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선화
작가 : 심흥아
출판 : 새만화책
심흥아 작가의 첫 번째 작품. 첫 번째 작품에 이 정도 뛰어난 수준이라면, 작가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솜씨 또한 탁월하다. 제목부터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 선화'는 주인공인 쌍동이 봉우리와 봉선화를 말하지만, 독자는 선화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선화를 처지를 생각하고, 선화를 응원하게 되면서 '우리 선화'로도 읽힌다.
동생인 우리에게서 따뜻한 자매애를 느끼면서, 쌍동이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선화의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담담하면서 나즈막히 가라앉은 나레이터, 선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집을 떠나 독립하려는 우리가 선화에게 준 선물, 브래지어를 하면서, 본 적도 없는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난다.
선화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지만,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먹고 살 준비를 한다. 고생 끝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을 떠났던 동생 우리가 돌아오면서, 삶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작가주의 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톤'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것인데, 심흥아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톤'을 쓰되 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만 사용했다. 또한 톤을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고, 명암을 표현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물이 하는 대사는 간결하고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대사의 이면에 있는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어 담백하면서도 깔끔하다. 그림의 선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담백함이 느껴진다. 컷과 컷의 연결, 연출, 컷 하나의 디테일도 훌륭해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 작품에 관한 소개를 보자.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지만 속은 다른 봉선화와 봉우리, 그리고 할아버지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나이 드신 아빠, 이렇게 세 사람이 봉씨네 식구이다. 창문이 있고, 장마에 물 들어올 걱정 없고, 세탁기를 놓을 정도 크기의 화장실이 있고, 개수대가 두 개인 싱크대가 놓인 집에 살아 보는 것이 큰딸 선화의 소망일 정도로 소박한 살림살이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셋집으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던 봉씨네는 쌍둥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이사를 또 하게 된다. 마을버스 기사인 아빠가 안면 있는 승객인 스님의 제안으로 정착할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집으로 사는 곳을 옮기기로 한 것인데, 새초롬한 성격의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못마땅하다. 그렇게 절집 사람들과 식구가 되어 3년째를 맞이한다.
선화는 자기 환경을 껴안고 견디며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고자 하고, 언제고 집을 벗어나리라 마음먹고 있던 우리는 계획한 대로 상고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사이 아버지는 드디어 절집에 들어갈 때의 생각대로 온 가족이 모여 살 만한 집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선화와 우리는 쌍동이 자매지만, 선화가 언니 노릇을 하고, 그래서인지 속이 깊다. 동생 우리는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다. 쌍동이가 아기 때 집을 나간 엄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할아버지처럼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고 나서, 학교 가는 길에 우리의 친구 언니에게 뺨을 맞는다. 자신은 '우리'가 아니라 '선화'라고 말하지만, 쌍동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선화를 우리로 생각하고 동생의 복수를 한 것이다. 그 뒤로 선화는 시력이 나쁘다는 핑계를 대고 아버지에게 안경을 맞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퍽 인상적이다.
나는 동그란 검정테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력이지만, 눈 주위가 허전하면 알몸인 것처럼 불안하다. 정확하게는 열두 살 때부터이다.
이 문장, 선화의 독백은 청소년 시기에 안경을 쓰기 시작한 필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안경을 쓴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외피를 덧입는 것이다. 즉, 자신의 열등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여기서는 선화의 한부모(어머니의 부재), 가난, 쌍동이-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도피인 것이다. 선화는 안경을 쓰면서 동생 우리와 다르게 보이고 싶었고, 동생이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하면서 발생하는 결과에서 자신이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예민한 청소년 시기의 선화는 비록 쌍동이일지라도 자신과 우리의 존재를 하나가 아닌, 개별적 존재, 독립한 자아로 인식하고 싶은 무의식적 자각이 생긴 것이다.
가난한 선화네는 이사를 자주한다. 넓은 마루가 있던 단칸방, 계란집을 하는 방 두 칸짜리 집에서는 바퀴벌레가 많았고, 반지하 집에서는 장마철에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바닥에 물이 들어찼다.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집에서도 살았는데, 여러 번 이사하면서 선화는 집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갖게 된다. 창문이 있어야 하고, 계단이 하나 이상 있어야 하며, 화장실은 세탁기를 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씽크대의 개수대는 두 개여야 한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라면 선화가 하는 말에 깊이 공감하리라. 필자도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다 홍수로 집을 잃고, 산비탈 단칸방에서 살던 경험이 있다. 집안에 수도가 없어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던 어릴 때 경험이 있다.
선화가 겪었던 경험은 선화 또래-선화는 80년대 초반에 출생한 걸로 그려진다-에서도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자주 이사하다 선화의 아버지-마을버스를 운전하는-가 우연히 마을에 있는 작은 절-이라고는 해도 평범한 단독주택이다-의 주지스님(비구니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스님의 제안으로 절(연화사)에 들어와 살라는 말을 듣고, 절에 있는 남는 방으로 이사한다. 우리는 절에서 산다는 게 몹시 마땅치 않았지만, 아버지는 딸들이 습기 차지 않는 방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고, 돈을 모아 나중에 집을 장만하고픈 생각으로 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등학생 시기에 선화와 우리는 절에서 산다. 선화는 인문계 고등학교, 우리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주지스님-절에 스님은 한 분이시다-의 배려로 따뜻한 쌀밥으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절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선화와 아버지는 등도 달고, 절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며 가족처럼 지낸다. 다만 우리는 일찌감치 독립하고픈 마음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주말에도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선화는 대학시험 준비 대신 만화공모전 준비를 한다. 화실에 다니는 친구 미영이 알려준 공모전을 보고 학교 자습시간에 만화를 그려 공모한 것이 장려상을 받는다. 담임선생님은 선화를 불러 점수가 낮다고 공부를 더 하라고 말하지만, 선화는 대학 진학은 가정형편으로 어렵고, 만화를 그리겠다고 말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우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다니고, 선화는 아버지에게 대학에 가지 않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선화를 야단친다. 선화는 서러움이 복받친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가까워지고, 우리는 이미 취업을 해서 집을 나가 친구와 자취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버지도, 선화도 안쓰러운 마음이지만 우리의 각오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독립하면서 가족과 절 식구들을 위해 선물을 세심하게 준비한다. 선화에게는 브래지어를 선물하고, 선화는 '기억에도 없는 엄마 생각이 났다. 가슴이 뜨겁다'는 감정이 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화는 제빵기술을 배워 빵집에서 일하며 틈틈이 만화를 그린다. 퇴근하면서 남는 빵을 얻어와 아빠와 절의 보살님들에게 나눠드리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절에는 연세 많은 김포할머니와 다른 보살님도 살고 있는데, 김포할머니가 갑자기 피를 쏟고 돌아가신다. 선화는 마당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돌아가신 김포할머니의 주검을 보고나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할머니의 죽음은 무섭거나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것이 아니고, 삶이 무엇인가에 관한 깊은 고민과 연민의 마음이었다.
선화는 빵을 챙겨 친구와 자취하고 있는 우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 남자친구였다는 걸 처음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집에 돌아와 우리에게 몸을 잘 돌보라고 문자를 보내는 선화의 마음은,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김포할머니가 돌아가시고 49제를 치른 다음, 우연히 김보살님이 살던 집을 내놓겠다는 말을 아버지가 듣고, 그 집을 사자고 선화와 의논한다. 연립주택이지만 깨끗하고 2층에 방이 세 개나 되어 아버지와 선화는 그 집이 마음에 든다. 선화네가 절에서 이사 준비를 할 때, 주지스님은 다시 한 가족을 새로 데려오는데, 아주머니와 어린 두 딸은 쌍동이였다. 선화는 쌍동이 여자아이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인사한다.
절을 떠나 산 집으로 이사한 선화와 아버지는 우리가 집에 들어올 것을 기다린다. 우리는 간단한 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세 식구는 오랜만에 다시 모여 산다. 엄마가 없는 가족이지만, 아버지와 두 딸은 그렇게 무심한 듯, 하지만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챙기면서 엄마의 부재와 가난을 극복하고 있다.
선화처럼, 나도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이미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 작품 속에서 선화 아버지는 마을버스 운전을 하며 집안을 이끌어 가는 능력자였지만, 내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백수 노릇을 했다.
선화는 엄마의 얼굴을 모르지만, 나는 어머니와 줄곧 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내가 치렀으니, 그런 면에서는 선화보다 조금 운이 좋았다고 할까, 엄마의 그리움을 덜 느낄 정도라고 할까.
어린 선화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 독자의 마음까지 성장하도록 만드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