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배리의 가을

 

                                                                                   

긴 가을 가뭄 끝에 비가 내렸습니다.

메말랐던 논밭과 산이 싱그럽게 살아나는 것이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질 만큼 생생합니다.

축복입니다.

황금물결을 이루며 일렁이는 논을 바라봅니다.

이삭 한 알 한 알이 금싸라기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뭄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오더니 단비를 마시고 난 후 속이 꽉 차오르는 듯합니다.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벼이삭의 황금물결이 언제까지고 남아있기를 기대하지만, 며칠 사이 논은 훤하게 비었습니다.

벼를 갈무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을은 깊어 갑니다.

마을 한 가운데 수호신으로 서 있는 600년 넘은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정배 분교 운동장에서는 은행 털기 축제가 열렸습니다. 학부모와 마을 주민이 함께 하는 은행 축제에서 얻는 수익금은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마을 여기저기 밤나무의 툭툭 벌어진 밤송이에서 밤이 떨어집니다.

밭에서는 들깨를 베어 눕히고, 커다란 비닐 천을 바닥에 깔고 깨를 텁니다. 깨 냄새가 고소하고 향긋하여 저절로 걸음이 멈춰집니다. 툭툭 털 때마다 까맣게 익은 깨알이 후드득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보석 알이 쏟아지는 듯합니다.

 앞집 강원도 할머니가 감을 한 바구니 가져오셨습니다.

마을에 드물게 서 있는 감나무에서 거둬들인 수확물입니다. 추운 지역이어서 감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데, 그래서 더 귀한 감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애호박이며 풋고추를 여러 번 주시더니 이 가을 별미인 감도 주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20리를 걸으시는 전직 교장 선생님은 집 뒤 터의 밤나무를 털었다며 밤을 한 됫박 주시고 가십니다.

송구한 마음으로 고맙게 받습니다.

텃밭을 가꾸는 마을 어른들은 풋고추며 애호박이며를 언제든 따다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밤하늘에는 별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가을 산천을 수놓은 단풍은 그 화려함을 더해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뚜렷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곳 정배마을, 맑고 시원한 계곡과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이 축복같이 느껴집니다.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다 연립주택조차 하나 없는 시골마을로 이사 온 우리를 보고 동네 어른들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촌구석에 뭐 하러 들어온 거요?”

시골에서 평생을 사신 분들이니 시골 살이가 늘 좋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갈수록 농어촌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으니 도시를 마다고 시골로 내려온 우리를 보는 동네 어른들의 의문은 당연한 듯도 합니다.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거나, 뜻한 바가 있어 시골에 내려 온 것이 아니니 달리 이유를 말씀드리기가 난감해 그저 웃으며 “살기 좋은 동네로 이사왔어요”하고 말씀드립니다.

들어와 살기는 일 년 남짓이지만 두 해 전에 정배리에 땅을 사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 짓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정배리에 세를 얻지 못해 면소재지에서 일 년 넘게 살면서 집을 지었습니다.

외지 사람이 집을 짓고 들어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거니와 마을 외곽이 아닌, 마을 한 가운데 땅을 사 집을 지으니 동네 어른들의 관심이 더욱 컸습니다.

마을 속에 집을 지은 것은, 우리가 외지 사람으로 ‘전원’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이 되어 함께 살아가겠다는 뜻을 가졌지 때문입니다.

연세 많은 어머니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위해서도 이웃이 가까이 있는 마을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시골로 이주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도시에서의 삶과 시골에서의 삶이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왔던 도시에서의 삶이 어떤지 되새겨 보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도시의 삶이 모두 부정적이진 않겠습니다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소음과 매연으로 인한 환경, 소비와 소비로 이어지는 생활,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정서 등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가족은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하며 잃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시골살이를 통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에 살고 싶어 합니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아름다운 전원에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꿈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이들 교육, 직장, 아파트를 이용한 재테크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정배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 소박하게 고사를 지냈습니다.

마을 주민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집 지을 땅과 마을인 자연에도 함께 살게 된 우리를 받아들여 주십사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쭈볏거리는 마음으로 정배리 주민이 되어 시골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지은 집에 입주한 때는 한여름이었는데, 그 해 여름은 내내 마을 앞 개울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전교생 반은 모이는 개울에서 코끝이 새까맣게 반질거릴 때까지 여름내내 물놀이를 하고 놀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즐겁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흐믓했습니다.

엄마들은 옥수수며 감자며 수박이며 떡을 가지고 나와 간식으로 나눠 먹고, 어린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는 전교생이 서른 명도 안 되는 분교에 다닙니다.

매일같이 작은 운동장을 뛰며 축구를 하고, 산과 들녘, 친구집 나들이가 녀석들의 놀이터입니다.

 

가을이 되자 일손이 부족해서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마을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여름내 땀 흘린 보람이 풍성한 수확으로 돌아 왔습니다. 우렁이 농법으로 기른 벼에서는 메뚜기들이 툭툭 튀어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시골에서는 하루하루의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풍이 산꼭대기부터 불붙어 내려오는 것, 활엽수의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능선이 공룡의 갈비처럼 앙상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침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당 수도가의 물이 얼고, 눈이 내리면 산과 들이 하얗게 뒤덮인다는 것, 밤이 되면 산에서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가 마을 가까이 내려온다는 것, 봄이면 나무에서 돋아나는 나뭇잎이 연한 연두빛이지만 나무마다 다르고, 매일 매일이 다른 연두빛이라는 것, 그래서 나뭇잎만으로도 충분히 나무와 산과 숲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시골에서 살면 모든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에 내려와 살고 싶어도 불편해서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습니다.

깜깜한 시골 마을이 무섭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골에는 백화점도 없고, 대형 할인매장도 없고, 극장이나 병원도 가깝지 않고, 학원도 없거나 멀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도시의 편리함이란 거의 모든 것이 소비하는 것입니다.

백화점, 대형 할인매장, 편리한 문화시설 모두 돈을 쓰는 곳입니다.

시골은 살아가는 방식이 도시와 많이 다릅니다.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달라서 좋은 점이 많다는 것도 놓치고 살았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소비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도시라면, 가능한 적게 소비하고 주위 환경에 맞게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시골이라고 느낍니다.

불편하다고는 해도, 시골의 문화 환경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면소재지에 나가면 ‘주민자치센터’에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무료에 가까운 적은 돈을 내고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읍소재지로 나가면 더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수영장까지 있어서 초등학교 우리 아이는 지난해 읍에 있는 여성회관 수영장에 다니며 수영을 기초부터 잘 배웠습니다.

군에 흩어져 있는 관광지와 리조트, 온천 등은 군민에게는 입장료·주차비가 무료이고, 반값으로 깎아주는 곳도 많습니다.

 

마을에 들어와 이웃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첫 단계로 우리는 ‘무조건 인사하기’를 실천했습니다.

마을에는 젊은이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젊어도 50대가 넘으니 대부분 노인들입니다.

길에서 만나거나 집 앞에서 뵙게 되면 먼저 인사를 드렸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의 앞집과 겨우 인사하는 정도였고, 한 아파트에서 7년을 살았어도 가까워진 이웃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폐쇄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어쩐 일인지 도시에는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을 만들기가 어렵고,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처럼 이웃과 마음을 열지 않고 똑 떨어져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게 오히려 쉽지 않습니다.

마을 노인들은 먼저 찾아와서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참견과 간섭이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관심을 받는다는 것조차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것임을 알기에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되었나 봅니다.

 

이웃과 가까워지는 두 번째 방법은 마을 행사에 가능한 많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작은 시골이지만 크고 작은 행사가 다양하게 열립니다.

일 년에 몇 번씩 있는 마을 대청소는 마을 어르신들과 친해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도시 사람들이 놀러와 버리고 간 쓰레기를 모아 치우는 일을 합니다. 마을 청소 때면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나오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사드리고 낯을 익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이 마을 청소에도 잘 나온다는 인상을 주면 마을에 적응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마을 청소를 끝내고 마을 회관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데, 어떤 날은 밥과 돼지고기, 어떤 날은 컵라면, 어떤 날은 개고기(^^;) 등 메뉴도 다양합니다.

이런 때면 빠지지 않는 막걸리, 소주 등을 한 잔씩 나누며 인사도 드리고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을 총회, 마을 노인들의 단체 관광, 면민의 날 행사, 군민의 날 행사 등 일 년이면 여러 차례 마을 주민이 모이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외지에서 들어 온 우리도 주민으로 동화되는 즐거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마을 주민들도 외지인이지만 열심히 함께하는 노력을 이쁘게 보아 주십니다.

 

시골에는 노인이 많이 사시다 보니 우리 집의 경우 어머니가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마을 노인들과 잘 어울리시고, 마을 회관에서 점심도 드시고, 노인회 관광 때는 함께 하시면서 젊은 우리 부부보다 어머니가 동네 소식을 훨씬 많이 알게 되어 우리에게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누구네 아들이 중국 동포와 결혼을 한다더라, 누구네 집에서 어제 차로 고라니를 쳐서 잡았는데, 고라니 고기를 먹으러 오라더라, 들깨 값이 얼마를 한다더라, 누구네 집에서 땅을 내놨다더라...

마을 소식을 줄줄이 꿰고 계신 어머니를 보면 마을 토박이가 다 되신 듯 여겨집니다.

마을 회관에서 심심풀이 화투도 치고, 고추밭이며 깨 밭, 무 밭, 배추 밭에서 일도 도우시며 동네 노인들과 가까워져서 덩달아 우리 집까지 덕을 보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배추며 무가 풍년이어서 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값이 너무 헐어서 사가는 사람도 없고, 팔 도리도 없으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밭에서 채 뽑지도 않고 서리를 맞는 배추·무도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마을 어른이 기른 배추와 무를 사서 김장을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고작 김치 냉장고에 담는 것이 전부였지만, 시골에서는 마당에 땅을 파 김장독을 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탓이었는지 어머니가 올해는 김치 욕심을 더 내시는 듯합니다.

네 식구 살림에 배추를 60포기나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돈 주고 사지 않고도 충분할 만큼 무·배추가 공짜로 들어왔습니다.

당신들 밭에서 조금씩 뽑아가라는 무·배추가 한 집에서 열 포기, 다른 집에서 열 댓 포기, 또 다른 집에서 댓 포기... 이렇게 모은 것이 지난 해 보다도 많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식구끼리 모여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마을 할머니 여섯 분이 오셔 도와주셨습니다. 일손이 많아 김장 담그기가 오전에 모두 끝났습니다. 일 잘하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손발이 척척 맞은 결과였습니다.

어머니도 올해는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배추도 다듬고, 절이고 씻고, 김장 속도 넣고,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바지런히 품앗이를 하셨기 때문입니다만, 올해는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게 김장을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흐믓합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서 폐쇄적으로 살았던 것이 우리의 의지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통과 대화를 가로 막는 벽이 우리의 환경 속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로 이주하면서 환경이 바뀌고, 사람 사이를 가로 막던 벽도 사라졌다고 느껴집니다.

아파트 빌딩 숲처럼 높게 솟은 벽은 물리적 벽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의 트인 자연으로 오면서 아파트·빌딩들에 가로 막혔던 벽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시골 마을이라야 아파트 한 동보다도 적은 인구가 살고, 한 사람, 한 가족의 일을 알고 지내게 되며, 이런 관심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김장을 마치고 노인회에서 마을 어른들 여럿을 모시고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일 년 농사를 완전히 끝내는 것은 김장을 담근 다음이라고 합니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관광을 다녀오시는 날,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가 펑펑 쏟아졌습니다.

꽁꽁 언 겨울이 가고, 언 땅 녹아 들 풀 나고, 강물 녹아 출렁이는 봄이 오면 볍씨 뿌려 모내기 하고, 꽃나무 심고 가꾸는 봄이 오겠지요.

매일매일 변하는 자연에서의 삶이 우리 집 마당의 공기마냥 늘 새롭고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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