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가는 기차 안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리움이 짙게 배인 싱그러운 바람이 있는 추석 다음날 오전입니다. 좋은 벗이 있는 고향, 양평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기쁨으로 설레입니다. 마침 김용길 시인의 “양평”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양 평

 

양평에나 갈까

아니 평양에

거기 눈빛 고운 아이를 찾아

시나 읊어주고

낚시나 할까

 

구름 그림자가 물로 들어서

싱싱한 물고기로 튀어오르고

아버지가 물가 저편에서

하하하 웃으시는 웃음이

쩔렁거리며

흔들려 오는

물많은 동네

 

란이는 이미 시집가고 없지만

피난온 아버지와 의형제 맺고

우리를 서로 맺어주기로 했다는

그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어머니가 해주시는 채나물밥

소주한잔 걸치는 매운탕이 좋아서

마음이 적적할 때면 버스를 타고 가보는

또다른 고향

 

제일 추운 곳이면 어떠냐

평양에나 갈까

아니 양평에

물그림자는 하늘로 올라

아버지 얼굴이 되고

뚝뚝 듣는 그이를

내가 듣으리

 

넉넉한 마음으로 입석표를 끊고 객차의 끝에 자리를 잡습니다. 마침 내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뒷자리도 한가롭고 바람은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돌고 지나갑니다. 덜커덩,하며 열차가 출발하고 나는 편히 자리를 잡고 앉아 기차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행선 철로, 은빛으로 빛나는 두줄기 선이 무한히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기차를 따라옵니다. 철도 주변으로는 아직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나무와 풀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몸을 흔들고 전봇대와 전깃줄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습니다. 지나치는 논밭 풍경은 가을의 절정을 알리는듯 탐스러운 황금빛으로 빛나고 팔당 유원지에는 나룻배가 여러척 색색으로 떠다닙니다.

평행선, 따라오는 철로를 보니 생각이 납니다. 아, 철길 아래로 한강의 상류가 푸르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열차는 벌써 세 개의 터널을 지나고,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성묘온 사람들의 흰옷이 선명하게 빛나보입니다. 평행선, 뭔가 많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단어입니다. 서로가 그리워하면서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던가요. 하지만 서로 만나지는 못해도 영원히 함께 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큰 행복이겠지요. 사람은 어차피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존재일테니까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양평입니다. 오늘, 그리고 이렇게 가슴 저리도록 싱그러운 날, 나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존재와 함께, 나와 함께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감사함과 행복이 고루 함께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때때로 불행해지더라도 외면할 수 없는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뜨거운 사랑을 할 것입니다.

은빛 철길이 여전히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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