 겹쳐지기 때문이고,
내 주변에 역시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도 역시 많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그녀와 비슷한 Spec의 친구들 역시,
조건만 따져보면 우리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 사람들이던가.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주 강력한 물음표를 던진다.
이렇게 나와 친구들이 보여지는 것이 싫다.
구석에 굴러다니던 작품이 아닌,
지금 서점에서 많이 팔린다고 하는 그런 소설이기에,
실제 지하철에서도 들고 읽는 대학생도 꽤 보이는 그런 작품이기에
더 그런 생각은 강하게 든다.
이 작가가 좀더 많이 고민하고 욕심내지 않는 작품을 쓰게되길 바란다.
불쾌했다.
나에 대해서 온통 거짓을 늘어놓은,
다 잘라먹은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분개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가 예쁘게 포장된 포장상자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초롱한 눈으로 보여지고, 오해받는 그런 기분이었다.
작가는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하고,
남보다 더 예리하고 섬세한 눈과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을 쓰려면, 그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한 취재와 고민과 땀을 쏟아야한다.
그래야 그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건 재능도 필요하고, 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무나 소설을 쓰면 안된다.
일기장에 쓰는 잡문이면 모를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