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만화책이다.

‘만화’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쥐]의 주제로 곧바로 들어간다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태인이 겪은 비참한 상황을 ‘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는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으로 그의 가족, 그의 아내와 아내의 가족이 겪은 비극에 대해 구술한다. 수십명의 가족, 친척들이 모두 죽고 결국 극소수의 형제와 부부만 살아남은 가운데 노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유태인의 삶에 대해서도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 만화는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지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충분하게 전하고 있다.

독일군-나찌-의 잔학함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분을 느끼게 하고, 유태인들의 무저항에 대해서도 어리석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문제는, 아트 슈피겔만처럼 별 ‘악의없이’ 자신의 가족사를 그리는 사람마져도 유태인의 전략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조직적으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끊임없이 여론을 환기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그 자신이 유태인의 피가 흐르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태인의 수난사에 대해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돕고 있고,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면서 재생산하고 있다.

유태인 학살을 거론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된다. 인종을 말살하려는 인종우월주의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인류는 존재의 의의마져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유태인은 소수라고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그것은 그들이 2천년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배운 지혜의 결과겠지만, 그들의 생존을 위해 예전의 자신들과 같은 다른 민족을 말살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찌들에 의해 독가스 등으로 학살 당한 유태인의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그보다 더 잔학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것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유태인’의 문제는 한 종족의 문제가 아닌,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우익 강경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미국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방향으로 중동의 중심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태인이 자기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소리지는 것도 이제 귀가 아플 정도가 되었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고발 장면-영화, 소설, 만화, 다큐멘터리 등-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촘스키와 같은 동족-유태인-이 이스라엘의 파시즘화를 노골적으로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자기 종족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유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친일파’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핍박받은 상황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유태인들처럼 집요하면서도 사실적인 증언과 복원의 결과물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고통받은 사람들의 증언이 영화, 만화, 소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목소리가 사회에 크게 울려야 한다. 아직도 친일파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반민족행위자들이 출세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소위 진보를 말하는 자들이거나, 양심있는 자들은 ‘유태인’처럼 우리가 당한 수난의 역사를 우물처럼 자꾸 퍼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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