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감옥
고경숙 지음 / 개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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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감옥 - 고경숙 소설집

마당의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보니 예상 못한 우편물이 있었다. 책봉투였고, 나에게 책을 보냈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의외의 우편물이었다. 꺼내보니 소설집이다. 출판사가 보냈을까, 저자가 직접 보냈을까. 책표지 다음 장에 내 이름을 쓴 저자의 친필과 인장이 찍혀 있었다. 저자께서 직접 보내주신 책이다. 하지만 나는 고경숙 작가를 잘 모른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아뿔사, 임헌영 선생님 사모님이셨다. 존경하는 임헌영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시니 잘 알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하신 작가라는 걸 몰랐다. 죄송할 따름이다.
문단의 말석에 있는 나에게 책을 보내주신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책을 잘 읽는 것이라 생각해서 성심껏 책을 읽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성 서사'다. 특히 여성이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인 남성가부장제 사회,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성장하는 여성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소설들이다. 여성 작가라면 돌아갈 수 없는 페미니즘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없음에도 이 소설은 깊이 있는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으며, 7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사회참여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들에는 작가 자신의 삶과 경험, 시간과 지혜가 투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운명이 오로지 자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듯이,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강렬한 경험이 또한 개인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경험일 때가 많으며,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그 자체가 이미 시대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의의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양심의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을 깨닫고, 자신이 모르던 세상을 알기 위해 배우는 자세를 갖춘다.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시대는 불의의 시대였다. 독재가 시민을 억압했고, 이념의 틀에 개인을 가뒀다. 독재에 저항한 지식인은 삶이 망가지는 고통을 당했고, 설 자리를 빼앗았다.
지식인이 저항의 당사자로 시대의 기록을 남기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수십 년의 삶을 지식인의 배우자로 살면서 겪은 참담함과 애통함을 여성 서사로 기록한 작품을 만나는 건 퍽 드문 경우인데, 이 소설집은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지금 한국에서는 70년대, 80년대의 독재정권과 그에 투쟁했던 역사를 다루는 서사가 부족할 뿐 아니라, 청년들은 특히 모르기도 하지만, 적극 알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때 '운동권 후일담'이 유행했던 시기에 이미 운동권이었던 일부 사람들의 행태에 부정적인 모습이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때라도 이 작품집처럼 목소리 높이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지식인의 불화를 온전하게 다룬 작품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늦게 출간된 것은 아쉽지만, 이제라도 세상에 나왔으니 퍽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의 천국 ______ 009

오윤수는 장년의 남성으로 건설업을 하는 중소기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직접 지방 현장에 내려가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데,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노환이 깊어진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집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현장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다 결국 늦은 밤, 기차를 타고 상경한다.
썰렁한 기차에 앉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윤수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린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윤수는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끌려갔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집으로 돌아온다. 텅 빈 서울에서 어머니는 집을 지키고 있었고, 윤수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겨우 살아났다. 하지만 그의 두 동생 윤태, 윤호는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인민군에게 잡혀갔는지, 자발적으로 월북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고 윤수는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겨우 식솔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전쟁 끝나고 30년이 지났을 때,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닥쳤는데, 정보기관에서 윤수를 호출해 동생들의 행방을 캐물었다. 정작 아무 것도 모르는 윤수는 동생들이 살아있다는 것,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왔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상봉의 기대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보기관도 더 이상 윤수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을 때, 윤수는 정보기관을 찾아가 동생들 소식을 물었지만, 그들은 어떤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산가족찾기를 시작하자 생사를 알 수 없는 두 아들의 이름을 크게 쓴 현수막을 만들어 출연했다. 윤수는 처음에 극구 말렸으나 어머니의 깊은 한을 외면할 수 없어 여의도 방송국 앞에서 두 동생의 이름이 쓰인 현수막을 만들고,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여전히 잃어버린 두 자식을 그리워했다. 그들이 북한에 있었다면 남쪽으로 내려오지 말고 차라리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잃어버린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산 것도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어머니는 정보기관에서 두 아들이 간첩이라고 닥달하는 고통까지 당하며 살았다. 

소설에서 이념 문제나 전쟁의 이야기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 전쟁이었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 이 소설의 단서가 되는 역사적 사실은 고경숙 작가의 남편, 임헌영 선생님의 과거 역사와 닮은 부분이 많다. 임헌영 선생님의 아버님이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사형당했고, 형은 실종되었다가 나중에서야 북한에 살고 있다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
임헌영 선생님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직접 피해자이며,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이자 반공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한국현대사의 질곡과 비극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가족이기도 하다. 고경숙 작가 역시 남편인 임헌영 선생의 사회활동으로 독재정권에서 많은 고통을 받은 분으로, 이런 가족사가 작품의 배경이자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

푸른 배낭을 멘 남자 ______ 031

푸른 배낭을 메고 등산복을 입은 남자는 남편 현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불쑥 어디론가 사라져 한 달, 두 달 소식이 없을 때가 있었다. 사복을 입은 정보경찰 여럿이 세영의 집을 감시하며 여러 날이 지나도 현우가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세영을 연행해 '서빙고'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경찰에게 뺨을 맞으며 수모를 당하면서도 남편 현우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남편의 형이 월북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세영의 삼촌 두 명도 월북했다고 정보경찰은 우겼다.
며칠 뒤, 현우는 경찰에 잡혔고, 세영도 다시 '서빙고'에 끌려가 최조를 당했다. 현우는 간첩사건의 한 사람으로 신문과 방송에 알려졌으나 그렇게 엄청난 사건치고는 우습게도 반년 뒤에 현우는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현우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현우는 불쑥 집을 떠났고,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현우를 빨갱이라고 비난했으며, 집안을 들쑤셔 쑥대밭을 만들었다. 경찰은 집을 점령하고 주인행세를 했으며, 현우의 행방을 쫓으려 세영의 모든 친인척을 괴롭혔다. 그런 와중에 세영은 씩씩하게 직장(대학 행정실)에 출근했지만 학교에서는 휴가를 쓰라고 배려했다.
신문에서는 '자생공산게릴라'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검거자, 수배자 명단이 있었다. 현우는 수배자 명단에 있었다. 그렇게 경찰이 집을 점거하고 엿새가 지나서 현우가 세영에게 전화해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겁하게 숨는 것보다 당당하게 독재정권에 맞서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현우가 집으로 돌아와 경찰에게 잡히고, 세영은 아이들을 앞세워 아버지에게 인사를 시켰다. 잡혀가는 사람은 당당했고, 보내는 사람은 담담했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리라.

이 소설 역시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남편인 임헌영 선생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기관에 잡혀갔었고, 1979년에는 '남민전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모두 국군보안사나 정보기관에서 조작한 것으로 나중에 진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 시퍼런 독재정권의 폭압으로 수많은 민주시민, 지식인, 학생, 노동자가 억울한 죽음과 감옥에 갇히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 작품은 고통을 당하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그의 배우자가 겪는 고통과 슬픔, 희망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박정희가 군부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이후, 18년 독재를 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영구집권을 획책한 것에 대해 지금도 박정희를 훌륭한 인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역사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박정희가 가난한 한국을 일으켰다고 믿는다. 오히려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으로 한국을 민주국가로 만든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박 6일 ______ 065

구치소에 갇혀 있는 남편에게 영치금을 예치하고 직장(대학 행정실)으로 돌아오던 진영은 학교에서 곧바로 정보기관원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서빙고'의 유치장에 갇힌다. 대학은 휴교령이 내렸고, 경찰, 정보기관원이 대학 곳곳에 상주하며 시위하는 학생을 폭행해 체포하고 있었다.
남편이 감옥에 갇히고 직장에서 진영의 위치도 불안한 처지여서 진영은 총장을 찾아가 어떤 자리라도 좋으니 다닐 수 있게만 해달라, 늙은 시어머니와 자식 셋의 목숨이 달렸다고 호소해 겨우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진영을 취조하러 들어 온 경찰은 시위 학생에 관한 배후로 진영을 꼽았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사표를 내라고 강압했다. 남편은 빨갱이로 이미 감옥에 있고, 진영이 남편에게 빨갱이 교육을 받아 지금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논리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죽고, 곧바로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일으킨 쿠데타로 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했다.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하고 있었고, 진영의 남편은 이미 구속되어 감옥에 있었으나 대학 시위와 관련해 정보기관에서는 대학교수와 행정직원들을 잡아와 사표를 쓰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진영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끝내 사표는 쓸 수 없다고 버텼다. 이미 구치장에 들어온 수백 명의 교수와 교직원들 거의 모두는 사표를 쓰고 석방되었고, 진영처럼 사표를 쓰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경찰은 진영의 집을 불법수색해 진영의 일기장을 가져왔고, 진영은 그들의 악행에 의식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며 저항했다. 결국 경찰은 '각서'라는 형태로 경찰이 불러주는대로 진영이 작성한 서류를 받고 석방했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몇 달이 지난 1980년 7월 24일부터 29일까지 진영이 겪은 일이었다.

작가의 삶을 거의 그대로 쓴 작품으로, 작가는 이 시기에 숙명여대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작품에서도 남편이 이미 감옥에 있다고 나오는데, 1979년에 정보기관은 '남민전 사건'을 조작해서 민주인사를 간첩으로 조작 발표했다. 작가는 현실 생활에서도 늙으신 시어머니와 세 자녀를 책임진 가장이었으며, 대학에서도, 정보기관, 경찰에서도 작가가 대학에서 사표를 쓰고 나가도록 위협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매몰하지 않고, 당시 시대상황, 군부쿠데타 이후 대학에서 벌어진 활화산같은 시위 상황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대학교수 일부가 보여주는 파렴치하고 야비하며 비겁한 모습도 있고, 이름 없이 사라진 억울한 학생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소위 '후일담 소설'이라고 알려진, 한때 운동권의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이 쓴 가짜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솔하고 진실하다.

두 번째 실수 ______ 101

그녀는 3년 전, 성당 앞을 지나다 우연히 '비행청소년 자원봉사 교육프로그램'을 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원봉사로 보호관찰소에 있는 청소년을 상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병호를 만났다. 병호는 17살고, 중학교 3학년 때 교사 폭행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어떤 사람의 턱뼈를 부숴서 소년원에서 장기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병호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며 편하게 대하자 자기가 학교에서 선생을 폭행한 이유와 그날의 상황을 자세하게 말한다. 
중학교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며 사는 그녀는 마흔의 나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그녀는 병호를 만나지 못하고 병호의 여자친구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가 '미수'를 만난다. 병호가 어떤 남자의 턱뼈를 부순 것도 미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미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수가 들려주는 병호의 처지는 처참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에 엄마는 병이 들어 아프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엄마를 폭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수 역시 자의반 타의반 집을 나왔는데, 그의 아버지는 미수를 없는 자식으로 치고,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아픈 과거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임신을 했지만 남자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아기를 낳았지만 부모의 극렬한 반대로 아기는 어딘가로 입양하고, 그녀는 그런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고 있었다.
병호는 분식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틀이나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병호의 집을 찾아갔다. 병호는 아픈 엄마를 간호하고 있었고, 그녀는 병호와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돌아왔다. 병호에게는 누나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폭행과 알콜중독이 싫어서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며칠 뒤, 병호가 사는 마을의 파출소에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가보니 병호가 아버지를 폭행해 소년원에 갔다고 알려주었고, 그녀는 병호를 면회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하라고 말했다. 보호관찰관은 더 이상 병호와 상담하는 것은 그만두고 다른 상담자를 소개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녀는 상담에 실패한 것일까.

봄바람 부는 날 ______ 131

동생 찬식의 결혼식이 있는 날, 찬옥은 홀어머니에게 지금의 남편 윤서를 소개할 때가 떠오른다. 윤서는 아버지가 월북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찬옥의 집안에서도 이미 동생 찬식이 감옥에서 만난 동기생과 결혼했으며, 삼촌들이 전쟁 때 사라진 것이 자진 월북인지, 납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았던 것을 기억했다. 아버지는 찬옥이 열 여섯 살에 사망했는데, 토목기사로 작은 회사를 운영하며 건실하게 살았지만 그의 두 동생과 일찍 헤어졌다는 것, 아래 동생은 좌익활동을 하다 월북하고, 막내는 붙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평생 한이 되었다.
장남 찬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 다녔지만 막내 찬식은 대학에서 열렬한 운동권 학생이 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찬식의 어머니도 찬식의 신부가 될 명주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찬식의 단호한 태도와 형 찬호의 설득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찬식이 명주의 부모님을 만나러 갔을 때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명주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달리 보기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 과외선생인 대학생 언니에게서 청계천에서 분신한 노동자 이야기를 들은 이후였다. 명주는 이후 야학을 하며 청계천의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찬옥이 사돈이 될 명주의 어머니를 만나 전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주의 집안에서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명주가 선택한 삶,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것을 선택한 삶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찬식과 명주의 모교 운동장에서 열린 민주결혼식에는 찬옥의 남편 친구들, 찬식의 동지 선후배들로 하객은 넘쳐났다. 명주의 부모님은 끝내 참석하지 않은 채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한창 길놀이를 하던 때, 명주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민주결혼식'은 이제 80년대 풍경이 되었다. 나도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합정동의 한 수도원에서 열린 그 결혼식은 결혼식장에서 하는 '웨딩'과는 본질에서 달랐다. 이렇게 아름답고 신나는 결혼식을 왜 하지 않고,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듯 결혼식장을 빌려 뷔페식으로만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열렬한 학생운동을 하던 그 선배는 군대에서 만난 선임이었는데, 전역을 하고 퍽 오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어렵게 만나서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한때 운동권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소수는 정치권으로 진입해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버리고 출세의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도 있지만, 많은 청년들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때의 열정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새가 된 아이 ______ 149

텔레비전에서 과거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선생들이 시위하는 장면을 본 나는 12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를 떠올린다. 학교 주인은 교장이고 이사장은 교장 부인, 교장의 동생이 이사, 학생주임과 선생 몇이 친족으로 얽힌 사학에서 군대보다 더 심한 검열과 폭력, 억압이 일상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감방 동기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책을 훔치는 택주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둘은 여자친구가 없고, 좋아하는 책이 비슷해서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는 비밀독서회가 있었는데, 곽선생이 병가를 내고 임시교사로 온 여선생이 이어서 독서회를 운영했다. 학교에서는 대학진학 외에는 모든 것을 불법으로 단정했기 때문에, 독서회는 자연히 비밀모임이 되었고, 학교가 아닌, 근처 교회에서 열렸다. 그 회원 명단에 인표가 있었다.
학원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재학생과 졸업생의 주도로 일어났지만 그 시위 과정에서 택주가 선생에게 끌려갔다. 나는 그날 저녁 택주네 집을 찾아가 택주를 만났지만 택주는 일부러 모른 채했다. 강남의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나나 택주 같은 아이들은 거지 취급을 당했다. 선생들은 대놓고 학생들을 차별했으며,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아부를 했다. 
학교에서 시위가 있고 사흘이 지나서, 선생이 나에게 지하교련실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곳에는 지난 시위에 참가했거나 그런 혐의를 받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학생주임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술서를 쓰고 겨우 풀려났지만, 그 다음 날, 다시 악질 선생인 권영두에게 혼자 불려가 다음 날부터 독방에서 취조를 당하게 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와서 아버지가 항의까지 했지만, 권영두는 비밀독서회에 대해 추궁했다.
택주는 새벽에 찾아와 끝까지 비밀을 지키자고 다짐했지만, 그 다음 날, 학교에서는 다시 나를 불렀고, 나는 택주가 쓴 일기장의 복사본이 그곳에 있는 걸 보고, 택주가 경찰에 잡혔다고 생각하고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택주 어머니가 있었고, 택주의 일기장은 택주 어머니가 자진해서 학교에 가져온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시위를 주동한 주모자로 낙인 찍었고, 비밀독서회를 지도한 여선생 신정미 선생이나 나의 아버지가 선동했다고 없는 말을 지어냈다. 그리고 다른 학교에 전학이라도 하려면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하라는 말에, 나는 오기가 생겨 거칠게 항의했다. 그때 학교에서 학생이 투신했다는 말이 들렸고, 그 현장에서 발견된 사람은 택주였다.

슬픈 청첩장 ______ 187

뜻밖에 인혜의 아들 수민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어릴 때 둘도 없이 친했던 인혜였지만, 그는 아들의 결혼식에도 부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밖 이층 양옥집은 내 학급 반장의 집이자 도장학사의 집이기도 했다. 반장은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시건방진 행동을 했는데, 어느 날, 인혜에게 칠판에 한자를 써보라고 놀리다 인혜에게 뺨을 맞는다. 반장은 뺨을 맞고 나뒹굴었고, 히스테리를 일으켰으며, 선생은 인혜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나는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가겠다고 하자 인혜는 화를 내며 다시는 나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우리는 서먹하게 지냈고,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친하게 지내다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서로 다른 대학을 다녔지만 주말이면 자취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혜는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결혼을 했고, 나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다. 남편들은 우연히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었고, 그때 서울 외곽에 언론인을 위한 집단주거지이 생겨 같은 동네에 이웃하며 살았다. 하지만 남편 윤조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회사에서도 강제 해직당하고 투쟁하고 있을 무렵, 인혜는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윤조의 행동이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
인혜가 내게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고, 남편이 감옥에 갇힌 뒤 인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 남편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출판사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인혜는 나에게 윤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자기의 남편이 나와의 인연을 끊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난하게 살았어도 지금 대통령 덕분으로 이렇게나마 살게 된 거라고 말했다. 
그 이후 31년 동안 잊고 살았지만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인혜의 남편도 기자였고, 군사정권을 옹호하던 신문사의 간부가 되어 있었다. 결혼식 전에 전화를 여러 번 해도 닿지 않았지만 나는 결혼식장을 찾아갔다. 인혜를 만날 기대를 했으나 그날 인혜는 없었다. 알아보니 인혜는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병원의 접수계에서 인혜의 이름을 찾았지만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겼을까해서 원무과로 가던 길에 인혜를 쏙 빼닮은 인혜의 딸 수진이를 만났다. 인혜는 방금 숨을 거두었고, 내가 아들의 결혼식을 봐서 다행이라고 했다.

별들의 감옥 ______ 209

승재는 엄마가 자는 틈을 노려 엄마 지갑에서 돈을 빼내다 엄마 순미에게 들킨다. 명서는 아파트 단지에 새벽 신문을 돌리는데, 순미도 신문을 돌리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일을 한다. 명서는 얼마 전, 회사에서 해고당했지만 말을 못하고 있었다. 벌초를 핑계로 아들 승재와 길을 나선 명서는 승재가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치고, 학교에서도 성적이 하위권이라는 말을 듣고 승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승재가 부모의 돈을 몰래 훔친 이면에는 친구 종하의 탁구채가 있었다. 부잣집인 종하네는 종하의 형이 탁구를 좋아해 집에 탁구대 일습이 있는데, 종하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 온 비싼 탁구채를 종하가 승재에게 하루 빌려주었고, 비싼 탁구채를 아끼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탁구채를 망가뜨리게 되자, 종하는 승재에게 돈을 갚으라며 폭행까지 했다. 결국 집에서 몰래 돈을 훔쳐 갚기 시작했고, 들켜서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승재네는 아버지 명서가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중산층은 되었지만, 강남에 살 만큼 부자는 아니었다. 엄마 순미가 승재 교육을 핑계로 무리해서 강남으로 이사했고, 어떻게든 일류대학에 진학하라고 과외까지 시키고 있었다. 
명서가 순미에게 회사에서 해고되었다고 밝히자 당장 승재 교육 문제를 들고 나왔다. 명서는 어차피 명예퇴직은 예상했었고, 이제는 가난하게 살아도 부자들 쫓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짓을 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때 승재에게 전화가 오고, 종하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며 엉엉 울었다. 명서와 순미는 승재에게 침착하라고, 곧 도착한다고 말하며 벌떡 일어난다.

악연 ______ 231

서용주를 아느냐고 경찰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그와의 인연을 떠올린다. 중학생 때 단짝이었던 용주였다. 둘 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고, 용주는 친척집에서, 나는 오빠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 용주는 일찍 서울로 올라와 식모로 일하면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은행에 취직했고,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내가 일찍 남자를 만나 결혼한 이후 용주와의 연락을 끊었다. 
용주를 다시 본 건 내가 월세, 전세를 전전하다 단독주택을 장만해 입주하고 동네 마트에 갔을 때였다. 점원과 악다구니를 하며 싸우는 여자가 용주였다. 
남편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은행에 넣으라고 했다. 
나는 용주를 본 이후 용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은행에 다닐 때 용주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둘 다 같은 은행 직원이었고, 한 남자는 부잣집, 한 남자는 시골 출신의 촌티가 나는 남자였다. 우연히 아이의 학교 육성회에서 옛날 중고등학생 때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로부터 용주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곧바로 용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주를 만난 것은 '살롱'이란 곳이었고, 그곳에서 용주는 유명하다는 패션디자이너를 소개했다. 그날 비싼 옷을 맞추고, 용주에게서 투자를 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러다 패션디자이너가 저녁을 사겠다고 하면서 호텔 레스토랑에서 용주와 셋이 밥을 먹으며 투자를 하라는 패션디자이너와 용주의 말을 믿고 거액을 투자한 나는 처음 몇 달은 쏠쏠한 배당금 수입으로 행복했지만 어느 날, 배당금이 끊겼고, 용주도, 패션디자이너도 연락이 끊겼다. 그 와중에 남편의 회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남편 영도가 지명수배가 되었다가 경찰에 잡혔다. 남편이 가져다 준 비자금을 내가 모두 사기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그 사기꾼도 체포했다. 
남편 영도가 출소하고 몇 년이 지나서 갑자기 용주가 집으로 찾아왔다. 용주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지만 나는 냉정하게 외면했지만, 나중에 용주가 알려 준 주소로 몇 번 송금을 하기는 했다. 용주는 자살했고, 그의 아들은 절도범으로 소년원에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꼭 찾아가겠노라고 말한다.


대법원 판례 ______ 253

용미는 아버지 삼우제를 지내고 가족들 모임에 가는 길이다. 큰오빠는 택배 회사를 차려 돈을 벌고, 둘째 오빠는 박사가 되었고, 막내 용필은 학업을 중단하고 영화를 하겠다고 하다 아버지의 병환 수발을 위해 집으로 들어왔다. 용미는 작은 출판사를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가족이 모인 목적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남은 부의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아버지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었고, 아내에게도 집과 얼마의 저축도 남겼다. 하지만 의논도 하기 전에 어머니는 마음이 상해서 방으로 들어가고, 형제들끼리 돈의 나눔을 두고 언쟁이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용미의 언니 용화가 대법원 판례를 들어가며 알아서 해결하겠노라고 했고, 다음 날, 은행으로 입금된 돈과 함께 '대법원 판례'를 메일로 보냈다.

그 여름의 귀환 ______ 267

미국에 사는 강희는 딸 승주와 함께 한국에 왔다. 친구 희원이 마중 나왔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촛불시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희가 한국에 온 이유는 죽은 남편의 묘를 파묘해 화장해서 바다에 뿌리기 위함이었다. 
강희, 희원, 주명이 모처럼 식당에 모였다. 이들은 대학 동기로 학생운동을 했고, 주명은 학교교수의 고자질로 경찰에 잡혀 들어가고, 복학생 진우는 주명을 구하려다 오히려 후배들을 모두 경찰에 넘기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1년 뒤 대부분 석방되었지만 진우는 4년을 더 감옥에 있었고, 감옥에 나와서도 선후배의 비난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 진우를 마지막까지 지킨 건 강희였다. 진우와 강희 사이에 딸 승주가 생겼고, 진우가 사망한 다음, 처가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한 오빠와 어머니가 있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했다.
셋은 밥을 먹으며 우연히 주명과 진우를 잡아가라고 악다구니하던 교수가 지금 양평의 어느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을 이야기했고, 한번 만나보자고 했다. 그들이 요양원을 찾아가 늙은 교수를 만났지만,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소리를 질렀다.
셋이 인사동 골목의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촛불시위에 참석했던 희원의 아들이 전화했다. 시위대에 떠밀려 승주가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셋은 병원에 도착해 승주를 보니 다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휴가는 내내 깁스를 하며 지내야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 가는 길, 승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살겠다고 말한다. 강희는 철없는 소리라고 말하지만, 주명의 전화를 받고 자신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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