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올리비아 뉴먼 감독, 데이지 에드가 존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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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오랜만에 영화에 푹 빠졌다. 소설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460페이지 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면서도 서사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주인공 카야를 보면서 떠오른 인물은 레이첼 카슨이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써서 세계환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문학을 전공했지만, 생물학자가 되어 몇 권의 책을 썼는데, 그 책들이 바다와 해양 생물을 담은 책이어서 주인공 카야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영화(소설)에서도 카야는 독학으로 그리고 쓴 습지 생물 이야기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성공한 작가가 되고, 습지 생태와 습지에서 살아가는 생물을 다룬 책을 꾸준히 출판하는 인기 작가로 성공한다.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카야가 겪어야 했던 삶을 습지, 생물, 자연, 카야의 내면 등을 통해 담담하면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카야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이고, 그가 홀로 견딜 수 있었던 힘은 그가 사랑한 대상을 통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카야는 습지, 생물들, 자기를 자식처럼 아끼는 상점의 흑인 부부가 있었기에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 수 있었다.

습지에서 한 젊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습지를 조망하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은 카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녀를 체포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카야의 어릴 때로 돌아간다. 1950년 초반, 카야는 막내딸로 한창 사랑받으며 자랄 나이인데, 그리 행복하지 않다.
카야 위로 두 명의 언니와 두 명의 오빠가 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엄마가 먼저 가출하고, 뒤이어 언니와 오빠들도 집을 떠난다. 그렇게 아버지와 혼자 남게 된 카야는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결국 아버지도 카야를 버리고 집을 떠나 진짜 고아가 된 어린 카야는 홍합을 따서 점핀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가게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점핀 부부는 흑인으로, 백인의 문제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지만, 고아가 된 카야를 딸처럼 돌봐주는 유일한 이웃이다.

카야의 세계는 매우 좁다. 그를 보호할 가족은 일찍 파탄나 뿔뿔이 흩어졌고, 그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고립되고 외로운 존재다. 이때 그가 의존하는 사람이 점핀 부부인데, 이들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흑인 부부다. 60년대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심했고, 흑인은 백인과 어울릴 수 없었다. 카야는 백인 어린이였고, 마을에서 돌봐주지 않고 있어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점핀 부부의 인정이 카야를 살린다. 이런 장치는 어쩌면 작가의 의도로 보이는데, 사회적 약자인 카야와 흑인 부부가 의사 가족으로 결합하는 장면은 하나의 장치라 해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

카야는 우연히 테이트를 만난다. 테이트가 카야를 눈여겨 보고 접근했지만,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된다. 무엇보다 테이트에게도 깊은 아픔이 있는데, 테이트의 엄마와 여동생이 테이트의 생일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갔다 교통사고로 죽었고, 테이트는 그 사고를 두고 심하게 자책한다. 테이트가 카야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연민을 갖게 된 건 테이트 자신의 경험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카야가 읽도록 돕는다. 덕분에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카야는 생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걸 두고 '습지 소녀'라고 규정하고 카야를 마치 '늑대소년'처럼 여긴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은 늘 약자를 향하고,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집단의 평화와 동질감, 안정을 추구한다.

카야는 평생 두 남자를 만나는데, 처음 만난 테이트는 카야의 선생님이자 연인이고, 시간이 흘러 배우자가 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반려자가 된다. 두 사람은 생각이 비슷하고, 가족을 잃은 공통점이 있으며, 습지 즉 자연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같았다. 테이트가 잠시 판단을 잘못해 카야를 실망시켰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고, 카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테이트가 좋은 남자라는 건 카야도 잘 안다.
반면 두번째 만난 체이스는 외로운 카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거짓말을 하며 카야를 속인다. 순진한 카야는 처음에 체이스가 하는 말에 속지만, 오래지 않아 체이스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 체이스는 카야를 폭행하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카야는 어릴 때 아버지가 했던 폭력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체이스를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이야기는 현재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카야의 상황과 카야와 만났던 체이스가 추락사한 이전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준다. 최초의 남자 친구였던 테이트가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카야는 배신당한 상처가 깊었고, 더욱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산다. 그러다 우연히 체이스가 접근하고, 체이스는 외로운 카야에게 접근해 몸과 마음을 뺐는다. 결혼하자는 체이스의 말을 믿었지만, 알고보니 그동안 카야에게 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고, 카야는 체이스를 멀리하려 하지만, 체이스는 카야를 폭행하고, 카야가 그린 작품을 망가뜨린다.

카야는 그런 와중에도 자기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고, 출판사는 카야의 그림과 글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출판사는 즉시 계약하자는 편지를 보내고, 선인세로 5천 달러를 보낸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금액을 받았고, 자기가 쓴 원고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카야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려 마을을 떠났던 테이트가 돌아오고, 테이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걸 카야에게 진심으로 후회하며 사과한다.

재판에서 카야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때 모든 알리바이와 증인들은 카야가 체이스가 죽던 날 밤, 먼 도시에 있었다는 걸 확인한다. 반면 검사는 아무런 증거 없이 추정만으로 카야가 살인했다고 주장한다. 배심원들은 숙의 끝에 카야가 무죄라고 평결한다. 카야가 쓴 책이 나오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자 집을 떠났던 오빠가 찾아와 가족의 안부를 전한다. 엄마는 자식들과 함께 살려고 돈을 모으다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다른 형제들은 연락이 끊겼다고 전한다.
카야는 평생 습지에 살며, 문명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가 처음 만나 사랑했던 테이트와 결혼해 오래도록 함께 습지의 생태를 연구하며, 책을 쓴다. 그의 옆에는 테이트가 좋은 반려자로 카야와 함께 하고, 두 사람은 습지에서 더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습지의 자연과 함께.

영화 끝부분에 반전이 있는데, 이걸 두고 독자(관객)의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어떤 리뷰에서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작가를 비난한 글을 봤는데, 그런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는 있지만, 수준이 낮은 사람이 쓴 글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한 투표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좋은 작품을 읽을 능력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인식 수준이 일정한 수준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주어도, 작품을 소화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쇠귀에 경읽기'가 되거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는 거다. 문제는, 자기 수준이 천박하거나 낮은 사람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자신감이 강하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천박함을 감추려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무지와 천박을 오히려 무기로 사용하며 공격한다.
지식이 조금 있다고 온갖 미사여구와 외국어, 외래어를 쓰며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지만, 자기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고, 천박함을 자랑하는 사람 역시 꼴불견이긴 마찬가지다.
주인공 카야는 평생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는 사회 생활에 자신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습지에서 스스로 공부한 자연생태의 지식은 어떤 전문가, 박사보다 뛰어나다. 카야가 출판사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며 자기 원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감이 넘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며, 내성적 성격이면서도 그때만은 부끄럼을 타지 않고 당당하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아마존에서 오래도록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는 독자를 사로 잡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서다. 주인공 카야의 처지, 성장하는 카야의 대견함, 불우한 소녀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는 행복한 이야기, 테이트와의 사랑 이야기와 나쁜 남자 체이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카야를 돌봐주는 선한 점핀 부부, 범인으로 몰린 카야의 법정 스토리 등 흥미로운 요소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독자의 호기심을 계속 유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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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는 물리학 - 미시세계에서 암흑물질까지, 우주의 실체를 향한 여정
마이클 다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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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는 물리학

과학책 읽는 걸 좋아한다. 과학 전반의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도 있고, 과학의 엄밀성, 논리성, 객관성이 인류의 이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에, 배우는 즐거움과 함께, 합리적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책을 읽기 시작한 건 30대 후반, 40대 초반부터였다. 그때까지 주로 사회과학, 역사, 문학 분야 책을 읽었는데, 여기에 과학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지적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과학책 읽기의 첫걸음은 진화론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나는 믿는다. 진화론을 배우면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알게 된다. 즉,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수 억의 뭇생명과 똑같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일뿐이며, 진화를 거듭하면서 '정신'과 '이성', '언어'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갖게 된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배움으로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미개한 시기에 인류가 만든 절대적 존재인 '신'이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이 중요한 건, 인류가 지구 행성 위에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주의 탄생 시점인 138억 년 전의 시간부터, 오늘날 확장하는 관측 우주의 지름 940억 년을 이해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고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고등 동물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인류의 지적(知的) 확장은 비균등,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뛰어난 화가, 발명가, 건축가, 무기 설계가, 조각가, 의학자, 과학자 등으로 전인(全人)의 모델이었다. 어느 시기나 천재들이 있었고, 극소수의 천재들이 한 시대를 끌고 나가면서 인류의 진보가 동력을 얻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물리학자는 여전히 극소수의 천재들이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고도의 사고(思考)와 사유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며, 이들의 발견은 인류의 진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책 '우주로 가는 물리학'은 이론물리학자인 마이클 다인이 '물리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역사와 성과, 물리학자의 업적, 물리학 이론을 '가능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다. 물리학 입문서, 물리학 개론서로 이해해도 좋은데, 그렇다고 아주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리학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수식이 전혀 없어도, 말로 설명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물리학 용어들이 낯설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낯선 대상을 만나면 우선 두려움과 불안이 나타나는데, 물리학도 수 많은 법칙과 용어, 개념 등이 낯설어서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이 어렵다면 그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를 설명만 듣고 이해하는 어려움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쉬운 내용이며, 물리학에 관심이 있고, 물리학 관련 책을 몇 권 읽은 독자라면 낯익은 물리학자의 이름과 물리학 법칙과 개념들이 등장해서 반갑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론물리학자 마이클 다인은 누구보다 이론물리학을 잘 아는 과학자로서, 물리학이 다루는 분야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작은 단위인 10-(마이너스)35승의 '프랑크 길이'와 '끈 이론'의 '끈', '양자 폼'에서 가장 큰 수인 10의 27승인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까지 사이에 있는 모든 물질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 단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 99.999%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세계를 발견하고, 설명하는 천재들이 있기에 보통 사람들의 과학 지식과 이성의 합리적 판단을 하는 근거를 만든다. 
수학자와 과학자가 발견한 '법칙'과 '증명'은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건 엄밀한 검증을 통해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며, 과학이 훌륭한 이유는,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하며, 새로운 발견과 검증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15장으로 구성했으며, 고전물리학의 시조인 아이작 뉴튼의 업적부터 설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자, 수학자의 이름과 업적만 알아도 물리학의 기본 공부는 한 걸로 볼 수 있겠다. 19세기 이후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등이 발견한 법칙과 논증한 이론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고 있어서 물리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은 필연적으로 우주와 만난다. 우주는 '무한'해서 매우 큰 수가 등장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매우 작은 수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빅뱅의 순간 10-(마이너스)37초의 순간에 우주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물리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1919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오늘날의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에서 크게 도약했다. 
양자역학, 끈이론 같은 개념이 등장하고, 물질과 반물질, 암흑물질을 발견하면서 물리학이 감당하는 영역과 질문의 깊이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물리학이 어려워진다는 뜻은 인류가 그만큼 더 많은 우주의 비밀을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리학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 없이, 숫자와 설명만으로 물리학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으며, 물리학자의 업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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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 장남수 소설집
장남수 지음 / 강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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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 장남수

작가의 창작은 경험에 바탕한다. 픽션이라고 해서 '순수한 창작'일 거라는 짐작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호러, 공포,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의 작품 대부분도 스티븐 킹의 경험이 조금씩은 들어 있고, 작품의 작가의 아주 작은 경험을 씨앗으로 자란다.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아무리 새로운 상상을 하더라도 그 상상은 반드시 과거에 존재했던 경험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 두 세계를 얼마나 절충, 타협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세계가 형성된다.
장르 소설이 작가의 상상을 더 많이 주입한 창작이라면, 현실을 더 강렬하게 반영한 소설이 '사회 소설'로 불리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1980년대 전두환 독재와 노태우 정권 때 민주화 투쟁과 함께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그와 함께 노동문학도 꽃을 피웠는데, 이때 노동문학은 현실의 노동현실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의지가 결합한 '낭만적 노동문학'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이 쇠락한 원인은 역설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절대 빈곤이 사라지며, 국가의 부가 커지면서 노동자 개인의 삶이 나아지면서였다. 여기에 국가 경영에 실패한 김영삼 정권이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왔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는 한편,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은 씁쓸한 퇴장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흘렀고, 지금 1970년대와 80년대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을 기억하는 사람은 최소한 50대 후반 이후의 중늙은이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으며, 폭력이 난무하고,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비참한 시절이었다.
자본의 착취라는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현재의 노동자들은 예전과 다른 생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건 자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은 착취의 이미지를 감추고, 혁신, 자기개발, 첨단, 능력과 같은 가면으로 대중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다른 쪽에서는 끝없는 경쟁, 고용 불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개별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며, 최소한의 임금으로 살아가도록 강제한다. 60년을 산 중늙은이가 이런 말을 하면, 청년들은 '꼰대'라고 말한다.

이 작품집 '파문'을 쓴 작가 장남수는 원풍모방 노동자로 일했다. 2000년 이후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최대 82%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75% 정도로 낮아졌는데, 1970년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20%를 조금 넘었다. 즉 열 명 가운데 두 명만이 대학에 갔고, 여덟 명은 사회로 나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장남수도 그때 수많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 노동자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가 발표한 첫 소설 작품집에는 그의 과거 경험이 파편처럼 박혀 있는 걸 발견한다. 그건 오래 된 상처이기도 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부심이기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막심 고리키도 어릴 때부터 세상을 전전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그는 사회가 자신의 '대학'이라고 말했고, 사회의 밑바닥, 가난 속에서 피땀 흘리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살아가며 배우고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어머니' 같은 위대한 작품이 탄생했다.

나이 들면서 변하는 사람과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둘은 분명 다른데, 변하는 사람은 나이만 먹는 사람이다. 외모가 달라지고, 사는 형편이 더 나아지거나 못하게 되어도 그 사람의 내면은 성장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결국 시대의 변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퇴화, 퇴행하는 사람이다.
성장하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과거 10대, 20대 때 노동자였던 사람 가운데 시간이 흘러 여전히 노동자로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변함 없는 노동자로 생활하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서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성장하는 사람'이다.
장남수는 소년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는 10대부터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다른 공장보다 노동자로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은 그에게 학교였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있던 많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고, 노조회보에 글을 썼다.
그는 나중에 더 나이 들어 검정고시를 보고, 성공회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력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끊임 없이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고, 과거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다.

그가 쓴 첫 소설집을 읽었다. 나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살았고, 작가가 겪었던 일도 미미하지만 경험했으며,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동질감과 동료애를 갖고 있다. 그의 소설은 낯설지 않고, 낡았지만 익숙한 가재도구를 만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이 있기까지 언니(물들인 날), 엄마(엄마의 빛, 그기 머라꼬), 기찬(파문)의 삶에서 과거의 흔적이 묻어날 뿐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나와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집의 조건), (가이드)에서도 집과 여행의 밝은 면보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모진 세월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저항하며 좀 더 강하고 날카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분노보다는 포용을 선택했다. 작품에서 언니와 화해하는 나, 엄마에게 깊은 연민을 갖는 나, 여행가이드의 처지를 알고 다만 얼마의 수고비라도 남들 모르게 찔러주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길을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제야 작가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첫 작품집을 낸 장남수 작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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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욕망을 파는 집 1~2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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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파는 집 - 스티븐 킹


장편소설. 1천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스티븐 킹의 특징이자 장점인 인물 개개인에 대한 서사의 핍진성은 여전히 놀라운데,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는 빈약한 편이다. 소설 앞부분에 릴런드 곤트가 등장하고, 그가 잡화점을 시작하면서 이 서사의 끝부분이 보이는 건 나만의 관찰력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모든 종류의 부정적 감정이 주인공이다. 탐욕, 이기심, 경쟁심, 질투, 시기, 분노, 차별, 불만 같은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런 감정은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언더 더 돔'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체스터밀이 거대한 투명 돔으로 갇히면서 발생하는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그린 소설인데, 양상이 조금 다를 뿐, 캐슬록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은 근본에서 같다.

캐슬록은 작은 시골 마을로 사람들이 조금씩은 알고 지낸다. 시골에 살면 한다리 건너 누구네 집에 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도시처럼 익명으로 살기 어렵다. 마을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친하게 지내면 밥도 같이 먹게 된다. 
차라리 도시처럼 철저히 익명으로 살아가면 상대에 관해 모르고, 알고 싶지 않고 관심을 끊고 살면 사건이 발생할 확률도 낮아진다. 대신 도시에서의 삶은 고립되어 외롭고 쓸쓸한 삶이 될 확률이 높다. 어느 쪽 삶을 선택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핵심은, 사람과 가까워지면 감정을 나누게 되고, 그 감정의 교류가 꼭 좋은 쪽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게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필연적으로 경쟁, 질투, 이기심 같은 감정이 나타났다. 이건 한 개체가 생존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며, 부정적 감정이지만 반드시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쟁, 질투, 이기심 등의 감정은 다른 개체보다 내가 더 노력하고,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건 곧 경쟁하는 동성들 사이에서 우수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걸 의미한다.
즉,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에서 경쟁, 질투, 이기심, 욕망, 시기의 감정이 발생하는 배경과 원인을 말할 때, 개체 또는 집단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그런 감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개체(인간)가 좋은 쪽으로만 발현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개체와 집단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경쟁'의 경우는 꼭 부정적이지 않지만, '경쟁'하려는 의지와 행동에서 시기, 질투, 이기심 같은 부수적 감정이 나타나고, 이 바탕에 보다 본질적인 '탐욕'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슬록 마을에 어느 날 영업을 시작한 작은 상점 '니드풀 씽스(needful things)'가 사람들 눈에 띈다. 작은 마을이어서, 거리에 가게가 문을 열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다. 어떤 상품을 파는지, 누가 주인인지, 주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그 가게를 드나드는지 등등.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그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구경하는데, 신기하게도 꼭 자기가 갖고 싶었던, 원하던 물건이 눈에 띈다.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욕망하는 물건을 찾아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가게 주인 릴런드 곤트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다. 
여름 한 철 관광객이 잠시 머물다 가는 시골 마을에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가게를 열었다는 자체도 뉴스거리가 되고, 그 사람이 파는 물건이 새 제품도 아닌, 골동품이라는 것도 신기한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가게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깜짝 놀란다. 마음이 설레고, 심장이 뛸 정도로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라는 게 너무 소박하고 값싼 것들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우습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애착을 갖는 물건이 꼭 비싼 건 아니다. 소소하고 값싼 물건이라도 특히 집착하거나 애정을 듬뿍 담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경우가 더 많다. '니드풀 씽스'에서 사람들은 그런 물건을 발견한다.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건을 보여준다. 즉, 사람들은 자기의 호기심, 욕망을 충족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며, 그런 사람의 말을 따른다고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서도, 릴런드 곤트에게 물건을 싸게 산 사람들은 릴런드 곤트가 물건을 싸게 주는 대신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때 '가벼운 장난'은 물건을 산 사람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아 릴런드 곤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사람이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것처럼, 누군가 '가벼운 장난'으로 한 짓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거는 행위라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가볍게 생각한다.

릴런드 곤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쟁, 이기심, 질투, 분노, 시기, 탐욕 같은 감정을 통제한다. 악마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사기꾼은 99%의 진실을 말하며, 악마는 친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등학생 브라이언 러스크는 귀한 야구카드를 '니드풀 씽스'에서 싼값에 산다. 그리고 릴런드 곤트에게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주면 야구카드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이의 영혼까지도 아무런 가책없이 잡아먹는 악마라는 사실을 캐슬록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쪽지, 편지, 애완견 살해, 돌멩이로 창문 깨기 같은,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장난'이 오해와 불신과 질투와 욕망에 사로 잡힌 사람들 사이에서 뇌관이 터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드러낸다.
그렇게 캐슬록 사람들은 미쳐날뛰고, 마을 행정위원장 댄포스 키턴은 아내를 살해하고, 공사장에 보관하던 다이너마이트를 곳곳에 설치해 장례식장, 시청 건물, 다리를 폭파한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에 타고, 미쳐 날뛰는 사람들로 캐슬록은 아비규환, 지옥이 된다.

마을 하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사라지는 릴런드 곤트의 정체는 독자가 상상하는 그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작품 초반에 이미 정체를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관 앨런 팽본은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를 눈여겨 본다.
소설의 마지막은 앨런 팽본과 릴런드 곤트의 대결이 하이라이트지만, 인간 사이에 스며들어 인간을 파멸시키는 악마의 정체가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악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가, 아니면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 그 자체인가.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불신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목숨을 대신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소한 가짜 편지 한 장으로 그 사람을 증오하는 감정이 든다면, 그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인간의 감정은 너무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은 어리석어서 외부의 작은 자극만으로도 사랑이 증오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이런 감정의 기복과 변화를 알아채고, 그 감정의 뿌리를 냉정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릴런드 곤트가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충동해 폭력을 일으키지만, 외부의 개입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족, 이웃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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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미디어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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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감독 작품. 250년 역사를 지닌 '퍼스트 리폼드 교회' 목사 톨러(에단 호크)는 일기를 쓰기로 작정한다. 그것도 꼭 12개월 동안, 노트에 직접 육필로 솔직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그건 자신의 목소리이면서, 기도문이고, 하나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목사로 사역하지만 교회는 '기념품 가게'로 불리는 역사적 유물일 뿐, 진짜 교회는 가까운 곳에 있는 '풍성한 교회'이고, 이 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톨러 목사는 신도를 만날 일이 없고, 온 종일 교회를 지키며, 외부에서 이 교회를 구경하러 오는 방문객에게 교회 역사를 설명하고, 기념품 판매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가 가톨릭 신부의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개신교 목사의 이야기로 변주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톨러 목사는 '풍성한 삶의 교회' 담임 목사인 제퍼스 목사의 도움으로 사역하지 않는 '기념품 판매' 교회인 퍼스트 리폼드 교회를 맡는다. 그의 삶에서 극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톨러 목사 또한 고요하고 담담한 일상을 보내는 걸 기꺼이 받아들인다. 심할 정도로 결벽한 그의 일상은 그러나 아주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톨러 목사는 건강이 좋지 않다. 위장병이 암일 가능성도 있고, 요도나 방광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의심한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죽음이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낀다.

교회 신도 메리가 찾아와 남편 마이클이 상담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톨러 목사는 메리의 집을 찾아가 마이클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마이클은 2050년이 되면 지구 환경이 매우 심각하게 붕괴되어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된다면서, 임신한 메리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톨러 목사의 입장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부닥치는 딜레마에 놓였고, 지구의 환경 파괴, 기후 위기와 같은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 문제와 함께, 환경 오염과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자본'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종교인은 현실을 외면하는 비겁한 태도를 보인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과 현실이 괴리가 크다는 걸 느낀다.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 종교인이 발딛고 살아가는 사회를 향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종교(교회)가 세속의 자본과 결탁해 사회를 구원하기는커녕 사회의 기득권에 기생하며, 진짜 구원이 필요한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외면할 뿐아니라 그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현실을 보면서, 톨러 목사는 점차 비장한 마음이 된다.

메리와 그의 남편 마이클은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특히 마이클은 매우 급진적 환경활동가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가 지구 환경이라는 거대 담론의 중압감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은 한편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문제로 임신한 아내를 돌보지 않고,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살해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2050년이 되어 설령 지구가 멸망해 어떤 생명이 살지 못한다 해도, 마이클이 자기 자식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톨러 목사도 그렇게 말한다. '네가 신인가? 다른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가졌는가?' 그 물음에 마이클은 대답하지 못한다. 당연히 대답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물음이다.
영화는 톨러 목사를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마이클이 보여주는 행동은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급진 환경론자인 마이클은 자기 내면에 몰입해 '객관'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며, 거대 담론인 지구의 환경을 두고 괴로워하지만, 가장 사랑하고, 가까이 있으며,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내 메리를 배려하지 못한다. 
마이클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고, 사람과 감정의 교류를 할 줄 모르는 비사회적 인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굳힌 결정적 사건이 바로 마이클이 자살하는 장면이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자살한다.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를 생각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한 건데, 이런 사람이 마치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인양, 지구 환경 어쩌구 하면서 떠드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톨러 목사는 자신의 종교와 현실의 괴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마이클이 자살한 이후, 톨러 목사는 곤경에 놓인 메리를 돌보는 한편 마이클이 던진 화두, 환경 파괴로 망가지는 지구와 생명들,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이 환경을 망가뜨리는 뉴스를 보면서, '누군가는 무언가를 해야 돼'라고 생각한다.
톨러 목사가 부채감을 갖게 된 건 마이클이 자살하기 직전 톨러 목사에게 남긴 유언장의 내용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유서에서 톨러 목사에게 아내 메리를 돌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거대 자본이고, 자본의 잔인하고 무차별적 이윤 추구로 지구 생명과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자료를 첨부한다. 
마이클의 유서는 자기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급진 환경론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책임감으로 아내와 아기를 돌보지 않은 건 더욱 이해하거나 용납하기 어렵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이 남긴 유서를 보고 스스로 공부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어떤 건지 살펴본다.

톨러 목사가 점차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단지 마이클의 유서에서 영향을 받아서만은 아니다. 톨러 목사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이혼한 이유는 하나뿐인 아들이 이라크로 파병나가 전사했기 때문이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이라크로 가는 걸 지지한 사람이 바로 톨러 목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톨러 목사의 집안은 아버지도 군인이었고, 자신도 군종 목사였기에, 군인이 되는 걸 자연스럽고 자부심을 갖았다. 하지만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서 아내와도 이혼하고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늙어버린 톨러 목사는 미래의 희망도, 나날의 즐거움도 없는 죽음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퍼스트 리폼드' 교회 250주년을 맞아 행사를 준비하면서 톨러 목사는 본당 교회인 '풍성한 교회'가 대자본의 지원을 받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대자본은 환경 파괴를 하는 기업으로 유명하고, 톨러 목사가 마이클의 장례식을 주관했으며, 마이클의 친구들이 급진 환경론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톨러 목사는 그들에게 경고를 받는다.

톨러 목사에게 죽음은 두렵거나 괴로운 감정이 아니다. 그는 이미 아들 요셉이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자신의 영혼도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내가 떠나가고, 아들이 죽어 혼자 남은 톨러 목사에게 '삶'이란 허깨비같은 것이다.
게다가 마이클이 자살한 것에 톨러 목사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메리가 톨러 목사를 불러 창고에서 자살 폭탄조끼를 보여주었고, 그 자살 폭탄조끼를 가져온 것이 톨러 목사였다. 마이클은 그 사실을 알고 자살했으니, 톨러 목사는 마이클에게 죄책감과 부채감을 갖게 된다.
톨러 목사는 마이클이 남긴 자살 폭탄조끼를 터뜨릴 생각을 한다. 교회 250주년 축하 행사에 주지사를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와 대자본의 임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자살 폭탄조끼를 입은 톨러 목사가 행사장에서 폭탄을 터뜨리면 엄청난 뉴스가 될 것이고, 마이클이 원했던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거라고 톨러 목사는 생각한다.
톨러 목사는 삶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그가 자살 폭탄조끼를 입고 계획을 실행하려 준비할 때, 그의 눈에 메리가 보인다. 절대 교회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나, 메리는 행사장에 참석한다. 
톨러 목사는 당황하고, 입었던 자살 폭탄조끼를 벗고, 가시 철망을 몸에 두른 채 배관청소용액을 마시고 자살하려다 메리를 만난다. 

메리는 남편이 자살했고, 이제 막 아이를 낳았으니 고통과 기쁨, 슬픔과 환희를 동시에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톨러 목사를 찾아 도움을 구한다. 톨러 목사는 기꺼이 메리를 돌봐주고, 메리가 요구하는 건 거절하지 (못)않고 들어준다. 메리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톨러 목사의 몸 위에 업드려 코끝을 맞대고 싶다고 말한다. 톨러 목사는 당황스럽지만 메리의 요구를 들어준다.
두 사람의 몸이 밀착하고, 교회 마루바닥이 사라지면서 지구의 아름다운 자연 위로 두 사람이 몸을 밀착한 채 공중을 날아다닌다. 이런 환상은 두 사람의 감정적 유대감을 증폭하고, 톨러 목사가 자살하기 직전, 메리를 만나면서 두 사람이 격렬한 키스를 하게 되는 동력이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의 격렬한 키스 장면으로 끝나고, 톨러 목사는 자살하지 않을 걸로 본다. 세상이 무너져도 오직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는 걸 폴 슈레이더 감독은 말하고 있다. 톨러 목사는 자기의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메리가 나타나면서 그가 가진 과거의 고통과 괴로움의 자아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현재의 자아가 끊임없이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살아갈 것이다. 오욕칠정, 생로병사를 알면서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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