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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녁에 빈야사 요가를 하고 왔다. 요가를 시작한 첫주, 둘째주는 오히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에 비해 셋째주, 넷째주는 한결 요가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전자 때는 요가를 호흡과 동작 따라가는 정도로 익혔고(계속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후자 때는 지금 하고 있는 호흡과 동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좀 더, 더더더, 하면서 최대치로 몸을 늘리거나 써야할 근육을 쓰거나 버틸대로 버텨보거나 하다보니 생긴 일인 것 같다. 요가가 참 재미있는게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최대의 힘을 뽑아내서 헉헉거리며 풀가동하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힘을 아끼고 덜 쓰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미 숙련자라 필요한 힘만 딱 쓰면서 수월하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셋째주의 어느 시간부터 더더더를 향해 몸이 알아서 힘을 주기 시작했고, 넷째주의 어느 시간부터 힘을 줘야할 곳에 힘을 주고 힘을 빼야할 곳에 힘을 빼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됐다. 앞으로도 하나둘씩 몸이 느끼는 것들이 다이나믹하게 변하겠지? 한결 힘들어졌지만 한결 재미있어졌다다. 3월부터는 요가 선생님이 한번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아쉬탕가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안 그래도 가장 궁금했던 요가라 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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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전혀 몰랐던 때로, 아니, 아무 것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어린애 같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던 2월이었다. 스피노자가 들으면 기절할 이야기지만 1종의 인식에 머무른채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환상이 영원히 깨지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삶 아닐까. 1종에서 2종으로 넘어가며 좀 더 정교하게 세상을 알 뿐인데도 이렇게 많은 세상의 삐뚤어지고 썪은 부분들이 눈에 보이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데 말이다. 3종의 인식으로까지 넘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걸까. 겨울소풍 때 만났던 친구들이 "요즘 같은 세상에 가장 유해한 건, 못된 폭군도 아니고 해맑고 순박하고 착한 나이브한 사람들이야!"라며 몸서리를 쳤는데 나도 거기에 너무나도 동의하면서도, 사실 나는 그런 해맑고 순박하고 착한 나이브한 사람들이 부럽다. 아무 것도 모르고 가부장제 안에서 자본주의 안에서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광신도들. 이도저도 아닐 바에는 분열을 그만 겪고 그냥 그런 선의의 방관자로 세상에 해악을 끼치든 말든 행복하게 살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페미니즘적 시각이나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채 세상을 분석하고 세상을 공부하고 세상을 다 안다는 양 목소리 내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난다. 그렇게 아무리 공부해봐야 젠더이슈를 빼놓고는 1종의 인식에 그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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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척 힘들어 무기력하게 보냈는데 그래도 세로토닌의 그 날 이후 다시 좀 평온을 찾았다. 오늘은 2주 동안 열지 않았던 파일을 다시 열어서 원고도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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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살 때는 맛있는 원두가 떨어질 사이가 없었는데 이사 온 동네는 다 좋은데 맛있는 원두를 파는 곳이 없다. 겨울소풍 때 친구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카페 동경에서 원두를 사다줘서 기뻤어ㅠㅠ 그 기념으로 달초에 ㅎㅇ님께 선물받았던 아이코닉 세이렌 머그를 꺼냈다. 내가 불매를 하려고 노력하는 곳들- 대표적으로 남양, 농심, 삼성 등등(하지만 최근에 파격 할인에 넘어가서 노트북을 삼성에서 사고야 말았지ㅠㅠ)-이 몇 군데 있는데 스타벅스만큼은 참 그게 안 된다. 기프티콘이나 굿즈 선물 받을 일이 많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한국에 아직 스타벅스가 들어오기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위안이 되었던 장소라서 세이렌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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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3월대로 바쁠 예정이다. 몇 시간 후면 3월이네. 3월은 즐겁게, 무엇보다 단단하게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