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즐거움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 사는 사람치고 관악산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이 서울의 북쪽에 자리잡은 명산이라면 관악산은 서울의 남쪽에 있는 명산이다. 그리 높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은 산이지만, 이른바 ‘악’자가 들어가는 산은 뭔가 심상치않은 기운이 있다고 말한다. 설악산이 그렇고 치악산이 그렇다. 하지만 관악산은 그런 명산에 비할 바는 솔직히 못된다. 다만 서울 근교에서 아기자기하게 즐길 수 있는 산이어서 좋다는 말이다.
서울사는 사람들은 북한산의 절경을 보고 감탄한다. 서울에 이런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않는다. 또한 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일수록 북한산에 대한 진가를 인정한다. 그렇다. 북한산은 서울 근교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절경이 빼어난 산임에는 틀림없다. 반대로, 관악산은 산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관악산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산세가 완만하고 지형이 평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볼 것없는 산은 아름답지 못한 여성에 비유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많은 산을 다니지는 않았다. 따라서 산의 진정한 맛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고, 앞으로 조금씩 그런 맛을 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산을 무척 좋아하고 시간이 있으면 가까운 산이라도 늘 찾는 편이다.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 유명하고 아름다운 산만을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산이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수련하고 그 앞에서 겸손을 배우는 외경의 존재임을 믿는다. 따라서 산을 오를 때의 그 힘겨움과 산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왜소함을 통해 삶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산이란, 명산이건 뒷동산이건 그리 가릴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큰 명산들은 그 산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신화적, 민중적 삶의 토대와 의미가 조금 더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많은 감동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관악산을 자주 오른다. 내가 관악산 줄기 바로 밑인 삼성산 자락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 1974년부터였으니까 20년동안 관악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고 답답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산을 오르거나 산에 대한 애정을 떠올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산을 올라 그 답답하고 힘겨웠던 삶을 되새기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작은 아파트에 먹고 사는 걱정을 예전보다는 덜 하고 있어서 그때에 비한다면 행복에 겨운 나날이다.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산을 오른다. 새벽같이 서둘러 북한산을 가고 싶기도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보다 그 먼길을 사람들 속에서 시달리며 오고가는 길이 고달파서 아예 가까운 관악산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예전에는 같은 코스만을 선택해서 오르내렸지만, 요즘은 이곳 저곳,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관악산이 작아서 뭐 볼 것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다녀본 관악산은 결코 별볼일 없는 산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출몰했던 - 하긴, 조선시대에 어느 산에서나 호랑이가 없던 곳은 없었겠지만 - 그 울창한 산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사람의 발자국이 뜸한 곳이 아직도 있다.
관악산은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관악구 신림동, 사당동, 경기도 관천시, 안양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올라가는 길은 어디에서나 가능하지만, 서울대 입구, 안양유원지, 과천, 사당동 관음사 방향 등이 있다. 서울대 입구에서 올라가면 연주암쪽과 삼막사쪽으로 갈라지고 연주암쪽으로 해서 과천으로 내려오는 길이 가장 짧은 길이다. 과천에서 오르면 연주암이 바로 나오는데, 서울대쪽과 안양, 사당동 쪽으로 길이 갈려 서울대쪽이 가장 가깝고 안양과 사당동쪽 길은 비교적 긴 편이다. 사당동쪽에서 오르면 능선을 따라 연주암을 지나 삼막사를 거쳐 안양 유원지까지 일종의 종주를 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사당동 쪽에서 올라 안양유원지까지 가는 길은 4-5시간은 충분히 걸리는 길이다.
사람이 많기로는 서울대 입구쪽과 안양유원지, 과천쪽이지만 연주암과 삼막사 주변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이 많지 않다. 일요일같이 사람이 많이 올라오는 날에도 서울대 수목원을 지나는 길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서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코스를 잡으면 거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관악산에서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서울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꽂혀있고 그 뒤로 진짜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다. 이 군부대를 우회하는 코스가 재미있다. 정상에서는 남산이 직선으로 바라보이고 서울과 경기도가 모두 보인다. 물론 서해바다도 보인다. 소래근교의 바다인데, 맑은날에는 바다가 파랗게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북서쪽으로는 김포공항이 보이고 한강과 여의도와 63빌딩과 서울시대 한복판과 남산탑과 이태원쪽과 흑석동,방배동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서남쪽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져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대방동, 시흥동, 기아자동차 공장, 안양천이 흐르는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숨에 정상에 올라, 태극기 아래에서 오이나 사과를 깎아먹는 그 각별한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여기서 연주암은 상당히 먼 거리이다. 삼막사가 가깝고 시흥동쪽 길이 바로 정면으로 보인다.
산본으로 이사온 뒤로는 정상에 올라본 적이 거의 없다. 과천에서 연주암에 들러 서울대 수목원을 지나 안양유원지로 내려오거나 사당동으로 나오는 코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연주암에서 사당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완만하고 많이 걷는 것이 장점이지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 관악산을 자주 찾는 이에게 널리 알려진 코스로는 관악산 팔봉이 유명하다. 연주암에서 안양쪽으로 가기 위해서 일단 첫 봉우리로 올라서면 눈 아래로 팔봉 능선이 굽이치며 펼쳐진다. 팔봉 능선을 따라가는 재미는 아기자기한 바위 능선을 타는 것이지만 너무 유명해서인지 역시 사람의 발길이 잦다. 내가 가장 즐겨찾고 마음 속으로 흐믓하게 여기는 길은 팔봉 능선의 중간에서 벗어나 서울대 수목원 끝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길은 사람이 거의 없고 언제나 조용하며 한적하고 쓸쓸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에 사람마져 없다는 것이 기적같은 일이지만 나는 이 길을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나만 혼자서 호젓이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관안산은 지형이 완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하지만 구석구석 다니지는 않는다. 따라서 호젓한 산길을 걷고 싶으면 능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된다. 관악산을 여러번 다니기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관악산을 찾는다. 앞으로 다른 산을 더 열심히 찾아다니겠지만, 관악산은 나의 좋은 친구로 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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