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향수]를 읽고

 책읽는 재미를 느끼는 것은 읽는 이의 취향과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특이하고 신비한 것에서 더 큰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소설들의 내용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못난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내가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져 있거나 리얼리즘을 외면하고 있어서는 아니고 한 사람의 평범한 독자로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최근에 독일작가 - 이름을 잊었다. '쥐스킨트'인가... 나의 이 몹쓸 기억력을 탓하며 - 가 쓴 것을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냈 [향수]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강하게 느꼈는데, 이전에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추]를 읽으면서 정말 충격을 받았던 나는 그 충격때문에 다른 책들이 한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그만한 재미와 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어디 그리 흔하랴. 좋은 책을 읽고 눈이 높아진 것을 탓해야 할지 어쩔지 모르던 때에 그나마 [향수]를 다시 찾아 읽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향수를 읽어나가면서 참으로 강한 호기심과 흥미가 끌렸다. 에코처럼 대단히 지적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지적이었으며 작가가 역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17세기 프랑스의 풍속을 마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소재를 취급한다는 것은 소재면에서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 소재를 어떻게 주제 속에서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녹여낼 것이가가 역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작가라는 것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범위에서 치밀하게 작업을 하는 사람을 일컬을 수 있겠다. 
 이 작품 [향수]역시 그런 훌륭한 작가가 드러내는 멋진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독자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책을 읽는 순간에는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어디있으랴. 사실 나는 에코의 일련의 책들과 이번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으면서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작품 속에 내가 들어가서 마치 주인공의 그림자처럼 모든 사건의 장소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만큼 향수는 나를 매료시켰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자주 쓰는 향수의 발달사 속에 이러한 이야기가 없으란 법은 없다. 어떤 분야에 천재가 등장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것이고 이것이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조금은 괴기하고 잔혹하며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이 작품의 분위기는 확실히 '서양'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서양과 동양의 인종들은 그 문화와 풍속을 매우 다르게 발전시켜왔다. 이렇게 다른 문화의 발전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 즉 가치관이 다르게 변해왔음을 나타내며 그것은 어떤 면에서 아직까지도 우리들이 극복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향수]라는 문학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도전적이며 실험적이고 그런 점에서 매우 진취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때로 매우 황당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우리 동양인들로서는 별로 신기해하지 않거나 이니면 거의 생각지 않는 것들 가운데서 그들은 어떤 의미를 찾기도 한다. 예를 들면 드라큐라 백작이라든가 늑대인간, 마녀, 유령 등이 그렇다.우리 동양에도 이러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모습을 약간씩 달리 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매우 인간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대안까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서양의 괴기함이란 이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영적 - 신적 - 존재에 기대를 거는 수가 많다. [향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향수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장면부터 매우 잔인하고 혐오스러우면서도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은 결국 마지막까지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17세기 서양의 사회상이 이렇게 미개하고 야만적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독자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믿는다. 17세기라면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지혜와 과학이 점차 뿌리를 내리는 시기인데, 서양에서는 이러한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비이성적인 부분도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인간을 괴롭혔다. 
 로마 가톨릭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고 민중들의 삶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한 천재가 자기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26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죽여 향수를 그것도 인류의 역사상, 전세게에서 단 하나이며 최초의 향수를 만든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향수의 발명이 시작된 동기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의 더럽고 어두운 사회에서 향수가 한 역할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무서운 천재가 나타난 것이다. 
 [향수]는 소재, 문학성, 문장(물론 원작을 읽지는 못했지만 번역이 좋은 것을 보니 원작도 분명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묘사 등 어느 하나 나무랄데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신비스러운 사생활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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