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터뷰
작가 : 루드비코
출판 : 세미콜론
놀라운 책이다. 한국의 그래픽 노블 수준은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처럼 만화가가 열악한 상황에 놓인 나라도 드물지만,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이런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만화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에 대해서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작가(루드비코) 자신도 말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뛰어난 작품'이기 보다는 '새로운 작품'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는 새로우면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 속의 작품으로, 흔히 '액자 소설' 또는 '액자 만화'라고 하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인데, 이런 형식은 물론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액자 속 이야기와 (만화 속) 현실이 다시 만나고, 에피소드들이 결합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장 핵심인 '그림'도 기존의 '한국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양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이도록 인물과 배경을 '외국화' 했다. 이런 장치들은 물론 작가의 의도였으며, 이 정도 작품이 외국에서 출판되었다면 적어도 여러 개의 상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의 첫번째 작품집이라는 것이 놀랍고, 앞으로 그의 작품이 충분히 기대된다.
프롤로그는 바닷가에서 자기 입에 총구를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남자가 등장한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하늘과 같은 색깔의 바다와 밀려오는 파도, 부드러운 모래밭. 자살하기에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중년 남자의 모습은 퍽 이질적이다.
사내는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사내가 들고 있는 총은 6연발 리볼버로, 여기에 총알을 한 개만 넣은 것으로 보인다. 사내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죽고 싶었지만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사내는 살고 싶다는 욕망과 죽어야 하는 현실의 중압감 속에서 갈등한다. 결국 마지막 총알이 남았을 때, 사내는 방아쇠를 당기고, '탕' 소리는 곧바로 타이프라이터의 타자기 소리로 바뀐다. 한 남자(작가)가 작품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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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스카프]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평론가들은 이 작가의 작품 '주황색 스카프'가 걸작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전작들은 모두 쓰레기라고 폄하한다. 작가는 '주황색 스카프'를 능가하는 작품을 써야한다는 강박으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인데, 갑자기 한 남자가 작가의 서재로 뛰어들어와 작가만 알고 있는 미발표 작품 '헝가리 사진사'를 알고 있다고 말하자, 그 남자와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미발표 작품인 '헝가리 사진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헝가리 사진사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자는 사진에 미쳐서 늘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집안을 돌보지 않아서 아내는 집을 나갔고, 생활도 궁핍했다. 그런 어느 날, 사진관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필름을 현상해달라는 남자. 암실에서 현상을 하던 사진관 남자는 필름에 담긴 여자가 바로 집을 나간 아내인걸 알아보고 놀란다. 그 필름에서 아내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총을 가지고 나가 필름을 맡긴 남자를 죽인다. 그리고 아내가 살해된 같은 방법으로 남자를 없애고 사진관을 떠나려 할 때, 경찰이 찾아온다. 경찰은 조금 전 맡긴 증거물 사진을 달라고 말한다. 사진관 남자가 죽인 남자는 형사였고, 오해한 사진관 남자는 자살한다.
파일 2
작가와 남자가 인터뷰를 시작한다. '주황색 스카프' 이후 슬럼프인가, 왜 인터뷰를 하지 않는가, 작가는 현재 슬럼프가 맞고, 인터뷰할 시간에 작품을 생각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남자는 작가의 최대 걸작이라는 '주황색 스카프'도 쓰레기라고 비난한다. 작가가 자신의 미발표 작품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묻자, 남자는 '주황색 스카프'의 표지 날개에 써 있는 걸 보여준다.
남자는 자기가 도박을 하다 집에서 쫓겨나 궁여지책으로 유명 작가를 인터뷰해 잡지에 실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왔다고 말한다. 작가는 남자를 내쫓으려다 제안을 한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작품의 줄거리를 듣고 감상을 들려주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그렇게 다음 작품 '작은 마을의 요괴'를 시작한다.
작은 마을의 요괴
어느 마을에 요괴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요괴를 무서워했지만, 요괴는 나쁜 짓 하는 인간만 잡아 먹었다. 요괴도 신이 자기를 만든 목적이 나쁜 놈을 잡아먹으라고 생각했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다 어린이를 성추행하는 남자를 잡아 먹었는데, 우연히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요괴가 삼킨 남자도 어릴 때 자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게다가 자기가 삼킨 어느 도둑의 집을 보게 되었는데, 도둑의 가족은 스무 명이었고,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이들은 굶고 있었다. 그 도둑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또한, 자기가 삼킨 살인자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강도를 죽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요괴는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고, 자기가 삼킨 사람들이 어쩌면 좋은 사람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괴는 슬픔에 빠져 호숫가에서 울었고,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요괴가 자기 모습을 보면 심장이 멎는다고 했지만, 죽지는 않았고, 물에 비친 모습은 요괴가 아닌, 병에 걸린 인간의 모습이었다. 요괴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자기가 좋은 사람들을 잡아 먹었다는 죄책감으로 슬피 울면서 호수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파일 3
작가가 '작은 마을의 요괴'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남자는 잠을 자고 있었고, 작가는 화가 나서 공포탄을 쏜다. 남자는 작가의 이야기가 쓰레기 같다고 말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의 대표작 '주황색 스카프'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자살하는가를 묻는다.
파일 4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말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동화작가였고, 자신이 작가가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어머니는 아름다운 동화를 썼지만, 어머니는 우울증을 겪다 자살했다고. 그것도 기르던 토끼가 죽은 것을 보고.
장례식에서 본 모르는 남자가 자기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작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마지막 이야기 '양 목장의 살인자'를 말한다.
양 목장의 살인자
능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나빠 시골로 좌천된 형사가 양목장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며칠 뒤, 마을에서 어떤 남자가 투신 자살한다. 죽은 남자의 몸에서는 숫자가 발견되었고, 몸은 이미 총탄을 여러 발 맞은 상태였다. 이후 날마다 사체가 발견되었고, 몸에는 숫자가 써 있었다. 그러다 죽은 사람의 옷에서 범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되었고, 그 메모에는 자기가 40명을 죽일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메모에 써 있는 '도살장'에 가 보니 이미 10명의 사체가 있었고, 여러 곳에서 발견된 사체를 합하니 모두 40명이었다. 사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종된 사람들이었고, 지역도 한 곳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실종되었기에, 이 사건은 오래 전부터 계획된 범행으로 드러났다.
형사는 다시 처음 시체를 발견했다고 신고한 양 목장으로 찾아갔고, 신고를 했던 양 목장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며 순순히 자수했다. 자신이 싸이코패스이며, 정신병자로 주장해 무죄를 받아낼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형사는 목장 주인을 총으로 쏘고, 남자의 목에 숫자를 적어 넣었다. 목장 주인은 죽어가면서, 자기처럼 싸이코패스가 있다는 걸 알면서 죽어간다.
형사는 이미 27건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면서 범인을 모두 사살했는데,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정당방위를 주장해서 징계를 받지 않았고, 이제 28번째 살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형사가 사진으로 찍은 필름을 사진관으로 가져갔고, 형사는 사진관 주인의 총에 맞아 죽는다.
파일 5
'헝가리 사진사'의 아내는 '양 목장의 살인자'의 28번째 기록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남자는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마지막 질문을 한다. 작가의 작품을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느냐고. 작가는 '표절'을 말하지만, 남자는 표절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총으로 사람을 난사해 과다출혈로 죽이는 살인자가 나타났다는 걸 모르냐고 묻는다.
작가는 놀라 언제 일어난 사건이냐고 묻고, 남자는 '지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총을 꺼내 작가를 쏜다. 남자는 이제 자기가 이야기를 하고, 작가가 들을 차례라고 말한다. 남자는 아내에게 맞아서 코뼈가 부러졌고, 집을 나와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선물을 하기로 생각했으며, 작가가 쓴 '주황색 스카프'를 보냈다. 이 책에서 우울증을 겪던 어머니가 자살하는 내용을 보고, 남자의 아내도 자살했다며 남자는 왜 이따위 소설을 썼느냐고 울부짖는다.
남자는 작가를 죽여 토막낼 거라고 했다.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내용처럼. 그러자 작가는 남자를 보고, '헝가리 사진사'의 사진관 주인과 같다고 말한다. 사진관 주인이 형사를 죽인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남자의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라면, 그 우울증을 만든 사람은 누구냐고.
남자가 작가의 팔을 자르려하자 작가는 공포탄을 남자의 귀에 발사하고,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총을 쏘며 서로 벌집이 된 몸으로 쓰러진다.
에필로그
서로 총질을 하고 작가는 죽고, 남자는 살았다. 남자는 현장에서 주황색 스카프를 발견하고, 우연히 반지도 발견한다. 그 반지는 작품 '헝가리 사진사'에서 죽은 아내가 끼고 있던 반지였다. 그 반지를 본 순간, 남자는 작품 '주황색 스카프'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작가가 말한 '헝가리 사진사'의 내용도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때 경호원이 들어오고, 남자는 경호원의 얼굴을 보고 '작은 마을의 요괴'의 주인공 '요괴'가 실존하는 인물인 것을 확인하면서 비틀거리며 집을 나온다.
이 작품은 액자 만화로 구성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은 두 명이고, 소설가는 '주홍색 스카프'라는 소설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가 썼던 과거의 작품들은 졸작으로 평가받았지만, 이 소설만큼은 평론가들도 높게 평가하는 뛰어난 작품이지만, 정작 작가는 비평가, 언론의 관심에 관심이 없다. 그는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데, 집요한 기자 한 명이 그의 집을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한다. 작가는 특별히 그 기자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자가 자신의 미발표 단편소설 '헝가리 사진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액자 소설은 '헝가리 사진사', '작은 마을의 요괴이야기', '양목장의 살인자'로 세 편이 들어 있다. '헝가리 사진사'는 한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사진관을 찾아온 한 남자가 필름을 건네 현상을 부탁한다. 필름에는 집을 나간 사진관 남자의 아내가 담겨 있고, 여자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이었다. 사진사는 필름을 가져온 남자를 총으로 쏴죽인다.
'작은 마을의 요괴이야기'는 외모가 흉칙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의 외모를 보고 괴물이라고 말하며 무서워하자 그 사람은 자신이 괴물인줄 알고 살아가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양목장의 살인자'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로, 형사는 연쇄살인범을 결국 잡지 못하고, 연쇄살인범이 스스로 자수할 때 그가 최초 살인 피해자를 신고한 양 목장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형사는 그 연쇄살인범을 사살하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번호를 시신에 새긴다. 그리고 그 형사는 필름을 가지고 사진관으로 가서 현상을 부탁한다. 바로 그 아내가 가출한 사진관의 남자에게로.
이렇게 소설은 놀라운 반전을 보인다. 그리고 작가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라는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자기가 소설 '주홍색 스카프'를 선물했고, 그 소설을 읽은 아내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작가를 죽이러 온 것이다. 작가는 소설 '주홍색 스카프'가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고 말한다. 기자라고 말했던 남자는 작가에게 총을 쏘고, 작가도 가지고 있던 총으로 남자를 쏜다. 작가가 죽고, 기자라고 말한 남자는 작가의 서랍에서 '주홍색 스카프'의 내용에 나오는 스카프를 비롯해 앞서 말한 소설들이 모두 실제 일어났던 사실임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하고, 복도에서 숨을 거둔다.
루드비코의 이 작품(인터뷰)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있는 모양인데, 루드비코는 이전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것을 두고 표절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창작의 세계에서 우연히 소재나 아이디어가 비슷한 경우는 발견되고 있으니, 그런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에 이렇게 멋진 그래픽노블 작가가 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인데,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 소설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루드비코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열렬히 좋아하는데,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어 더 많은 독자가 이 작품을 읽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