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설거지 - 안정효의 3인칭 자서전
안정효 지음 / 세경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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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설거지


안정효 작가와는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세월의 어느 지점에서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효 작가 고향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434번지인데, 내 고향은 공덕동 432번지였다. 번지수만 보면 이웃이다. 다만 안정효 작가는 나보다 꼭 스무살 연상으로, 거의 한 세대에 가까운 어른이다.
그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마포가 배경이며, 고등학교 시절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안정효는 이미 중학 1년 때부터 영화광이었으며, 그의 삶에서 영화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도 '유명한 번역가'에서 출발해 '실천문학'에 연재된 '전쟁과 도시'를 읽으면서였다. 
안정효는 이미 대학생 때부터 영어를 잘 하기로 유명한 학생이었고, 졸업하기 전에 이미 영자 신문사에 취업했다. 그는 번역을 업으로 삼기 전인 학생 때 영어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소설을 미국에서 출판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여러 번 미국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며 작품 출판을 시도했으나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 '세월의 설거지'는 안정효의 자서전이다. 다만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자신을 대상화한 것은 상황을 보다 객관으로 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짐작했다. 1인칭 '나'로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면 직접 말하기 괴로운 장면이 많고, 뒤로 갈수록 자기 자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완화하는 방식이 3인칭 서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정효는 1941년에 태어났으니 해방과 전쟁을 어릴 때 겪었다. 어릴 때 겪은 전쟁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그의 가족이 마포에서 안양으로, 다시 할머니가 계시는 소사(부천)에서 전쟁을 겪고 집(마포)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어린이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의 가족은 전쟁 때 불에 탄 집을 아버지가 스스로 지었으며, 가게를 서너 개 만들어 세를 놓을 정도였다. 그 동네에서는 그나마 사는 형편이 나은 가족이었다. 전쟁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1950대 중반부터 작가의 집은 부자는 아니어도 굶지는 않는 생활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내용은,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석공으로 일하러 다녔는데, 석공이 쓰는 연장을 벼르는 대장간을 집에 설치해 놓을 정도였다. 집도 직접 지을 정도로 손재주도 좋은 작가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재주 있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아버지가 된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보면서 자랐다. 두 사람은 육탄전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동네가 떠들썩하게 욕설이 난무하고, 집안의 살림이 날아다녔다. 그래도 아버지는 점잖은 편이고, 어머니를 때리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비난했으며 그럴만한 이유도 충분했다. 어릴 때 부모가 싸우는 장면만 보고 자란 나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아버지의 일방적 폭력을 겪어야 했던 작가의 어머니와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문제는, 작가의 아버지가 아내를 구타하는 시기가 아이들이 어릴 때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모두 자라서 청년이 되었을 때도 여전했다는 것이다. 자식이 어릴 때는 아버지의 권위와 물리적 폭력에 저항하기 어렵다고 해도, 청년이 된 상황에서 아버지의 폭력을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여전히 어머니는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부부싸움을 하던 아버지에게 대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무능했다. 나는 어머니 편에서 아버지를 비난했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작가의 아버지에 비하면 더 없이 선량한 인간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거의 대부분은 작가의 글쓰기와 관련한 내용이다. 작가는 중고등학생 때는 만화를 그렸고, 대학생이 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머리 좋은 인물이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지망할 계획도 있었지만 친구의 권유로 서강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해서는 곧바로 영어를 다른 친구보다 월등히 잘 하는 학생이 되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으로 작가의 삶은 큰 줄기가 결정되었다.
영어를 잘 했기 때문에 영자 신문사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브리태니커 편집부장이 되었으며, 한국 최초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마침내 자기 소설을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하게 되었다.
'하얀 전쟁'과 '은마'가 미국 소호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영어권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뉴욕타임스'의 서평란에 큰 지면으로 소개된 것은 한국작가 가운데 안정효 작가가 최초다. 하지만 이런 기록도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때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라는 특성도 있었으나, '번역가 안정효'를 '작가 안정효'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작가 안정효는 50세 이후부터 창작 활동이 더 활발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문학에서 의미 있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가 너무 유명한 번역가로 알려진 것이 오히려 '소설가'로 진입하는 장벽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작가 가운데 영어를 뛰어나게 잘 하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그 가운데 최고가 안정효 작가가 아닐까. 과거 남조선 노동당원이자 미군정에서 근무했던 설정식도 영어를 잘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는 너무 짧은 삶을 살았고,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은 한국인이 직접 영어로 쓴 소설로 미국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안정효 작가가 아직까지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해방과 전쟁을 겪은 세대이며, 폐허인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고, 가난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으며, 당시 한국 문학, 문화계의 첨단을 달리는 소수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된 생생한 기록이며, 그 자신이 이룬 많은 성과 역시 우리 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자서전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이자, 한국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며, 한국문학과 영문학의 화학적 결합을 목격하는 현장이고 한국문학이 나갈 미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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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 모두, 좌현으로!
장 이브 르 나우르 지음, 마르코 그림, 소서영 옮김 / 팬덤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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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이미 오래 전부터 '좌파'는 상품성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좌파' 따위에 관심이나 가질까.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을 절정으로 좌파는 사라지고, 약간의 학생운동과 약간의 노동운동, 약간의 '진보적' 정당만이 자신을 '좌파'라고 주장하거나, 수구 집단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레토릭으로 '좌파'를 써먹을 뿐이다.
'좌파'는 한국에서 '빨갱이', '공산당', '친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추종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쓰이며, 수구 집단의 공격 무기로 전지전능한 흉기로 작동하고 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할 때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NL, PD 같은 그룹으로 나뉘어 사상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한국에서 '좌파'의 활동이 사라지는 시점과 자본주의가 더욱 강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비슷하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민간 정부로 시작하면서, 군부의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정책도 있었으나 결국 외환위기를 맞으며 침몰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좌파'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거나, 흡수된다. 이후 좌파의 전위여야 할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서 노동계급의 중산층화는 대중의 개혁 의지를 소멸시킨다. 이제 대중은 '개인'의 욕망에 집중할 뿐,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주체인 '노동자' 또는 '민중'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주5일, 최저임금, 의료보험, 각종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건 지배계급이 마음이 좋아서 내려준 시혜가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한다. 오늘같은 세상이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행복은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통해 자기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개인의 '노오오오력'은 지극히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좌파'의 시작과 기본 이념은 지배계급인 왕,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에 맞서 노동자, 농민, 대중의 민주주의 권리와 인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1990년대 쏘련의 붕괴와 동서독 통일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 다수의 결론이다. 여기에 중국도 경제 작동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는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한 경제체제이자 정치경제학적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발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좌파'의 역사라면 딱딱하고 복잡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 정도로 쉽게 설명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16세기 토마스 모어부터 현대까지 공상적 사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태동,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투쟁,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이합집산과 공산당의 발생, 유럽에서 발생한 몇 번의 혁명과 혁명가들의 죽음, 레닌이 일으킨 볼쉐비키의 러시아 혁명, 프랑스 좌파의 여러 그룹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 19세기에 이미 사회주의, 공산주의 활동이 무르익고, 1차 세계전쟁 와중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당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공산주의자 활동과 공산당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론의 무기로 채택되었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대륙의 약소국가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무기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북조선의 김일성 등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가장 먼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쏘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금도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모든 대륙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의 충격파를 통해 전달되었고, 한국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에 이어 1920년 최초의 공산주의자 정당이 탄생한다. 
2차 세계전쟁 이후 연합국이었던 쏘련과 미국, 유럽은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한 갈등과 경쟁으로 '냉전'을 시작했으며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은 세계 냉전의 모순이 물리적으로 폭발한 강대국의 대리전 성격이자 한국의 이데올로기 내전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중진국, 후진국을 중심으로 군사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동시다발적 사태는 냉전 이후 체제 경쟁에서 앞서가려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가 경쟁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 반대로, 이 시기에 수 많은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를 중심으로 하는 무장 투쟁도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은 남미 여러 나라에 CIA를 투입해 돈과 무기, 인력을 지원하면서 사회주의 반대 투쟁, 극우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때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역사의 전면에 떠올랐고,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1960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이 발발했고,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지만,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극우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세계의 좌파 역사를 다루지 않고,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좌파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만든 좌파의 시작과 그 발전의 역사를 매우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좌파의 역사를 거대 담론과 함께 사회주의자의 계보, 공산주의자의 계보를 비롯해 유명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와 그들이 만든 수 많은 단체와 정당, 노동조합 등이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고 이합집산하는가를 알 수 있는 쉬운 자료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를 배우려면, 여기서 기본 상식을 이해하고, 보다 구체적인 각 나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좋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는 이미 꽤 많은 책이 출판되어 있으며, 흔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좌파'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가장 기초적인 책으로 이 책 '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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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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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작가 : 조 사코
출판 : 글논그림밭

만화책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이 만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중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 무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접점이 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하게 미국과 유럽 쪽 역사에 편향된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동 뿐이랴. 아프리카의 역사는 어떤가. 우리가 수단이나 나미비아,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자의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 편향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도 우리는 미국의 '백인'들이 기록한 역사를 읽고, 판단한다. 미국인-주로 백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책으로 꼽는 것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인데, 미국인의 주류인 백인들도 '미국민중사'에서 말하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렇듯, 어느 나라의 역사든 기록은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어떤가. 심지어 자기나라의 역사조차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려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사라니.
결국 이런 역사 공부를 하려면 혼자 책을 찾아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는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배우지 않거나, 잘못 배우면, 그 위에 쌓는 지식은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 만화책에서 작가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에서 멀어진 1956년의 학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남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인데, 이런 처참한 학살 행위가 UN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오늘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나라들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돕지 못하거나, 않는 이유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권층이 존재하는 나라는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고, '반미, 반유럽'을 외치는 나라들은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낙인 찍히고 미군의 침략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운명을 갖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미시적 역사 기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떨까.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저항하다 죽는 것과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 오로지 그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당신은.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슬람 패권주의,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미국 사이에 벌어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이집트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긴장, 범 이슬람 진영과 범 친미 진영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업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뺐긴 것도 억울한데,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자 지구로 들어온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치 한국에서 남북한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땅에서 거지처럼 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 재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맨손으로 가자 지구로 들어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마져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학살로 인한 공포 속에서 늘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11월 2일 가자 지구를 침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아무 이유 없이 집단 학살을 시작했고,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 생존자의 증언, 생존자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 학살당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의 증언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한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이 지금 서울 면적에 한국인 5천만 명을 집어 넣고, 서울 외곽 경계에 높은 담장을 두르고, 서울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검문, 검색을 하며, 아무런 통지 없이 출입문을 닫아 걸고 몇날 며칠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필품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는 엄청나게 높고, 경제 활동이랄 것도 없어서 거의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빈곤층이 90%에 이르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거의 원시상태에 가까운 삶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고,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사회 즉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몸부림을 '테러'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분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현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폭행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으며,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왜곡,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유대 민족처럼 '국가'가 없고,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민족이어서 지금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해자 이스라엘의 악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현실은 실재하는 지옥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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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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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프로메테우스, 촛불, 헤라클레스
조국, [조국의 시간]을 읽고

신의 아들이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비켜가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제우스에게 받치는 인간의 제물을 만들었으며,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의 전략에 분노해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자 다시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몰래 가져다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한 신'이자, '인간의 옹호자'이며, '선지자', '먼저 생각하는 자'로 알려졌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신'의 존재였으나, 나약한 인간을 위해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길 마다하지 않았다. 
조국 교수는 자기가 금수저임을 인정하며며,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도 조국 교수가 금수저이면서 우월한 유전자의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서울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강남 거주, 모델 뺨치는 외모 등 단 하나도 빠지지 않는 조국 교수는 상위 0.01%의 특별한 존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뺐은 불을, 인간을 위해 다시 가져다 준다. 그러다 제우스가 분노하고, 그에게 벌을 내린다.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 엘리트를 위한 검찰의 기득권을 해체해 국민에게 사법평등을 이루도록 노력했으나, 야당, 검찰, 언론의 집단 공격을 받아 가족이 멸문지화의 화를 당하고, 조국 교수는 물론, 가족들까지 심한 내출혈로 죽음의 아가리에 빠지기 직전에 놓여 있다.

검찰 권력은 마치 제우스의 분노처럼, 한국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으며, 한 사람을 찍으면, 그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집요하고 잔인하며, 악랄하다. 살인자도 피해자를 칼이나 둔기로 한번 휘두르고 마는데, 검찰은 권력의 칼과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검찰이 찍은 대상이 난자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싸이코패스와 같다.

검찰은 일제강점기부터 막강한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자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에서 사회주의자, 진보인사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박정희,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에는 반정부, 민주주의자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검찰은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반정부' 민주주의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검찰은 더 이상 권력의 의도에 맞는 기소를 하지 않아도 되면서, 검찰은 검찰 스스로가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검찰 출신은 한국 최고 엘리트이면서, 정치를 포함해 상위 권력그룹, 상위 경제그룹에 포함되는 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통제되지 않는 검찰 권력을 통제하지 않고, 그들의 자정 능력을 기대했으나, 결국 검찰의 잔인한 보복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하는 '사회적 타살'을 맞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촛불시민들은 9년이 지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비서실장이 권력을 잡도록 이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검찰 개혁을 하라는 것이 촛불시민의 지상명령이었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조국 민정수석이 지목되었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되거나, 임명직 법무부장관이 되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였다. 어느 길이든 한쪽으로는 가야만 했다. 조국 교수는 대학교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기에,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법무부장관을 선택했다.

프로메테우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선택했다. 그가 인간을 버렸다면, 신으로서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조국 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민정수석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복귀하면 그는 최고의 엘리트, 강남의 상류층으로 늘 존경받으며,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하지만 조국 교수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해체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확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제우스의 분노로 프로메테우스는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조국 교수는 검찰이 휘두르는 권력의 칼과 창과 쇠스랑과 도끼에 찍혀 만신창이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를 구한 건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신 제우스와 인간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이다. 인간이 신을 구한 것처럼, 엘리트이자 강남좌파 조국 교수를 구한 것은 서민인 촛불시민들이다.
촛불시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끌어내렸으며, 검찰이 휘두른 권력의 칼날로 신음하는 조국 교수와 그의 가족을 촛불을 들어 구했다.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에게 불을 건낸 것처럼, 조국 교수도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으며 검찰 개혁을 우리 사회에 안겨줄 것이다. 이미 그 단초는 시작되었고, 조국 교수가 쓴 '조국의 시간'은 촛불시민이 서초동에서 들었던 촛불처럼, 한권, 한권이 촛불처럼 빛나며 검찰의 무도한 권력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 길에 프로메테우스의 헤라클레스처럼, 조국에게는 촛불시민이 함께 한다. 조국은 개인이면서, 검찰개혁의 아이콘이자, 상징이다. 그 상징을 빛내는 것이 바로 촛불시민이고, [조국의 시간]을 든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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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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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님, 항상 힘차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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