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방법론 - 헤겔에서 포스트식민주의까지 미술사의 다양한 시각들
마이클 해트.샬럿 클롱크 지음, 전영백 외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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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는 근본적으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미술사를 단순하게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역사의 한 갈래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학문은 명확한 기본 개념과 일관된 논리를 갖춘 지식체계인데, 하나의 독립된 학문은 그 ‘대상’과 ‘방법’에서 독자성을 확보해간다. 물론, 학문체계는 확장하는 경향성을 띠기 때문에 인접 학문과는 자연스럽게 대상을, 그리고 방법론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연구하는가’를 먼저 확인할 수 있는데, 미술사는 미적 대상(aesthetic objects)과 시각적 표현(visual expression)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미술사학은 오히려 미학(aesthetics)과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넓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미술사 방법론>의 본격적인 시작은 헤겔의 <미학>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다. 참고로 미학과 미술사학을 독립된 학과로 개설한 대학교가 많지 않다는 점도 공통점이랄까.

아무튼, 이 책은 학문의 ‘대상과 방법’에서 그 다음 단계인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넓게는 ‘미적 대상과 시각적 표현’이라고 했지만, 좁게는 미술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이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마치 상품에 바코드를 찍듯이 눈으로 스치는 데 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큰 의미나 영감을 얻기도 한다. 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주체가 대상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해석은 다른 해석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미술 작품을 보는 해석 틀(frame), 즉 방법(methods)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고, 여기에는 더 큰 신뢰와 설득력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앞서 미학과 대상에서의 공통분모를 확인했다면, 지금 이 방법론에서 본격적으로 양자가 구분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미학이 미의 본질이나 미 의식, 예술 법칙에 대한 보편적인 특징을 구명한다면, 미술사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의 보는 방식을 구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미술이 근본적으로 역사적이라는 가정은 미술사에 이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며, “어떻게 한 작품이 그 본래의 맥락을 벗어난 문화적 시각을 지닌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고 말한다.

1장 서론에서 방법론이란 무엇인가를 다루었고, 2장에서는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제목 아래 일종의 미리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사가의 다양한 방법론에 비춰본다. 헤겔은 역사적 흐름을 관통하는 절대이념이 예술의 진화를 야기했다고 보고 이것의 체계화를 시도하였고, 감식적/전기적 분석자들은 헤겔주의와 정반대의 접근 방법을 취했다. 감식적/전기적 분석자들은 작품을 작가의 인성과 경험에 연관시키며 심지어 피카소의 이 작품을 설명할 때 “개인적인 사연이 개인입된 일종의 액막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법의 혁신성에 주목하는 앨프리드 바와 같은 형식주의자에게 화가 개인의 경험은 작품의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해석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상학자들에게는 둘 다 진부하거나 의미가 없다. 이들은 양식의 변화가 곧 내용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다면 이런 연구들이 무슨 소용일까.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적 미술사학자들은 사회에서 생산된 작품 안에 새겨진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다. 피카소의 이 작품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춘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페미니즘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부당함을 여성과 관련짓기도 하고, 정신분석학적 해석방법에서는 남성의 거세 공포를 주제로 다루기도 하며,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에 관심을 갖는다. 또 이런 해석방법과 연계되면서도 충돌하는 기호학적 방법론도 있다.

이러한 방법론들이 개별 목차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방법론 소개마다 비판적 평가를 두었다는 점에서 구조적 공통점이 있고, 또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라는 학자는 그의 <피카소의 이름으로>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품의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작가가 아닌 관람자들이다. 다층적인 이해를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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