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의 질서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 서강대학교출판부 / 1998년 6월
구판절판


그러나 사람들이 말한다는 사실 속에, 그들의 담론들이 무한히 증식된다는 사실 속에 들어 있는 그 위험한 존재는 무엇인가? 그 위험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MAis qu'y a-t-il donc de si perilleux dans le fait que les gens parlent, et que leurs discours indefinement proliferent? Ou donc est le danger?-9쪽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 - 담론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담론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담론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 - 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배제(exclution)의 과정들을 잘 알고 있다.

Je suppose que dans tout societe la production du discours est a la fois controlee, selectionne, organisee et redistribuee par un certain nombre de procedures qui ont pour role d'em conjurer les pouvoirs et les danters, d'en maitriser l'evenement aleatoire, d'en esquiver la loudre, la redoutable materialite.-10쪽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후에는 가장 고귀한 진리는 이제 더 이상 담론이 무엇인가에 또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있게 되었다.

la verite la plus haute ne residait plus deja dans ce qu'etait le discours ou dans ce qu'il faisait, elle residait en ce qu'il disait.-13쪽

담론에 부과되는 세 가지의 커다란 베제의 체계들 - 금지된 말, 광기의 분할, 그리고 진리에의 의지-16쪽

그러나 철학은 반복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념 뒤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화의 건축물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었으며, 언제나 뒤에 물러앉아 획득된 일반성들과 관계를 끊고 비철학과의 접촉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 의식을 따라, 그를 완성하는 것이 아닌 그를 앞서 가는 것, 그의 불안 속에서 아직 깨어나 있지 않은 것에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단일성, 과학의 지역적인 합리성들, 의식에서의 기억의 깊이를 그들을 환원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며 이 비철학이 우리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드러내는 철학이 나타나다.-49쪽

근대의 주체철학이란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초험적 주체의 개념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들이었다. 푸코는 이러한 노력들이 인간에 대한 환상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지곤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주체철학을 '인간학'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학에서 깨어나는 것이 현대 철학의 과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근대 주체철학은 결국 스스로의 범주에 입각해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목적론적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작품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인간과학들은 근대 철학이 구축해 온 동일자를 무의식이라는 타자에 복속시킴으로써 '병적 의식'이나 '원시적 심성' 또는 '무의미한 담론'과 같은 개념들을 중성화시켰다. 그래서 인간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인간이란 주체철학의 대상인 인간과 대립되는 것이다.-(122-23)쪽

바깥의 사유(la pensee du dehors)

"주어가 배제된 언어를 향한 돌파고, 그 본질로서의 언어의 출현과 그 동일성으로서의 자아 의식 사이의 아마도 속수무책인 양립 불가능성의 드러남, 오늘날 이것은 문화의 판이한 지점들에서 나타나는 체험이다: 언어를 형태화하기 위한 시도들 속에서도, 글쓰기라는 단 하나의 몸짓 속에서도, 신화 연구와 정신분석에 있어서도, 모든 서구 이성의 출생지라고 할 수 있는 이 로고스의 탐구 속에서도, 드디어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은 채 존재해 온 입 벌린 동공에 직면한 것이다: 언어라는 존재는 주어의 사라짐 속에서만 그 자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132)쪽

언표란 명제나 어구나 담화행위 등과 같은 언어의 존재양태들을 마름질하는 바탕이 되는 질료, 그들이 경우에 따라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의 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기호들의 집합이라는 언어의 원질료는 어떤 가능한 공간 내지 가능한 세계와 관련맺음으로써 언표의 수준으로 상상하며, 다시 이 수준에 어떤 일정한 규정성에 따라 가능성들 중 어떤 경우가 현실화되면 명제, 어구, 담화행위 등이 형성되는 것이다. -(137)쪽

그에 따르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때 또는 인간의 경험이 언어화될 때 세계와 주체 또는 경험과 이론 사이에는 인식이나 언어화를 형성시킬 수 밖에 없는 규칙성이 존재한다. 이 규칙성의 장이 바로 인식론적 장(le champ epistemologique)이자 담론의 질서(l'order du discours)이다.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어떤 세계로 인식하는 한 이미 이러한 담론의 질서를 통과해서 인식된 세계이다. 또 주체는 그가 말할 때 이미 이러한 담론의 질서를 통과해서 즉 그 규칙성들에 따라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는 이 담론의 질서에 상관적으로 세계이며 주체는 이 담론의 질서에 상관적으로 주체인 것이다. 이 언표적 장 또는 담론의 질서는 세계가 그리고 주체가 언어와 관계맺을 수 있는 가능성들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세계와 주체는 이 담론의 질서를 통과해서만 관계맺을 수 있는 것이다.-(139-40)쪽

"권력 관계는 다른 유형의 관계들(경제적 과정, 인식 관계, 성적 관계)로 표면화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내재하고 따라서 그러한 관계들에서 생기는 분할, 불평등, 불균형의 직접적 효과이며, 거구로 이러한 차등화의 내적인 조건이다. 권력 관계는 단순한 금지 또는 갱신의 역할을 지닌 상부구조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용하는 거기에서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148)쪽

그래서 푸코에게는 이데올로기의 개념도 달리 파악된다. 우선 이데올로기를 진리나 과학과 대립되는 것으로 파악해 진리/이데올로기의 양분법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거부된다. 진리/이데올로기란 차라리 진리가 지니고 있는 두 양태일 뿐이다. 진리와 이데올로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존재하는 것은 지식이며 진리와 이데올로기는 지식이 지니는 양태들일 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성과 진리를 어떻게 선을 그어 구분할 것인가가 아니고, 진리도 거짓도 아닌 담론 안에서 진리의 효과가 어떻게 생산되는가 하는 문제를 역사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는 점이다.-(153)쪽

(푸코 초기 철학에서 주체는 지식-권력의 망이 형성하는 함수 체계 내에 대입되는 함수값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함)
지금까지 푸코 철학에서 존재론적으로 가장 일차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던 것은 세계도 주체도 아닌 '담론의 질서'였다. 세계는 담론의 상관자로서 그리고 주체는 담론적 장 속에 자리를 잡는 존재로서 다루어짐으로써 그에게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은 언제나 담론의 질서로서 파악되엇다. 그가 권력의 문제를 다루었을 때도 권력은 주체의 표현이나 어떤 실체로서가 아니라 관계들의 망으로서 파악되었다. 요컨대 그는 언제나 철학을 '탈현존화시키고자(de-presentifier)'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철학에 경험이라는 개념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경험이라는 개념은 경험이 이루어지는 세계와 경험을 하는 주체를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개념이며, 따라서 이 개념은 그의 철학이 탈현존화의 성격을 벗어나 세계와 주체가 현존하게 되는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계보학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두 분석 양탱에 주체라는 문제틀이 부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푸코의 문제틀은 담론-권력-주체라는 삼자에 의해 구성되며 이 삼자가 구성하는 것은 바로 경험이 되는 것이다.-(166)쪽

안에 의해 바깥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안이란 바깥이 펼쳐지는 운동에서 일종의 '주름(pil)'인 것이다. 그래서 푸코는 주체 철학과 그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사르트르가 자아란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자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현실적인 결론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야 한다. .... 나는 그 역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창조적인 활동을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는 관계에로 소급시켜서는 안되며, 차라리 어떤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관계를 그의 창조적 행위에 소급시켜야 한다."-(167-68)쪽

그런데 푸코에게 이러한 주체화의 시발점을 형성하는 것은 신체이다. [감시와 처벌], [앎에의 의지]에서 신체는 단지 권력의 작용점으로 다루어졌을 뿐이지만 이제 신체는 주체화가 시작되는 장소이자 저항의 시발점으로 기능하는 장소가 된다.-(16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