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비엩남에 공식 사과해야 한다.  
        - 한국과 비엩남과의 수교를 보면서


  오늘(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비엩남 사이에 국교가 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미국의 경제재제 조치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비엩남으로서는 어떻게하든 현재의 경제상태에서 벗어나 힘겨운 민중의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보다는 현실적인 안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사라지고 경제문제가 더 크게 각 국가의 경쟁이유가 되고 있는만큼 국가의 부를 축적하지 않고는 세계사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비엩남과의 국교수립은 참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지난 시기 60년대 말과 7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두 나라 사이의 적대적인 감정을 모두 없애고 미래의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이어가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는 이번 수교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없을듯하다. 
  그러나 한국과 비엩남과의 수교를 하는데 있어 한국은 비엩남 정부에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할 일이 남아있다. 사실, 수교를 하기 전에 이러한 일들은 모두 합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쪽에서도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한 적은 없는듯 하다. 한국쪽으로 볼 때는 매우 거북하고 씁쓸한 기억이고 비엩남으로서는 그들의 너그러움과 함께 현실적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정치적 발언을 자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한국쪽에서는 먼저 비엩남 정부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어야 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당한 식민지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1965년 일본과 굴욕적인 수교를 할 때에도 보상문제가 거론되었으며 최근에 일본왕의 ‘유감’발언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감정을 삭히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감정은 조금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제국주의이며 침략자인 일본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비난과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비엩남에서 저지르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말에 반발을 할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미국을 도와서 싸운 것이고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성전’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틀렸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카시의 화신이거나 정신병자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비엩남이 통일되기 전에 북비엩남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한 장군은 한국의 비엩남 참전을 가리켜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북비엩남이 남비엩남과 전쟁을 한 것은 외세가 우리의 땅을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은 프랑스와 일본, 미국과 같은 외국 침략세력이었습니다. 자신의 민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투쟁을 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엩남에 가서 한 일은 무엇인가. 미국은 비엩남을 침략한 침략자 제국주의자였고 우리는 그 제국주의자들을 도운 그야말로 ‘괴뢰’였던 것이다. 당시의 박정희 군부독재는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었으며 또한 비엩남에 진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매우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그 열대의 낯선 땅에 보내 외화를 벌었으며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당시에 진보적인 잡지였던 월간 사상계의 사장이었던 장준하씨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월남파병 승인을 반대하며 조목조목 따져 사설로 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옳은 소리도 냉전 이데올로기에 묻혀버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은 폭염이 쏟아지는 낯선 땅에서 무려 4천 6백명 이상이나 죽어갔던 것이다. 그 피의 대가로 한국은 경제건설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제 어느정도 먹고 살만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금은 민주화가 되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제 잊혀지기를 강요 당했던 역사, 바로 비엩남의 침략사에 대한 재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며 우리가 비엩남 민중과 정부에 정식으로 사과해야 함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며 우리의 지난 부끄러움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 역사적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비엩남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의미였는지 모른다. 아니,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해 쇄뇌당해 있다. 마치 자신에게 반대하는 것은 모두 ‘빨갱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비엩남에서의 그들의 행위를 ‘반공’의 일선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자부심으로 남아있다면 그런 사람은 몸보다 더 큰 정신적 상처를 입은 것이다. 
  비엩남 민족해방전쟁은 우리의 남북전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만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가장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한 나라의 민중들이 선택하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할 수 없다. 비엩남 민중들에게는 ‘호치민’이라는 참으로 존경할만한 인물이 있었으며 조국과 민족을 자신의 몸보다 더 사랑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른바 ‘베트콩’으로, 또는 ‘민족해방전선’의 투사로 전선에서, 생활 속에서 목숨을 바치며 투쟁했고 비엩남을 마침내 통일시켰다. 
  미국의 막강한 화력과 물질의 도움으로 정권을 버텨온 남베트남의 군부독재는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패와 타락의 속성으로 몰락해버리고 말았지만 가진 것은 없어도 순수한 열정과 불타는 조국애로 몸을 던진 북베트남은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북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무려 90만명이 죽었으며 150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에 비해 남베트남 젊은이들은 20만명이 죽었고, 90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이름없는 민중들이 그 사이에서 죽어갔다. 이것이 바로 비엩남 민족해방 전쟁이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수많은 외국의 연합군들이 비엩남에서 싸웠으며 명분없는 전쟁으로 괴로워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극악한 범죄전쟁’이라고 규정한 이 비엩남 민족해방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극악한 역할을 맡았던가. 비엩남에서 ‘따이한’은 잔인함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미국을 제외한 연합군의 수가 6만명일 때, 우리 한국군의 수는 무려 5만명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가 참전하여 비엩남 민중의 염원을 방해하고 그들의 역사를 갈갈이 찢어놓고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어찌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빈손만으로 해방의 깃발을 드높인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느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존경의 대상이다.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우리가 지금도 존경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인 것이다. 시오니즘적 민족주의는 옳지않지만, 전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어느 나라이건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없고 또, 침략 당해서도 안된다. 만일 그러한 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제국주의의 시작이며 나치즘의 발현인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편협된 사고와 경직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모택동 주석을 존경하고, 러시아의 레닌을 이해하며, 독일의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들을 주의깊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미국이 지원한 모든 제3세계국가들의 모습이 군사독재와 매판자본이었음을 상기하는 것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겠는가. 우리는 쿠바를 시작으로 니카라과, 살바도르, 칠레, 온두라스 등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옳은 것은 무엇인가. 옳은 것에는 분명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이 자신의 의식과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개인의 이기주의는 그 자신의 피해로 막을 수 있지만 집단이나 국가의 이기주의는 결국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역사를 피흘리게 한다. 우리는 이제 그만 피흘려야 한다. 
  중국과 수교를 하고, 러시아와 수교를 하고, 비엩남과 수교를 했다. 모두 이른바 ‘공산주의’의 망령이 떠돌던 나라이다. 우리는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 나라와 민중이 선택한 기준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이끌어온 모택동, 레닌, 호치민은 그 나라의 민중들에게 아직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그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으며 민족의 역사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그 나라 민중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으며 정의와 자유와 평화가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비엩남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우리의 자존심도 되찾아야 한다. 오천년 역사에 있어 고구려 때의 그 웅장함과 광활함이 있었던 시대는 있었을지언정 고통받는 나라를 침략하여 차마 못할짓을 한적은 없었던 우리 백의민족의 자존심을.


글쓴이 : 조금 시간이 지난 글이지만 요즘 베트남(정확한 명칭은 비엩남입니다.)에 관한 글이 올라오고 있어서 다시 올립니다. 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 비엩남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고 비엩남 민중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자신의 조국을 지킨 민중이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존경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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