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섹스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5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성적 측면에서의 자기 수용은 모든 통제를 포기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저급한 욕구를 시도 때도 없이 과시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는 모든 충동과 욕망을 완벽하게 껴안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에 있어서 억압된 사회였는지, 멀리서 애써 찾을 필요도 없다. 1980년대에 나온 미디어물만 보더라도, 여성은 자신의 성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욕구도)를 전혀 드러낼 수 없으며, 혹여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질을 받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놀랍게도 성적인 욕망이나 섹스와 관련된 수치심의 역사는 가부장적이었던 한국 사회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830년대 영국 상류층 여성들이 최대한 몸을 가려야 했던 것을 비롯해 이슬람 사회의 히잡 역시 여성의 신체를 보고 남성들이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러한 시대에서 적게는 몇 십년에서 많게는 수백년이 흘렀고, 성적인 해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섹스'는 어려운 주제다.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섹스'를 공론화하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의 삶의 화두에 섹스를 포함시켰다. 이유는 이러하다. 다양한 종류의 성적 욕망을 살펴봄으로써 지금까지 금기시되던 욕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숨어 있던 성적 자아를 사랑하는 상대에게 표현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성적 흥분은 신체적 현상인 것만 같다. 맥박이 빨라지고, 신진대사의 리듬이 달라지고,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그 모든 현상 뒤에서는 신체적인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조금 거창하지만, 인간 존재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특성과 관련되므로 마땅히 형이상학적 변화라고 표현해야 할 일이 일어난다. 그 근원적인 특성이란 곧 '자아''타자'의 관계 맺음이다. (44p)

 

<섹스>에는 열아홉 가지의 인간의 성적인 욕구가 담겨있다.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키스', '얼굴 붉히기'와 같은 행위를 비롯해, '야외에서 하는 섹스', '오럴 섹스', 'BDSM', '자위' 그리고 '근친상간 판타지''양성애'등 쉽게 밝히기 어려운 성적인 욕망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 취향을 이해 불가능한 수수께끼로 여기거나 수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당신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적 취향은 사실 이해하기 매우 쉬운 것이며, 이성과 반대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우리가 가지는 많은 욕구와 연관되어 있다. 때로 성적 욕구가 이상한(심지어 불쾌한) 듯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욕구는 진실한 무언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나, 이해와 공감, 신뢰, 조화, 관대함, 다정함이 넘치는 삶을 가꾸어가고 싶은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78p)

 

저자가 이토록 다양하고 광범위한 성적인 욕망을 열거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섹스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섹스는 오로지 육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섹스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다. 다만, 육체라는 조력자의 도움에 힘입어 두 사람의 영혼이 만나 교감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성적 욕망의 뿌리에는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 그 허용이 가능케 하는 교감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는 '섹스의 진짜 기술'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혀를 이용하는 애무의 방법이나, 난해한 체위 즉, 육체적인 기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섹스를 위해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하는 기술을 '자기수용''소통'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욕구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 것, 더 나아가 타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자기수용이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바와 타인의 원하는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어떤 섹스를 하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생활일지라도 본질을 갖춘 섹스를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 사실, 섹스는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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