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이 시사저널 편집장을 그만두고, 잠시 한겨레 기자였을 때의 글이 생각난다. 그의 글은 기사로서 어울리기도 하는 반면, 매우 어색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주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는 사실(fact)의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의 본분에 충실했지만,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이 매우 감성적이라는 점에서는 기자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필연적으로 허무적 냉소가 드러난다. 그런면에서 사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기자가 감성적인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잘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칼의 노래는 그런 면에서 김훈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 엄혹한 전쟁의 와중, 아귀같은 적군과 자신을 찌를 칼을 갈고 있는 임금, 어디를 둘러 보아도 싯푸른 칼날이 번뜩이는 아수라의 상황에서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1인칭으로 서술해 간다는 것이 과연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죽음과 삶이 맞부딪히는 사건의 현장에서도 감성적 사실 전달을 할 수 있었던 김훈의 놀라운 침잠이 이순신의 내면을 살려낸 것이라 믿는다. 여전히 주장을 하지 않는 김훈의 문체중에서도 그의 깊은 감성에의 침잠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다.
'나는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254p
인간성에 대한 의도적 포기가 정의가 되는 전쟁터에서 그래서 죽음은 또 하나의 인간성에 대한 몸부림이 된다.
'...그러나 나의 죽음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식으로는 오지 못할 것이었다.'261p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에 입각해 썩을 조선놈들을 혼내줄 목적으로 썼던 '성웅 이순신'의 놀라운 무용담에서 비롯된 이순신의 대한 인상은, 마치 박정희가 자신의 평소 자세를 본따서 세운 듯한 세종로의 위압적인 자세로 완성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었고, 오로지 승리의 군가만이 있었다.
'칼의 노래'는 슬프도록 담담하게 이어간다. 칼이 부르는 노래는 울음일진데, 그 울음이 오로지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슬프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온전한 '자신'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