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빛으로]영웅의 또다른 조건
입력: 2007년 02월 02일 15:05:48
‘일리아스’에서 영웅이란 탁월한 무술과 압도적인 힘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우는 전사다.

그리스 최고의 연설가 데모스테네스.
그런데 그것만이 영웅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말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수사(修辭) 능력은 영웅의 또 다른 조건이었다. 그래서 설전이 벌어지는 회의장은 전쟁터와 함께 “남자를 명예롭게 하고” “남자들이 돋보일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았다. 꿀보다 더 달콤한 “감미로운 말을 하는” “웅변가” 네스토르는 창과 칼로 적을 제압하며 승리를 이끄는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존경을 받는다. 위기와 갈등의 본질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 지혜, 그 모두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수사의 힘. 접전의 현장에서 날렵하게 적을 무찌르는 전사를 보며 경탄하듯이, 갈등과 위기 속에서 갑갑한 사람들은 돌파구를 제시하는 지혜로운 언변에서 상쾌함을 느낀다.

헤시오도스는 이와 같은 언변의 능력을 무사(뮤즈)여신의 선물이라 노래한다. “…그녀들이 그를 보며/그의 혀에 달콤한 이슬을 부어 주나니/그의 입에서는 꿀 같은 낱말들이 흘러나오지. 사람들은/모두 그를 주목하고 있다네. 올곧은 정의로/법도를 분별하여 정하는 그를. 그는 실수 없이 연설을 하며/즉시 뭔가 중대한 분쟁을 요령 있게 해결하지. (중략) 편안하게 달콤한 말로써 권고를 하며/논쟁터로 나가는 그를 사람들은 신처럼 맞이한다네/존경스런 그 감미로움으로 인해. 그는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돋보이나니/이것이 인간들에게 준 무사(뮤즈)들의 신성한 선물인 것을.”(신통기(神統記)에서). 말의 힘은 한갓 인간을 불멸의 신처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웅의 조건이었다.

〈김헌/ 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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