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로 - [초특가판]
영상프라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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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는 살바도르의 대주교이다. 그는 1980년 3월 24일   암살  당했다. 바로 광주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군사독재정권이  극악무도하게 행동한 시기가 어쩌면 우리와 그렇게 일치할 수 있을까.  당시 남미는 '해방신학'이 카톨릭과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와 호응을 얻으며 솟아 오르기  시작한 때였다. 이것은 바로  남미의  열악하고 참담한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극우 군사독재정권이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쿠바의 혁명이 성공하자 남미의 여러 나라 민중들은 새로운  세계를 그리며 민족해방투쟁을 벌여 나갔다. 미제국주의의  착취와 탄압으로 허덕이던 민중들은 평등한 세상과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군사독재정권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무기로 자기 나라의  민중들을 대량  학살하며 집권을 한다. 이런 가운데 남미에서 깊은 뿌리를  내린  카톨릭이 어떠한 태도로 나오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었다. 
 남미에서는 종교, 특히 카톨릭은 생활이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종교와 하나가 되어 있으며 사제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제들의 행동은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살바도르에서 평범한 주교 가운데 한  사람인 로메로 역시 그가 살고  있는 조국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고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보통의  사제였다. 그런  그가 로마 교황청에서 대주교로 임명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전부터 주위의 진보적인 사제들의 영향을  조금씩  받기는 하지만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민중들의 삶이  척박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군사독재정권이  폭력적  탄압을 하고 있는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대주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밀어닥친 현실에  어쩔 줄을 모른다. 민중들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실종된 사람은  수  만명에 이른다. 평화로운 미사 집회에 총을 쏘아 수 십명이 살해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조금씩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은 종교의 비판마져도 받아들이지 않고   탄압하기에  이른다. 민중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제를 학살하고  체포하여 고문한다. 마침내는  대주교인 로메로 자신마져 체포 당해  유치장에 구금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은 대주교를 만나주지 않고 정치범 석방 탄원에 '정치범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모순과 비리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로메로는 마침내 종교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깨닫고 그것을 민중들에게 설교한다. 강도 높은 비판은 민중들을 일깨우고 군사정권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는 말한다. "미국은 더 이상 살바도르를 지원하지 말라. 미국이 지원하는 무기가 우리 민중들을  학살하는데  쓰이고  있다." "종교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있어야 한다." "고통받는 민중들이여, 그대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이렇게 민중의 편에 서서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던  로메로는 마침내  암살 당한다. 군사독재정권이 그를 암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생전에 그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도 태연히  말했다. 
 "나를 죽이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는 죽어서 살바도르  민중의 가슴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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