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쾌청한 날씨. 간단하게 물과 사과, 빵을 넣은 배낭을 메고 똥이와 함께 산으로 갔다. 이 마을에 들어온지 벌써 8년인데도 아직 중미산 정상을 올라가지 못했다. 참 많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면서 중미산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집에서 약 2킬로미터 정도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야 한다. 아침 시간이라 다니는 자동차는 많지 않았다. 도로 옆에는 눈이 쌓여 있고, 도로 옆 계곡과 산비탈은 온통 가난한 나무와 흰 눈 뿐이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고, 걸으니 땀이 났다. 서종면과 옥천면 경계를 벗어나 조금 올라가면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로가 있다. 자동차 도로를 벗어나니 마음이 놓이고 발걸음이 편하다. 임도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포장만 안 되어 있을 뿐, 다니기 좋은 길이다. 이 도로가 전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햇살이 화창하게 빛나고 가끔 바람이 나뭇가지를 지나가는 소리가 마치 물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새소리와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도 들린다. 첫 번째 갈림길은 명달리 넘어가는 길과 중미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다. 이곳부터 중미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리는 휴양림 쪽으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서 올라가기로 했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니 중미산 올라가는 직선 코스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중미산 휴양림 매표소 방향이 나온다. 여기서 똥이는 산에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했다. 결국 똥이엄마가 중미산 휴양림 매표소까지 차를 가져와서 똥이와 함께 중미산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고 내려가기로 했다.
혼자 산행을 시작했다. 갈림길의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미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파른 길 때문에 더 힘이 많이 들었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오르막 길을 힘겹게 올랐다.
정상 근처에서는 사과 한 조각을 꺼내 먹고, 충분히 쉰 다음 다시 올랐다. 정상은 곧 나올 듯, 보일 듯 하면서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에서 한 시간을 올라서야 겨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은 갑자기 불쑥 나타났다. 솟아오른 바위가 접근하기 어렵게 보이는데, 이 바위를 올라서면 곧바로 정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아무도 없다. 올라올 때도 오늘 생긴 발자국이 없어서 내가 오늘 처음 오르는 등산객임을 알 수 있었다. 정상 표지석 옆에 앉아 물을 마시고, 빵을 꺼낼 때 사람들이 왁자지껄 올라왔다. 단체로 두 팀이 더 올라와서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중미산은 해발 834미터로, 여기 정상에 서면 멀리 용문산, 유명산, 청계산, 화악산 등 근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한참을 정상에 앉았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다른 코스를 택했다. 올라올 때 너무 가파른 길이어서 몹시 힘들기도 했지만, 같은 길을 다니는 건 지루해서 좋아하지 않아서다. 경사가 조금 완만한 곳을 택해 내려오는데, 이곳은 눈이 정강이까지 푹푹 빠졌다.
등산객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지만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가 몹시 차갑다. 신이며 양말이 금새 젖어 질벅거린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눈속을 헤치며 내려왔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릴 뿐, 산은 고요하다. 저 아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가장 큰 소음이다. 눈 위에는 고라니, 멧돼지의 발자국이 남아 있지만, 낮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뻐근하다. 오랜만에 산행을 했고, 다섯 시간을 걸었으니 꽤 운동이 되었을 게다. 샤워를 하고 운동화를 빨아 널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동형이 아빠가 전화했다. 오늘 서울로 자전거 타러갔던 아빠들이 곧 도착한단다. 문호리로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나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체력 때문에 거절하고 산행을 한 것이다.
올 여름에 제주도로 자전거를 타러 갈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체력을 다져야 한다. 산행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꾸준히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