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꿈깨라!
먼저, 한겨레 신문 기사 한 꼭지.
서울시민 85% “나는 중산층”/시정개발연구원 ‘계층조사’
서울시민의 85%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평균적인 서울시민의 모습은 ‘26평형 아파트에 사는 4인 가족의 38살 남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개원 10돌을 맞아 ‘서울시 사회계층과 정책수요’ 연구를 위해 만 20살 이상 65살 이하의 서울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나타났다.
시정연이 시민들에게 상-중상-중중-중하-하층 등 5개 계층 중 자신이 어디에 속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물어본 결과, 최상위인 ‘상층’에 속한다고 밝힌 사람은 0.3%에 그쳤으며, 최하위인 ‘하층’에 속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8.3%였다. 중중층(46%)과 중하층(39%)을 합쳐 모두 85%가 일상적으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의식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또 △학력 △가문 △정치의식 등에서 중류층-하류층 사이보다 상류층-중류층 사이에 격차가 더 크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2002-10-30)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껍데기뿐인 허위의식을 깨뜨리라는 것이다.
중상 중산층, 중중 중산층, 중하 중산층의 분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벌, 직업, 소득수준 등을 고려해서 판단을 했겠지만,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런 가치판단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속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일까?
이것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중산층은 주관적인 관념으로도, 자신의 학벌, 직업, 소득수준으로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중산층은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당신이 가지고 있는 허위의식과 살얼음판 위에 있는 중산층이라는 껍데기를 벗겨보자.
월급 3백만원을 받는 직장인 홍길동씨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중산층에 속할 것이다. 세금을 공제하고 실제 수령액이 3백만원이 될 수도 있고, 세금을 공제하기 전에 총수령액이 3백만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홍길동 씨는 30평 아파트에 살고 있고, 소나타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고,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중산층의 개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중산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부터 잘못이다.
홍길동 씨는 매달 3백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세금으로 나가는 돈, 각종 공과금 - 아파트 관리비, 통신비 등 - 과 휘발유값, 차량유지비 등 기본으로 나가는 비용만해도 엄청나다.
여기에 아이들 교육비 - 사교육비를 감당하기는 엄두조차 못낸다. - 가 들어가야 하고, 대출금 이자 등도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벌써 지출되는 돈이 2백만원이 넘어간다.
문제는, 3백만원을 꾸준히 받고, 홍길동 씨네 집안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홍길동 씨가 그나마 근근히 중산층(?)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홍길동 씨의 부모님 가운데 한 분이라도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을 받게 되면 홍길동 씨의 가계는 곧바로 적자로 바뀌게 된다.
즉,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프게 되면 중산층 생활이라는 것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약 90% 이상의 국민들 - 약 4천만 명 - 은 가족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을 받게 되면 곧바로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 정도는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1천만원의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이 정도의 돈을 부담없이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담을 느낀다면 그들은 모두 중산층이 아니다. 따라서 홍길동 씨도 당연히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중산층은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라고 했다.
유럽처럼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고 의료와 교육을 완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홍길동 씨가 3백만원을 받아 세금으로 150만원을 낸다고 하자. 그리고 가족 가운데 누가 아프건 모두 무료로 의료 혜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과연 앞에서 3백만원을 버는 것과 150만원을 버는 것 가운데 누가 더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당연히 뒤의 150만원을 버는 것이 훨씬 더 잘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이 만드는 중산층인 것이다.
의료비와 교육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을 때, 다른 부분에서 조금씩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한다면 월급 150만원을 받아도 궁핍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자식들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사회적으로도 불안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구조 속에서는 한달에 5백만원을 벌어도 늘 삶의 토대가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자신의 생활이 붕괴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인 시스템이다. 적어도 의료와 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정책. 그래서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금 정책과 세금을 걷어들이는 경로가 투명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고, 월급장이들은 자신들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억울해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버는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분명하게 확인된다면, 돈을 내는 사람들 누구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의료와 교육 단 두 가지 정책만을 국가가 책임지고 이끌어 간다면 많은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도 부유세를 주장했지만, 세금의 형평성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유세는 당연히 필요하다. 100만원을 버는 사람의 50%는 50만원이지만, 100억을 버는 사람의 50%는 50억이다. 이럴 경우는 100억을 버는 사람에게 80%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형평성이다.
그러면 누가 애써서 돈을 벌겠냐고? 나라면 당연히 돈을 벌 수 있을만큼 벌고 세금으로 내겠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닌가?
이상론에 치우치고 있다고? 월드컵 4강도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상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다른 건 뒤로 미루더라도 의료와 교육만큼은 국가가 무료로 실시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정책을 개발하자. 국민이 하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