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팝의 고고학 1970 - 절정과 분화 한국 팝의 고고학
신현준.최지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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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 1970

1970년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않다. 기억은 파편으로 남았고, 나는 그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마포의 기찻길 아래, 루핑을 얹은 판잣집에서 살았다.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이었고,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읽다가 한글을 깨쳤다.
집앞으로 문안(사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온 개천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하나였다. 우리집에는 배터리를 고무줄로 묶은 금성 라디오가 유일한 가전제품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연속극이 나오고,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왔다.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운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꼬마들은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유행가'를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동요를 부르지 않았고, 남진의 '님과 함께'를 신나게 불렀다. 맹인 가수 이용복의 노래들, 신중현의 '미인',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봄비', '거짓말이야'를 뜻도 모르고 불렀다.
1971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는 꼬마였고, 정치를 몰랐지만 아버지에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대요.'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냐'라고 하셨고, 1979년, 박정희는 부하의 총을 맞고 죽었다.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기 전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일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라고 썼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없는 한국음악의 팝 계열 음악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가왕' 조용필이 1971년 처음으로 '가수왕' 상을 받은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70년대 최고의 대중잡지였던 '썬데이서울'이 주최한 '썬데이서울컵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조용필은 최이철,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를 결성해 출전했고, '가수왕' 상을 받는다.
70년대는 듀엣, 트리오 같은 그룹이 많이 나타났고, 그들의 노래가 유행했다. 키보이스, 키브러더스, 히식스, 영사운드, 템페스트, 사월과 오월, 어니언스 같은 그룹의 노래는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마을에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서는 오후5시에 시작하는 방송 시간에 맞춰 입장료 10원을 받고 꼬마들을 불러모았다. 나는 엄마를 졸라 10원을 받아 텔레비전을 보러 달려갔다. 일본 만화영화를 그대로 가져온 '뱀, 베라, 베로', '타이거 마스크', '밀림의 왕자 레오'를 봤고, 동네 누나들은 남진과 나훈아의 팬으로 갈려 서로 '우리 오빠'가 최고라고 부르짖었다. 남진 오빠에게 시집가겠다는 누나가 수십 명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를 금지했고, 긴 머리를 길거리에서 함부로 가위로 잘랐으며,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재고, 경찰서로 끌고가 창피를 주었다. 청년들이 팝송을 부르고, 통기타를 치고, 한데 모여 음악 듣는 걸 두려워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천리마운동'을 시작하자 남쪽에서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으로 따라했다. 시골의 초가집을 벗겨내고 슬레이트 지붕을 덮었고, 마을 길을 넓히고, 북한의 '5호담당제'처럼, 마을 주민을 감시하도록 했다. 언론은 숨죽였고, 텔레비전에는 오락과 코미디만 넘쳤다.

1974년 여름, 한여름 폭우가 개울을 넘고, 집으로 물이 넘실대면서 우리 가족은 한밤중에 보따리를 싸서 철둑으로 도망했다. 날이 밝고, 철둑길에서 바라본 동네는 온통 물바다였다. 지붕만 남은 우리집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고, 머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름으로 속절 없이 헐렸다.
우리 가족은 서울의 변두리 산동네, 큰누나가 살고 있는 산비탈 단칸방에서 월세를 살았다. 나는 소년노동자가 되었고, 더 이상 유행가를 따라부르지 않았다. 공장 몇 곳과 식당을 전전하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가다꾼'이 되어 지방 공사장을 떠돌았다. 그때 이정선의 '섬소년'을 들었고,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외웠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하숙집에 돌아와 카세트 라디오에서 이장희의 '그건 너',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 사월과오월의 '등불', 어니언스의 '편지', '저별과 달을', 영사운드의 '등불'을 들었다. 

대중은 알 수 없는, 가요계 인맥과 가수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팝을 중심으로 청년 가수들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어 70년대 청년문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기 한국의 팝은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었고, 가수들도 미군부대에서 노래하길 바랐다. 미군부대에서 이름을 얻은 가수와 밴드, 그룹이 방송과 연예계로 진출하는 수순이 자연스러웠다.
라디오 방송에서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내보내고, 진행자가 DJ(디스크자키)로 인기 연예인이 되고, 방송국으로 엽서와 편지가 무더기로 보내지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중반, 영화계에서는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라는 특이한 장르가 등장했다. 독재정권이 체제에 부정적인 문화를 거세하고, 대중을 어리석은 상태로 만드는 '우민화 정책'을 쓰면서 '벗기는 영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5년이 되면서 신중현 '미인', 김정호 '하얀 나비', 김세환 '사랑하는 마음', 둘다섯 '긴머리 소녀', 윤항기 '이거야 정말', 송창식 '왜 불러', 윤형주 '어제 내린 비', 검은 나비 '당신은 몰라' 같은 노래들이 히트곡이었다. 
나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이런 노래들은 들었지만, 흥겹게 따라 부르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다. 가난과 노동으로 삶은 피곤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한달에 하루나 이틀을 겨우 쉴 수 있었고, 거의 매일 잔업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 조치'를 발표하고, 많은 연예인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거나 화면에서, 방송에서 사라졌다. 내 삶 뿐아니라 사회 전체가 암울하고 답답하던 시기였다. '금지곡'이 늘어나고, 가수, 연예인들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 가요와 영화는 정부기관의 심의를 받아야 했고, 창작의 자율과 상상력은 억압당했다.

1976년 2월, 나는 매형을 따라 건설노동자가 되었다. '노가다'라고 업신여기는 직업이었지만, 공장보다 임금이 많았고, 공장처럼 한 자리에서 기계 부속품처럼 반복작업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자율성이 있어서 할만 했다.
송대관의 '해뜰 날'이 방송과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내 인생에서도 '쨍 하고 해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최헌의 '오동잎'이 거리를 휩쓸 때, 나는 경남 울주의 새로운 공단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저 아래, 부산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서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1977년, 1978년에도 나는 지방을 전전하며 '노가다'를 뛰었다. 경남 울주, 마산, 창원, 전남 광주, 충청 신탄진, 강원 속초의 건설 현장에서 때로는 하숙집에서 편하게 잠자고, 맛있는 밥을 먹으며 일하다, 때로는 현장의 허름한 숙소에서 잠자고 현장 식당에서 맛없는 밥을 먹으며 일했다.
세상은 내게 따뜻하지도, 호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가수들은 명멸했고, 그룹사운드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카세트 녹음기가 첨단 기기로 나타났고, '공테이프'를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했다. 그때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다.
이 무렵 처음 '대학가요제'가 열렸고, 대학생 그룹과 개인의 신선한 노래가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성 가수들의 노래에 싫증을 느끼던 사람들은 대학생의 음악에 환호를 보냈다. 샌드페블스 '나 어떡해' 블랙테트라 '구름과 나' 활주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같은 음악들은 청년의 감성을 흔들었다.
그리고 '산울림'이 등장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놀라운 그룹이 등장했다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산울림'의 신선한 충격은 오래 이어졌다. 

1979년,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독서회 활동을 시작했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삼중당 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이때 혜은이, 이은하, 윤시내 같은 여성 가수들이 도드라졌다. 그룹사운드의 음악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끊이지 않고 나왔다. 활주로, 블랙테트라, 샌드페블스, 휘버스, 작은 거인, 장남들, 벗님들, 블루드래곤 같은 그룹사운드의 음악은 한국 팝 음악의 70년대 열매이자, 80년대를 여는 서곡이었다.
그리고 1979년 10월,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 독재가 막을 내렸다. 박정희는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 책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가수, 연주자들, 음악 제작자, 프로듀서, 작곡가 등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음악의 흐름과 가수를 비롯한 음악 관련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긴밀한 인간 관계를 통해 일어나는가를 잘 알 수 있고, 가수, 작곡가, 연주자들이 선의를 가진 협업을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신기하고 흐믓하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이던 시대, 아날로그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포크와 팝 음악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고 싱싱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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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dts] (2disc) - [초특가판]
쿠엔틴 타란티노 외 출연 / 시네마 크로스 (Cinema Cros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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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또는 창고의 개들

서너 번 봤다. 볼 때마다 새롭다. 영화나 음악은 어떤 환경에서 보고 듣는가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영화는 관객(나)의 감정 상태와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음악도 그렇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두 장르 모두 극장과 공연장에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도 소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 과거 무성영화 시기에 자막과 음악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변사가 배우의 대사를 대신 읊어주었다. 영화 그 자체는 움직이는 그림이고, 여기에 대사, 효과음, 배경음 등을 넣어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뻔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로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며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래 되었지만 외장형 사운드카드를 통해 '헤드폰 앰프'를 거쳐 나온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가 영화에서 들렸다.
가장 신선하게 느낀 건 역시 음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에 쓰이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고르는데, 이 영화는 그의 데뷔작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1970년대 미국 음악이 나올 때는 그가 영화 뿐아니라 음악에서도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특히 극중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디제이(DJ)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음성인 것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새삼 느꼈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 '용호풍운'을 오마주했다. '용호풍운'은 홍콩영화가 한창 잘 나가던 때인 1987년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는 나중에 '무간도'와 '신세계' 같은 경찰이 조폭 집단에 잠입해 활동하는 느와르 영화에 영향을 준다. '용호풍운'의 주인공도 홍콩 최고 배우인 주윤발과 이수현이다. 이들은 2년 뒤에 홍콩영화의 전설로 남은 영화 '첩혈쌍웅'에도 함께 출연한다.
'저수지의 개들' 인트로에서 조가 수첩을 보면서 '토니웡'이라고 몇 번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토니웡'은 '첩혈쌍웅'에 나오는 인물로 그룹의 총재다. 이런 깨알같은 장면에서도 쿠엔틴은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했다.
'저수지의 개들'이 '용호풍운'을 오마주한 건 맞지만, '표절'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다. 경찰이 범죄조직 내부로 잠입해 비밀수사를 하는 상황, 보석상을 터는 상황, 창고에 모여서 세 명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 등이 비슷할 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쿠엔틴이 영화 제목을 지을 때,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이라고 했는데, 쿠엔틴이 감독이 되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때, 한 손님에게 영화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을 추천했는데, 그 손님이 제목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창고(Reservoir)' 영화는 볼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쿠엔틴은 그 단어가 퍽 인상 깊게 남아서, 영화를 만들면 반드시 '창고(Reservoir)'라는 단어를 쓴 제목을 붙이겠다고 마음 먹었고, 데뷔작에 'Reservoir'를 붙였다. 여기서 '저수지'라는 단어와 '창고'라는 단어가 같은 창고'Reservoir'여서, 최초 번역이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쿠엔틴의 의도는 '용호풍운'에서처럼 '창고'에 모인 '개들'을 상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영화 인트로에서 레스토랑에 모여 밥을 먹고 잡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쿠엔틴(미스터 브라운)이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에 관한 해석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수위 높은 음담패설인데, 쿠엔틴의 수다스러움과 테이블에 앉은 일곱 명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가벼운 농담처럼 들린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길지 않지만,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스터 브라운의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보다 조 캐벗이 음식값을 치르고, 팁은 각자 1달러씩 내라고 했을 때, 이들 가운데 미스터 핑크는 팁을 내지 않겠다고 반발한다. 웨이트리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무조건 팁을 주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다른 여섯 명(이때 조 캐벗은 음식값을 계산하러 카운터로 간 상태)은 무조건 팁을 주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여성이 당장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웨이트리스이며, 그들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팁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으니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팁은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범죄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는 건 신선하다. 이들이 범죄자이면서도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구분하고 있고, 그럼에도 미스터 핑크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덟 명 가운데 두 사람, 조 캐벗과 그의 아들 에디는 정장을 입지 않고, 여섯 명의 사내는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마치 장례식에 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다섯 명은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다. 이쯤되면 이들이 평범한 남자들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스타일은 살리는 클리셰를 선택했다고 본다.
레스토랑 인트로가 끝나고 곧바로 총에 맞아 헐떡이는 미스터 오렌지가 보이고, 그를 부축하는 미스터 화이트가 창고로 그를 끌고 들어온다. 직전까지 레스토랑에서 한가하게 농담을 떠들던 장면에서 곧바로 피투성이가 된 인물의 등장은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그리고 이들이 나눈 대화에서 이미 미스터 브라운과 미스터 블루는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즉 두 사람은 레스토랑 인트로에만 등장한다. 등장인물을 줄인 건 저예산의 한계와 이야기를 보다 핍진하게 풀어가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이 영화는 거리 장면이 매우 적고, 거의 모두 창고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이어서, 영화지만 연극의 무대와 거의 같다. 즉, 큰 변화 없이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데, 실제 쿠엔틴은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연극으로 만들고, 등장인물은 모두 흑인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레스토랑 인트로에도 웨이트리스가 한번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고, 딱 한 번, 여성이 등장하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거리를 뛰던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달려오는 차에 총을 겨누고 차를 뺐는데, 그 차의 운전자가 여성이었다. 이 여성이 미스터 오렌지를 총으로 쐈고, 미스터 오렌지도 반사적으로 총을 쏜다. 
첫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된 미스터 오렌지의 상황이 여기서 시작한 것으로, 이때 관객은 모르는 상태지만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객은 충격을 느낀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범죄자 행세를 하다 시민의 총에 맞고, 시민을 사살하는 상황은 어떻게도 풀 수 없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오렌지가 맞닥뜨리는 딜레마는 더 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미스터 화이트가 경찰차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두 명의 경찰이 그 자리에서 죽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스터 블론드가 탈출하면서 경찰 한 명을 납치해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오는데, 이 경찰을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다음 미스터 블론드, 미스터 핑크, 미스터 화이트가 구타하는 장면을 미스터 오렌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상태다.
나중에 미스터 블론디 혼자 창고에 남아 경찰을 고문하고 기름을 끼얹어 불태워 죽이려 하자 참지 못한 미스터 오렌지가 미스터 블론디를 사살한다. 납치당한 경찰은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고문당하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미스터 화이트는 이 작전을 설계하고 사람을 모은 조 캐벗과 친한 인물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하며 조 캐벗과 대립한다.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조 캐벗은 미스터 오렌지를 경찰 끄나풀이라고 주장하고,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가 결코 경찰 끄나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 캐벗은 자기의 직감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조의 아들 에디는 창고에서 죽은 미스터 블론디와 매우 친한 관계이고, 이제 막 감옥에서 4년을 보내고 나온 미스터 블론디가 조 캐벗을 위해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것을 높게 평가했는데, 미스터 오렌지의 말에 따르면 조 캐벗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창고에 오면 모두 죽이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도망가겠다고 말한 것은 비논리적이며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에디의 말을 들으면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한다. 그건 미스터 화이트가 미스터 오렌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행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립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같은 범죄자이고, 서로 오래 알아왔지만 결정적 순간에 두 사람(조 캐벗과 미스터 화이트)은 불화한다. 범죄자의 세계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무하고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스터 핑크가 보석 가방을 챙겨 창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부상을 당한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 끌어당기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자기를 믿고 지켜준 미스터 화이트에게, '내가 경찰이에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창고 바깥 장면이 들린다. 경찰차 싸이렌 소리와 총소리, 미스터 핑크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매우 작은 소리여서 주의해서 들어야만 들린다. 이번에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니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결국 미스터 핑크도 체포당하거나 사살당하는 것으로 나오고, 창고 안에 있던 미스터 오렌지도 미스터 화이트의 총에 죽고, 창고로 들이닥친 경찰의 총에 미스터 화이트가 사살당하면서 이들의 작전은 실패한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쿠엔틴의 데뷔작이라는 점, 여덟 명이 모두 모인 유일한 장면이라는 점, 이 장면이 영화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등장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장면이고, 새롭고 신선한 연출이다.
잠입 경찰인 미스터 오렌지를 제외하고, 일곱 명의 악당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렀다는 점에서 영화는 도덕적 딜레마에서 비켜서 있다. 즉, 등장인물이 죽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범죄자 또는 범죄를 다룬 작품이 많고, 그들 대부분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은 죽어도 싸다는 게 쿠엔틴의 작품 철학이다. '데스 프루프'에서 여성만 골라 자동차 사고로 살해하는 마이크를 스턴트 연기를 하는 여성들이 때려죽이고, '비스터즈:거친 녀석들'은 미군이 독일군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내용이다. '장고:분노의 추적자'도 현상금 사냥꾼 슐츠와 장고가 힘을 합해 노예로 끌려간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찰스 맨슨 일당에게 살해당한 로만 폴란스키를 추모하며 영화로 대신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쿠엔틴의 영화에서는 도덕적 딜레마 없이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관객은 폭력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나쁜 짓을 한 놈은 죽어도 싸다는 보편의 상식과 감정에 충실한 영화들이라 영화를 보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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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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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의 초기 작품. 중국문학에서 '신사실주의'를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고, 이 작품으로 옌롄커는 매우 위험한 상황까지 몰리는 탄압을 받았는데, 다행히 외국의 언론이 그를 살렸다. 중국정부는 옌롄커의 작품을 불온하다고 판정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무겁지 않다. 현대 중국의 현실 가운데서 중국해방군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이 '불온'하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정부가 이 소설을 '불온' 딱지를 붙일 작정이었다면, 그것은 이 소설을 바라보는 중국정부의 관료들이 매우 편협하고, 스스로 잘못을 감추려는 불안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두었다면 이렇게 크게 난리가 나지 않았을텐데, 불구덩이를 함부로 쑤셔서 사건을 크게 만든 건 중국정부였다. 그래서 옌롄커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고, 그가 중국정부로부터 탄압당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세계문학계에서 옌롄커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되었다.

소설의 서사는 단순하다. 인민해방군 중대장 자오린과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전우이며, 오랜동안 함께 복무한 처지라 서로를 형제처럼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은 승진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향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베트남 전쟁 이후로 중국해방군은 심각한 전쟁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고 있으며, 날마다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의 삶에 심각한 고비가 닥친 건 총기보관소에 있던 자동소총 한 정이 사라진 이후였고, 두 사람이 총기를 찾으려 곳곳을 수색하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이 사건으로 문책을 당하게 될 경우를 예상하는 두 사람은 미묘한 신경전을 펼친다.
그러다 3중대 신임 병사 '샤를뤄'가 사라진 총기로 자살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린 병사 '샤를뤄'의 자살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상부에서는 병사 자살사건을 두고 중대장 자오린과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을 문책하기로 결정한다.
자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일주일 가까이 감금당해 한 방에서 생활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걸 느낀다.

'샤를뤄'의 자살 이후 오히려 상부에서는 두 사람을 심하게 문책하지 않고, 한 계급 강등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두 사람 모두 군대에 남게 되었으며, 벌점은 받았지만 더 노력해서 다시 진급하면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이 소설이 중국 현대문학에서 '신사실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서사의 사실성에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서 이만큼의 '리얼리티'도 확보하지 못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지만, 서사가 내재한 담론의 폭은 상당히 넓다. 군부 내부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것은 분명 충격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확률의 범위에 있다. 다만, 여기서 '샤를뤄'가 자살한 이유는 끝내 밝히지 못한다. 그의 부모도 아들 '샤를뤄'가 사회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살할 이유일 수는 없다.
중국 군대에서는 물리적 폭력, 따돌림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려운데, 이는 인민해방군이 일본군이나 한국군처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주의 군대와는 다른,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군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은 중국 국가를 이루는 양대 산맥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공산당'의 지도와 '인민해방군'의 역할은 최우선 가치를 지닌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오히려 군대 내부의 문제보다는 자오린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농민' 출신의 비애와 원한이다. 자오린은 가난한 시골마을의 농민으로 살다 어렵게 인민해방군에 입대한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농촌에서 유일한 탈출은 군인이 되는 것인데,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경쟁자들은 군대에 추천할 권한을 가진 촌장에게 뇌물을 주어야 한다. 
자오린도 촌장이 새집을 짓는 곳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해주었고, 그의 친구가 경쟁을 포기하면서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친구는 사고로 죽고, 친구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중대장이 된 이후 자오린은 휴가 다녀온 병사들이 가져온 작은 선물을 받는데, 그것이 뇌물은 아니지만, 병사들이 무언가를 가져다 바쳐야 한다는 중국 군대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최저 생활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배급제도 1993년 이후부터 사라지고 중국 인민은 정부의 도움 없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공산주의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인민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자오린이 아내와 딸들을 어떻게든 영내로 불러들이려 한 것도 농촌에서는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농민공'이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라도 하지만, 시골에서는 안정적 수입이 없고, 빈민을 구제할 지방정부도 없으니 생존 문제가 심각하다.

옌롄커는 군대 내부의 문제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농민의 가난한 삶과 그걸 방치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무능 또는 무관심을 비판하고 있다. 자오린이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 가오바오신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군대를 떠나는 상황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단지 명예 때문이 아니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문제가 동지와의 오랜 우정도 포기할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오린은 상상하지 못한 인연을 만나는데, 그의 부대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상점의 회계 왕후이를 만나게 된 사건이다. 자오린은 마흔이 넘은 사내인데, 양귀비, 서시보다 더 아름다운 왕후이가 자오린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결혼해서 아내와 두 딸이 있는 자오린은 왕후이의 접근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과 열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인민해방군 장교가 불륜을 저지를 수 있다는 설정은 중국 현실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자오린은 끝내 자기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왕후이와의 만남은 열린 결말로 두지만, 중국 인민의 결혼과 연애, 이혼 같은 사생활이 중국 정부의 경직된 태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옌롄커의 작품이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인민들의 구체적, 보편적 삶의 태도와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중국 인민의 비극성과 낙관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샤를뤄'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 보여주는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의 태도는 공산주의 사회 중국에서 개인이 가진 욕망의 표현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인민이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총 도난 사건 이후와 '샤를뤄'의 자살 사건 이후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은 상대를 비난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인다. 전쟁터에서 서로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진한 전우애를 가진 이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 연연하며, 서로를 비난하는 태도는 그들이 공산주의로 무장한 사회주의자라 해도 개인의 욕망과 이익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라는 걸 말한다.
하지만 '샤를뤄' 자살 사건의 진상조사가 끝나고,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에 대해 한 계급 강등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처지를 옹호하고, 군대를 떠난다면 '내가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동지를 위해 기꺼이 자기 미래를 양보하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동안 중국사회는 '이상적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만들었고, 개인의 욕망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 이중성과 모순을 내재한 인간형을 무시하거나 부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옌롄커의 작품이 중국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 것도 중국정부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직된 정책과 '좌파적 환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중국의 현실을 지나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반영한 점과 개인의 나약함, 이중성을 하나의 돌연한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소설 제목이 '샤를뤄'이고, 작품에서 신입 병사 '샤를뤄'가 자살하는 건 중의적이다. '그해 여름의 끝'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여름해가 질 때'가 조금 더 느낌이 가까운데, 작품에서 '샤를뤄'가 남긴 긴 편지 내용이 바로 이 장면을 말한다. '샤를뤄'는 자살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긴 편지를 보내는데, 그가 묘사한 풍경은 누구도 본 적 없는 몽환적 분위기다. 부대 근처에 강이 없는데, '샤를뤄'는 붉게 타오르는 강을 묘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이 징계를 당했지만, 다행히 두 사람 모두 군대에 남아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해지는 거리를 걸어 도달한 곳에서 본 풍경이 바로 '샤를뤄'가 편지에 쓴 그 풍경이 보이는 장소였고, 두 사람이 본 풍경이 편지 내용과 똑같아서 충격을 받는다.
'샤를뤄'가 자살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풍경, 중국의 거대한 대륙의 장엄하면서도 몽환적인 석양의 압도하는 자연의 힘과 경이로움이 '샤를뤄'를 죽음으로 이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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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소신의 대통령 윤석열
주헌 지음, 임하라 그림 / 깊은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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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내다니, 대체 어떤 개돼지들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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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원 - 존 배로가 들려주는 우주 탄생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8
존 배로 지음, 이은아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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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원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짧은 시간 살다 죽지만, 그 시간이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이 들어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부터다. 현대 자연과학은 우주의 기원부터 인류의 진화까지 이론과 실험을 통해 많은 부분 밝혔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류가 존재한 이후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선진국'에 속한 나라에서, 배 곯지 않고 사는 걸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구 인구의 50억 명은 지금도 가난과 굶주림,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전쟁과 자연 재해로 고통받는 삶을 산다.
풍요로운 나라에 살아도 무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많다. 인간이 만든 '신'을 믿으며, 어리석고 멍청하게 사는 사람도 많고,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며 넓고 깊은 세상을 모른 채 사는 사람도 많다.
'개인'은 사회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다. 이런 한계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순수한 기쁨'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다.

다른 모든 학문은 인간의 실제 삶에 필요하거나 영향을 주고 받지만, 자연과학은 지금 우리의 삶과 직접 관련 없는 경우가 많다. 수학의 순수한 이론적 성취를 예로 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리만 가설', 푸앵카레 추측', '골드바흐 추측' 같은 이론은 한평생 살면서 전혀 몰라도 되는 지식이다.
특히 이 책처럼 우주를 다룬 지식은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내용이며, 모른다고 창피할 것도 없다. 우주, 별의 탄생과 죽음, 태양계, 원자, 양자 같은 이론과 지식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읽기에 어렵다. 자연과학은 기본이 어렵다. 이 분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고 영역이다. 이들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피보나치, 오일러, 갈루아, 가우스, 칸토어, 페렐만, 힐베르트, 리만, 와일스 같은 수학자,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닐스 보어, 프랑크, 패러데이, 뉴튼,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슈레딩거, 페르미, 케플러, 파인만 같은 물리학자 그리고 자연과학 각 분야마다 존재하는 무수한 천재들은 인류의 0.0001%도 안 되는 매우 뛰어난 존재들이며, 인류의 빛과 희망이다.
우리는 이들 천재가 만든 길을 따라가며, 그들이 만든 세계를 보고 놀라고 감탄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만든 세계가 우리의 생활을 놀랍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이 만든 세계는 우리 삶과 생활에 직접 이해관계가 없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이성 활동'의 놀라움과 순수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한 학자, 전문가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을 위해 최대한 쉽게 쓴 자연과학 개론, 기초 입문서를 많이 출판하고 있다. 내가 자연과학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00년 초반부터인데, 이 시기가 한국출판계에서 자연과학 책을 본격 출간하던 때라고 알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사회과학과 문학이 주류였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출판의 흐름에도 변화가 온 것이다.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선두에 서서 대중을 이끈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였다. 이 책은 1980년대 초반에 출간했으니 이제 40년이 된 고전이지만, 여전히 잘 팔리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만큼 진화론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한글로 번역한) 다른 책들을 다 읽고, 진화와 관련한 다른 책들, 수학, 물리학, 천문학, 우주와 관련한 책들을 꾸준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다 어려웠지만, 어려워도 꾸준히 읽으니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고, 여전히 모르는 내용이라도 읽으려 노력한다.

이 책은 우주의 시작과 진화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주가 138억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에 우주로 올라간 제임스 웹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하게 되면 또 어떤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을지 몹시 기대하는데, 지금의 과학으로도 빅뱅 이후 10의 -35초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추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더 놀라운건, 10의 -35초에서 -33초 사이에 가속팽창을 한 것까지 밝혔는데, 우리의 상상으로는 10의 -35초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순간인데, 이걸 현대 인류의 과학이 포착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빛이 도달한 거리까지여서, 138억년의 시간이라고 알 뿐, 그보다 멀리 있는 우주는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우주가 여러 개인지, 닫혀 있는지, 몇 개의 차원인지 아직 모르는 것이 매우 많지만, 인류는 멸종하는 순간까지 우주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옛날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 채널 사이에서 지직거리며 화면이 물결처럼 흔들리면서 잡음이 들리는데, 그게 바로 '우주복사'의 흔적이고, 138억년의 파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우주와 아무 관련도 없지 않다는 걸 깨닫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가 우주에서 온 것이며, 우리가 죽어 육체가 사라지면 모두 원자가 되어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는 이 '과학적' 사고방식이야 말로 어떤 '종교'나 '신'보다도 더 아름답고 신비하지 않은가.
우주를 공부하는 건 '순수한 기쁨'을 얻는 지식이자, 삶을 겸손하게 살아가는 동기가 된다. 우리는 저 우주 속에서 '창백한 점'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날뛰어도 우주에서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로 살다, 바다의 파도 위에 잠깐 떠오른 물방울처럼 이내 사라지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우주를 바라보고, 우주를 생각하는 건, 내가 '인간'으로 진화한 동물의 후손이고, 말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으면서, 더 없이 고맙고 행복하게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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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ls78 2023-02-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