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
권명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바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파시즘의 출현은 현실적 관계를 구성하는 소위 보수적 집단과 진보적 집단의 비전이 자신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대중들의 불만, 위기감과 관련 있다. 역사적으로 근대 파시즘은 소위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라는 현존하는 계급 관계로 포착되기 힘든 집단들-룸펜 지식인, 소외된 여성 집단, 인종적 소수 집단들, 프롤레타리아라는 범주로 설명하기 힘든 노동자 집단 등-이 나타난 시점과의 연관성에서 출현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현존하는 오래된 대안이 자신들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불만, 이에서 비롯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공포가 만연할 때 변화에 대한 이들 집단의 요구는 ‘제3의 길’로서의 파시즘과 불행한 조우를 하게 된다. 물론 이들 집단의 집단적 무의식과 현실적 요구가 파시즘을 산출하게 된 현실적 이데올로기적 토대라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강력한 정치 체제로서 대중적 기반을 획득하는 현실적 근거들이 이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한 사회의 파시즘화를 경계한다면 보수 이데올로그의 준동에 격분하기 전에 그 사회의 집단적 원한의 수위를 살펴야 할 것이다. “남성을 적으로 돌린 여성 운동이 성취한 것이라고는 노후 대책 없는 사회에서 불행한 이혼녀나 가난한 독신 여성들을 양산한 것이 고작”이라는 식의 페미니즘에 대한, 또는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한 반동적 담론들이 보여주는 바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원한의 위험 수위이다. 불행한 이혼녀, 가난한 독신녀, 사회적 경제적 무능력자라는 자책감과 사회에 대한 환멸만을 키워가는 고학력 실업자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해도 남들이 하루에 버는 돈을 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사람들,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진보 진영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사람들, ‘자기’를 주장하는 여권 운동가와 신세대들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수많은 ‘아줌마들’, 거리로 내몰려 ‘삐끼’, 폭주족이 되거나 룸살롱과 단란주점에서 하루벌이로 오늘이 인생의 전부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이들의 존재가 바로 우리 사회의 원한의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다. 낙관적인 혁명가들은 혹시 이들의 원한이 최대 수위에 도달하는 순간이 ‘혁명’의 순간이라고 은근히 기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이들의 원한은 파시즘이라는 혁명의 순간을 불러내기도 한다. 따뜻한 가족의 품이 안전 지대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강제 덕분이다. 가족의 경계 바깥에 어떠한 안전지대도 마련하지 않는 사회, 이 사회가 수많은 사람들을 무사회적 고립자, 거리의 사람들로 만든다. 전후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무사회적 고립자들의 원한이 그들로 하여금 따뜻한 가족의 품 외에는 어떠한 탈출구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 바로 그 현실이 위험 사회로 달려가는 지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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