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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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2014), <오블리비언>(2013), <타이드랜드>(2005)에 공통점이 있었다. 세 영화는 하나의 그림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갸날픈 여성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다. <인터스텔라>와 <타이드랜드>는 거친 들판에 솟아 오른 낡은 저택의 이미지를 차용했고, <오블리비언>에서는 그림이 주인공들의 의지를 다지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화가의 이름이나 그림을 이전에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앤드루 와이어스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다. 추상화가 대세이던 시기에 끈질기게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구상화를 그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실존 인물인 크리스티나 올슨을 모델로 했다. 그녀는 샤르코 마리 투스 병으로 추정되는 신경계 질환을 앓아 움직임이 힘들어지고 중년에 이르러서는 기어서 이동해야 했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는 이웃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 덕에 유명세를 탔지만 크리스티나는 끝까지 외딴 시골에서 사는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지켰다.

 

작가는 거친 풀밭을 가녀린 팔로 디딘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무뚝뚝한 개인주의와 내면의 힘, 장애를 불사하는 도전 정신, 불굴의 의지"와 같은 "미국인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의 모델 크리스티나의 삶을 소설로 살려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과 실제 인물 크리스티나를 구별짓고자 한다. 비록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소설을 썼다해도 소설로 표현된 인물의 내면이 실제 인물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은 독자 입장선 두 인물이 하나로 여겨진다. 꼼꼼한 사료조사로 구성한 소설적 현실이 실존 인물 크리스티나 올슨의 일대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외딴 시골집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여성, 불편한 몸에도 무엇엔가 기대려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기를 고집한 그녀가 작가의 문장으로 생생히 그려졌다.



소설은 1939년 크리스티나와 앤드루 와이어스를 만나는 시기와 그녀의 과거를 교차로 그려낸다. 크리스티나의 조상들이 어떻게 메인주 쿠싱에 정착하게 됐는지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병이 시작된 서너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을 돌봐야 했던 청소년 시절, 사랑하고 배신당한 후 동생 앨과 외딴 집에 칩거하게 되기까지를 들려준다.

 

몸이 불편했지만 자존심과 자립심이 강했던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동정받기를 원치않았고 도움 또한 거절했다. 고생스럽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려하고 학교도 어떻게든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그녀는 문학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아이였다. 학교에 계속 남아 선생님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기뻐한 것도 잠시 그녀의 부모는 크리스티나의 학업 중단을 결정한다. 가사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다. 자기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대가족의 집안일을 온전히 떠맡아야 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상처와 부상이 따라 다녔다. 마을 사람 일부는 친절을 가장한 동정과 감사함을 전제로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리곤 왜 자신들의 도움을 고마워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크리스티나는 그들을 인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들에게 장애인을 돕는 것은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므로. 크리스티나는 친절을 가장한 위선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둘 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그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 자존심의 형태는 반항이고, 아버지는 부끄러움이다. 내게 휠체어는 포기했다는 것을, 집안의 보잘 것없는 존재로 살겠다고 체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눈에 그것은 창살이다. 아버지에게는 왕좌이고 덧없는 권위를 유지하는 방편이다. (…) 나는 부끄러운 줄 모른다. 부상과 굴욕을 감수해가며 내가 선택한 방식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p.275

 

앤드루 와이어스(이하 앤디)는 크리스티나를 대하는 태도가 스스럼없었다. 그 자신이 다리를 약간 저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앤디를 크리스티나에게 소개한 그의 부인 뱃시도 어린 시절 척추층만증 교정을 받았었다. 몸의 불편함과 그에 따르는 사람들의 시선, 태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세 사람은 금새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앤디는 대개 뭘 들고 오거나 돕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는 방식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우리를 개조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나가고 싶어하거나 이미 문밖으로 반쯤 나간 거나 다름 없는 사람의 분위기를 풍기며 의자 끝에 걸터앉거나 문 앞에서 서성이지 않는다. 그냥 자리잡고 앉아서 관찰한다. p.240

 

앤디가 크리스티나의 집에 작업실을 차린 후 그녀는 "그의 눈을 통해" "집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모두 새롭게 인지"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판단했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앤디는 황량한 그 집을 "백 년 동안 그려도 절대 싫증날 일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티나 곁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동생 앨이다. 사랑을 만나 떠날 수 있었던 기회도 누나를 위해 포기한다. 엘이 포기한 삶은 그에게 상처가 됐다. 누나 옆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그의 나머지 인생 일부를 갉아먹었다. 크리스티나는 대가족의 가사를 돌보기 위해 미래를 희생했었다. 앨은 누나의 희생에 값하기 위해 사랑을 잃었다. 가족이 무엇일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인가. 다행인건 둘이 서로를 여전히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거다. 앨은 누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동생에게 미안해한다. 크리스티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의자에 기대앉는다. 옷이나 못 쓰게 된 손뿐만이 아니다. 모든 게 그렇다. 앞날이 두렵다. 허약해질 수밖에 없는 앞날이. 남한테 점점 의존하게 될 앞날이. 남은 생을 이 깨진 껍데기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할 앞날이. p.303

 

여기서 우리는, 삶의 동반자가 아닌 남매로서, 나고 자란 집에서 조상들의 혼령에 둘러 싸인채, 꿈꾸었던 상상 속의 삶을 곱씹으며 함께 지내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 우리가 먼지로 사라지면, 여기서 우리 둘이 공유했던 삶, 우리의 소망과 불안, 우리의 애착과 고독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p.352-353

 

앤디가 완성한 그림에는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 표현돼 있다. "세상의 작은 일부분"이자 크리스티나에게 "세상의 전부"인 "집과 들판" 그리고 젊은 아기씨의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과 망설임". 크리스티나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진처럼 선명하고 동화처럼 신비로운"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깨져버린 꿈과 약속을 딛고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가 여기 있다. 그녀는 여전히 살고 있다. 영원히 저 언덕 비탈에서, 캔버스 가장자리까지 펼쳐진 세상의 중심에서 살 것이다. p.363

 

화가와 모델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읽는 일은 흥미롭다. 그림을 잘 읽는 또 다른 방법이다.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의 『세상의 한 조각』 은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해설하는 동시에 크리스티나 올슨이라는 장애인의 삶을 보여준다. 불편한 몸을 가진 그녀의 생각들을 기술한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희망과 절망, 낙관과 불안, 좌절과 체념 그 사이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행복들. 현실의 크리스티나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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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누구 2021-06-05 21:17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