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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매슬로우의 욕망의 5단계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다섯 단계는 각각,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인간의 욕구단계가 과연 그와 같다면, 언어라는 것은 다섯 단계의 욕구 중에서 세 번째 욕구인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가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말과 한글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상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소속감을 없애기 위한 발로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일본만이 아닌,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에 가한 가장 중요한 폭력중의 하나였다.
일찍이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 백성의 고통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아를 부정해야 하는 역설에 있다고 설파한바 있으며,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채 주류언어를 강요당하는 상황은 파농이 겪었던 식민지의 상황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지금 현재,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설소대(혀의 밑에 있는 힘줄) 절개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물적, 물리적 환경에 대한 부정이 이미 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농이 말한 역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리 우리가 영어를 잘하고, 원어민과 같은 발음으로 영어를 지껄인다해도, 영어를 사용하는 주류에 편입될 수 없으며, 그나마 주류에 다가가기 위해 정체성의 근거인 자신의 인종을 부정하고, 언어를 부정하는 총체적인 자기 부정의 푸닥거리를 치러야한 한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에서 저자들은, 수많은 소수 언어들의 사멸이 바로 이러한 정체성의 부정 과정으로서 현재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총칼에 의한 지배와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현상이라고 설파한다. 언어의 통일로 현실적으로 득을 보는 세력은 결국 지배적 언어를 사용하는 세력임이 분명하고, 소수언어의 상실과 더불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더하여, 그 언어들로만 표현되는 인류의 지식들도 결국 같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인류는 안정적이고 다양성 있는 발전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적 근거인 '사회진화론'은 약육강식을 일반화시켜, 힘없는 세력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지만, 결국 '사회진화론'의 근거가 되었던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주장하는 핵심은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다원주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사라지고 있는 언어들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광범위한 지식의 일부분들이 잠재하는 보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특히 이러한 언어들에 남아있는 환경 친화적 요소를 특히 강조한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행위는 모두 지배적 언어와 지배 세력의 이득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지역의 환경, 문화를 파괴하며, 결국 지역민의 생활 수준도 파괴한다. 또한 저자들이 강조하는 바는 언어는 사회적 조건의 결과이므로 언어를 보존하는 것은 그 사회를 보존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소비를 위하여 파괴되고 있는 후진국의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그 환경에 대한 권리를 그곳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에서 시작하며, 그들은 그 환경에서 발전한 그들의 언어를 통하여 가장 바람직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바벨탑의 저주가 아니라, 인류의 중요한 발전요소의 하나이며, 다중 언어사회를 용인하는데서 인간의 다양성은 보존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