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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파벌
이이화 지음 / 솔과학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사회가 불안해지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역사 서적이 발간된 것을 그런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우리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격동하는 사회, 나쁘게 말하면 불안한 사회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평소에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대중적인 역사적 관심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이른바 가볍고 대중적인 저서들의 거개가, 입증되지도 않은 역사에 대한 일종의 소설이을 민족주의란 국수주의 가면을 씌워 출판한 책이라거나 또는, 자신만의 史觀도 없이 적당한 짜깁기를 통한 누비이불같은 책들이거나 하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오히려 역사에 대한 독서의욕을 꺾는 일이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서 그나마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 책을 누가 썼는냐하는 것과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믿을 수 있는 사학자의 존재감은 매우 큰 것인데, 이런 면에서 이이화란 이름은 이른바 민중사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다.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을 거치고, 이제 자신의 연구의 집대성인 '한국사이야기'라는 한국 통사를 내기에 이른 이 재야 사학자는 이제 재야라고 일컫기에는 부족한, 사학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학자로 남으리라고 본다.
그가 새로 쓴 '한국의 파벌'은 그래서 신뢰가 가는 책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을 파벌로 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차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는 차별을 네가지로 구분하여 다루고 있는데, 학벌,문벌,지역,신분이 그것이다. 문제는 역사학자답게 이러한 차별의 실상을 멀리 삼국시대까지 올라가서 고찰하고 있지만, 이러한 환원주의는 결국은 현재에 차별을 자행하고 있는 기득권층의 책임을 반감시키는 부작용이 있음을 피할 수 없음에 있다.
현재에 이루어지는 현실은 물론 과거의 결과이지만, 그 과거를 거슬러만 올라가는 것만이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지점은 결국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이화의 명성에 걸맞는 책이었다면, 더 짧은 시간에 대한 좀더 밀도있는 내용이 되어야만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책의 성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숭배하는 훌륭한 조상들이 사실은 권력다툼의 승자라는 것을 적라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파벌과 차별 선입견과 닫힌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결국 자신의 치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능력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는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