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다녀와서


 

 늘 마음 속에 외경과 신비로움과 역사의 고통으로 각인되어 있는 지리산의 웅장한 자태를 그리다가 마침내 그 품으로 뛰어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다. 혼자서는 섯불리 뛰어들기가 두려울만큼 자연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무게를 지닌 산임을 잘 알고 있는터라 함께 가기로 한 바른글 친구들과의 동행은 다행스럽고 즐거운 길이었다.
 8월 1일 밤 12시 광주행 우등 고속버스표를 예매해 놓았다는 전갈과 함께 터미널에 10시에 모여 서로의 짐을 확인하고 알맞게 다시 분배하기로 했다. 함께 가기로 한 일행은 모두 12명. 11시가 되기 전에 10명의 회원이 나왔고 한 명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나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드시 나오겠다고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뜨리는 바람에 모두들 황당해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12시 5분 전까지 나타나지 않아서 모두의 마음을 졸이게 해놓고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처음부터 조짐이 않좋았던 출발은 결정적으로 버스표에서 드러났다.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오르자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버스표를 대조해보는 순간, 우리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매표는 8월 2일 밤 12시였던 것이다. 하루나 일찍 나와서 서둘렀던 모든 사람들은 기운이 쪽 빠져서 넋을 잃고 말았다. 표를 예매했던 친구는 미리 표를 확인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1시 55분 차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었고, 사람이 다 차지 않아서 우리 일행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둥에서 일반으로 격이 낮아지긴 했지만 한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새벽 4시 30분에 광주에 도착한 일행은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다시 구례로 가야했다. 그런데, 버스표 예매로 한번 실수를 한 친구가 남원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구례로 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남원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한번 황당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남원에서는 성삼재로 가는 버스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많은 일행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동을 하는 데, 번번이 실수를 하자 그 친구의 발언권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없을테지만, 일단 구례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구례에서 연료와 라면 등을 구입한 다음, 성삼재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본래 지리산의 종주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전에 왔을 때는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매우 힘들게 올라갔었다. 그런데 이제는 버스로 노고단 바로 밑에 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편해지기는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불편하다. 지리산의 중턱을 깎아 도로를 만들어놓았으니 산은 산대로 망쳐놓고 사람들의 통행이 많아지니 온갖 쓰레기와 인간의 손때로 산이 빠르게 죽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산행을 시작하는 일행들은 매우 힘들어했고, 처음부터 산행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노고단 산장에서 점심을 해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흐리고 구름이 뒤덮인 산은 주위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축축한 날씨였으나 산행하기에는 비교적 좋은 기후였다. 첫째날은 돼지평전, 임걸령, 노루목을 지나 뱀사골 산장까지 왔다. 산행의 초기단계는 매우 힘이 들기 마련이다. 산을 잘 오르는 사람도 적응이 안되었고 산을 잘 못타는 사람은 몹시 힘들어했다. 뱀사골 산장에서 저녁을 해먹기도 어려웠다. 산장 쪽에만 물이 나오는데, 물을 한번 길러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사람은 매우 많아서 골짜기에 텐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이 인간의 더러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계속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데다 사람들도 어제의 산행에 지쳐서 그만 포기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느즈막히 다시 출발을 했다. 출발한지 오래지 않아 중간에서 합류한 한 동료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산을 잘 타는 이 친구 덕에 사람들은 힘을 얻어 둘째날은 상당히 많이 걸을 수 있었다.
 토끼봉, 총각샘, 연하천 산장, 삼각고지, 구벽소령, 신벽소령을 지나 선비샘에서 머물렀다. 선비샘의 야영장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어제의 경험으로 텐트도 일찍 쳤고 밥도 빨리해서 먹었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한다.
 아침 일찍 서둘렀으나 짐을 챙기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결국 9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석평전을 거쳐 촛대봉,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30분. 나는 일찍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일행들은 본래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세석평전에서 하산하기로 했었으나 모두들 장터목까지 왔다. 그리고 즉시 천왕봉에 올라 5시 30분이 되어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왔다. 힘겨운 산행을 한 것이다. 내일까지는 모두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이렇게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결국 천왕봉까지 오른 것은 잘한 일이다. 일행이 하산을 하고 나서 나는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가지고 간 전상국의 [유정의 사랑]을 읽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빠르게 텐트를 걷고 빵 한조각과 따뜻한 물로 아침을 대신 한다음 천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장터목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제석봉이 나온다. 제석봉에서는 천왕봉이 바로 보이고 지리산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사목들의 기묘한 모습들도 인상적이다. 어제 저녁에 날씨가 걷히고 달과 별이 나타날 때는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아침에도 비교적 날씨는 맑았다. 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산 아래의 구름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줄기가 마치 섬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천왕봉까지는 한 시간이 채 못걸렸다. 천왕봉. 넉넉한 대지의 어머니. 온갖 역사의 고통을 끌어안고 피를 흘리며 앉아있는 대지의 신. 모든 외경과 존경과 아름다운 찬사를 한몸에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지리산. 천왕봉.
 발 아래 구름은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고 광활한 하늘만이 거칠것 없이 드러나는 세계. 세상의 온갖 고뇌와 먼지같은 일상과 허장성세와 인간사이의 갈등과 반목과 이기심과 탐욕과 더러움과 협잡과 권력과 폭력과 추잡함이 한순간에 가시는 곳이다.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이 있고,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한덩어리 구름이 있고 오로지 자연의 신비함만이 존재하는 곳.
 그러나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은 여전히 더러웠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고 바위에 붙어 사진을 찍고 더러운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자연 앞에 겸손하지 않고 이기적이다.
 천왕봉에서 진주 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해 걸어내려오기 시작했다. 적막함. 이렇게 혼자 세상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나는 까닭모를 서러움이 복받쳤다. 며칠째 무리한 발바닥에서는 물집이 생기고 땅을 디딜때마다 아파왔다. 천천히 산을 내려오면서 아마도 한동안은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중산리까지 내려오니 12시. 부산가는 버스를 탔다. 오후 4시에 사상터미널에 도착. 연안부두까지 1시간. 제주도가는 배는 오후 7시 30분에 있었다. 표를 끊어놓고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기다렸다. 이렇게 큰 배는 처음 타본다. 배멀미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약도 먹었고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이 양쪽 발에 커다랗게 잡혀있다. 물집을 짜내고 조용하게 책을 읽었다. 전상국의 [유정의 사랑]을 모두 읽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주도가 보인다. 제주도. 이곳도 처음오는 곳이다. 박영옥 선생님이 계신 곳이어서 일부러 찾기로 작정을 했다.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왔다. 짐작으로 시청 근처에서 내린 것이 잘된 일이었다. 선생님네 가게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함께 먹고 관회와 함께 근처 함덕해수욕장으로 갔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저물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저녁이 되자 비가 많이 내려서 바다는 멀리서 구경만 하고 말았다.
 텐트에서 하루 자면서 제주도에 오래 머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라산에도 못올라가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어디 움직일만한 곳도 없었다. 아침이 되자 비는 더욱 거세졌다.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고 항공편을 알아보았더니 비행기는 운행이 된다고 했다. 내리는 비 속에서 탠트를 걷고 택시를 타고 선생님댁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에게 3만원을 빌어서 공항으로 나갔다. 8시 50분발 서울행 비행기를 탈려고 생각했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요금이 부족했다. 비행기 요금이 무려 4만 7천원이었던 것이다. 만원이 부족해서 부산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김해 비행장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시 갈아타고 나오면서 마음이 초조했다. 주머니에는 몇 천원밖에 없었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야만 했다. 돈 만원때문에 엄청난 시간의 낭비와 고생을 하는 것이다. 부산진역 앞 국민은행에서 30만원을 찾았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기차편을 알아보았으나 모두 매진. 대구까지 입석을 사서 연장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일단 표를 구입한 다음, 표를 환불하는 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표를 바꾸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서성이다가 새마을 표를 바꾸는 아가씨를 만났다. 예상이 적중했다. 조금 비싼 새마을이긴 하지만 시간이 아주 적당했다. 무조건 구입을 하고 조금 기다리지 않아서 새마을을 탔다. 그런데, 함께 탄 옆자리에 나에게 표를 판 아가씨가 앉았다. 알고보니 여행사 통역안내원이었다. 일본인 여행객의 안내와 통역을 맡고 있는 그 아가씨와 함께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행기로 서울에 오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결과는 좋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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