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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
바히이 나크자바니 지음, 이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지은이 바히이 나크자바니 | 이명 옮김
출판사 황매(푸른바람)
별점

 

이 책은 이란 작가의 책이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옛날 이야기이다.

그런데 동화는 아니다.

 

여러 종교와 경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학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미스테리이며

한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을 맞았던 여러 인물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따로 에피소드들로 편집한

짜맞추기 소설이다.

 

배경은 중동, 메카에서 메디나로 가는길

등장 인물은

도둑(염탐꾼), 대도적 두목, 결혼을 맞은 어린 신부(지참금이 많은), 영국의 신학자(탁발승), 환전상, 아프리카의 여자 노예(하녀), 젊은 순례자, 그리고 행렬속의 시체이다. 새들백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통의 물건이다.

 

"그때 그 사막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마지막 "시체"까지 총력을 기울려

등장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이들과 새들백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다.

 

한마디로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배경이 독특하고 문화가 독특하고 생소한 용어들이 마구 남발한다.

원본이 그런지는 몰라도 번역체 역시 난해한 구석들이 많다.

추리 소설을 즐겨 있는 사람, 호기심과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이런 스타일의 소설에 익숙하기 못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지점부터인지

등장인물속에 풍덩 빠지고 나니

동화보다 더한 환상 세계와

종교서보다 더한 마음의 정화가 몰려왔다.

 

등장 인물들을 둘러싼 사건은 하나이고

등장 인물들이 이때 겪은 주관적인 감상은 여러가지로 각자 남달르다.

그런데 이들은 마지막에 새들백 속의 경구들을 접하면서

다른 상황이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영혼의 해탈을 경험한다.

 

자기만의 행복한 세상, 영원의 세상, 죽음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형태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영원한 자유, 천사와의 만남, 인간으로서의 속죄, 사랑의 깨달음...

 

개인들은 다 죄과가 있는 사람들이고

고통이 있는 사람들이고

후회가 있는 사람들이고

슬픔이 있는 사람들이고

나름대로 제멋대로이고 교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

이들이 행복해지는건

새들백을 통해서이고

죽음과 맞닥트릴 때이다.

 

그런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영혼의 울림을

이 책은 독특한 형식과 배경을 통해서 형상화시켜 주었다.

 

중세의 오랜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고

특히 평범한 시간적 나열을 지루해하며

남녀의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지친 독자,

크리스챤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이교적 믿음과 숭배를 궁금해하는 많은 독자들,

그리고 수수께끼, 미스테리에 관심이 많은 승부사,

또한

심히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끄덕이며 감각으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아주 지적인, 그러면서도 감상적인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문체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건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다.

문화적 이질감을 세부적으로 그림을 보듯이 묘사한

박식함이 느껴지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또한.

물론 이 두가지 즐거움이 독자를 혼란에서 논리적 해결점을 주는데 방해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약의 향기를 내뿜는 원시의 숲에서

헤메다 나온 기분이다...

 

p.s.

이 책에는 중동의 결혼 풍습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나오는데

어린 신부가 사막에서 여행 중 목욕하는 법, 신부를 꾸밀 때 헤나를 이용해 몸에 그림을 그리는 법, 하녀들과 신부와 노예들의 상하 관계 등

문화적 차이를 바로 생생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도적들과 도적 두목 간의 상하관계와 이들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방법 등도

흥미롭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쩌면 이 책의 관념적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화적, 시대적, 상대적, 생활을 내밀하게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귀중하다고 본다.

아직도 이 책을 생각하면 그런 장면들이 생생하게 남아서

눈 앞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인상적인 구절들입니다>

:각각의 인물이 하는 말 들 속에

이 책의 주제가 담겨 있는데

특히 마지막에 시체가 하는 생각 속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도적:

도적 두목은 신부의 얼굴과 눈에 떠오른 표정에 당황했다. 그가 평생 잊지 못하도록 운명지어진 바로 그 표정이었다....나중에 두목은 이 창피스러운 사건을 기억해 낼때마다 약간 놀라곤 했는데

사실 그는 신부를 강간할 수 없어서 죽인 것이었다...

 

인도인:

인도인은 대상과 여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의 위선은 없었다. 오직 한가지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가지 좋은 행동, 사랑의 헌신을 수행하는 것.....그것은 베두인의 시체를 화장해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이었다. ....그가 맹세를 지킨다면 죽음도 그를 해방시켜 줄 것이다...그의 이 생은 임시로 온 이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생이었다. 그는 인간으로 죽었다.

 

노예 여인:

그것은 감추어진 미스터리, 축복받은 아름다움, 모든 창조물이 새롭게 되기 위한 동정심과 기쁨의 기억에 대한 간구였다.(새들백의 내용에 대한 묘사 부분)

 

순례자:

이제 그는 공포와 눈을 찌르는 듯한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돌이켜 보았고 자신의 실패를 하나씩 만들어지기 이전의 그 상태로 돌려 놓기로 결정했다...

 

이 세계도 아니고 저 세계도 아니며..그것은 적멸이니라...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서 있는 것도 아니니라. 열반이란 안정이 없으며 변화도 없느니라. 생긴 적도 없고 지나간 적도 없는 영원이니라...

 

여기 그의 '도'가, 원의 최초의 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 닿기 위해 얼마나 드넓은 지역을 방황했는지 모른다. 그의 모든 여행이 다른 점이 아닌 바로 이 점으로 그를 데려왔다... 수많은 논의가 있어도.. 이름은 다르지만 근원은 최초의 점이다... 순례자는 .. 그 단어들을 노래했다. 최초의 점!

 

더 깊이 가라앉으며 그의 마음의 씨앗이 오직 기쁨으로 균열되었다. 모래가 와 닿자 그는 입을 열고 열렬히 그것을 피와 함께 마셨다. 자기 민족의 치유를 위해, 기름진 땅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과, 아들의 아들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위해. 이가 없어도 만족한 그를 모래가 완전히 삼켰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채.

 

 

성직자:

이 파리떼를 몰고 온건 확실히 우리야...이 신성한 공기 속에 우리 자신의 부패가 저 파리 떼를 낳은 거야... 만일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파리 떼도 없었을거야.. 자신을 뜯어 먹고 있는 파리떼에 관한 생각이 성직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결국 그는 여인이 꽉 쥐고 있는 기도문을 그냥 남겨두었다. 여인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빼앗을 수 없었으며...성직자는 손에서, 몸에서, 마음에서, 영혼에서 더러운 것을 씻어내려 했다. 그렇지만 여인의 반지는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학문으로 돌아가 나머지 삶을 이단의 박해에 바쳐야 할 지 아니면 삶의 모경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새로운 교리에 헌신해야 할지 몰랐다.....

 

탁발승:

진귀하고 더없이 훌륭한 서체로 쓰인 그 필사본은 코란의 신비로운 어조와 고상한 언어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독특했다. 아무도 그런 예술과 시를 전에 본 적이 없었다.(새들백의 내용에 대한 묘사 부분)

 

시체:

우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지. 그리고 죽으면 영원히 냄새를 풍길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어느쪽도 사실이 아니야. 그건 분리의 문제야.

 

우리가 영원히 죽는 것처럼 살 수만 있다면, 냄새는 그렇게 방해가 되지 않을텐데. 그러면 우리는 자유롭게 춤에 복종할 텐데.

 

내가 이름이 없고 정체성이 없다면 그건 그럴 가치가 거의 없어서야. 우리는 영원히 죽는것처럼 살아야 해. 그 이상의 것이 있어.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지. 날마다 얼레를 푸는 난해한 부패와 미묘한 쇠퇴의 이야기다. 신뢰의 이야기, 변화의 이야기, 분리와 연결의 이야기, 그들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 사막의 향기 같은 이야기다.

 

 

그는 "나"에서 "우리"로 가는 변이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알게 되었다. 상인의 기도는 바로 자신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점이 확실할 때 원은 더 넓어지고 춤은 완성되기 마련이지. 시체는 생각했다. 냄새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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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시한부 인생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기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싫어할 지경이다.

그 큰 이유는 대부분이 통속적이거나 결말이 예정되어 있거나 찜찜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자 생각해보자.

사랑하던 사람이 시한부로 죽게 되어 있다.(결말 예정)

죽은 순간까지 애달프고 애달프고 눈물이 흐른다.(주인공들의 신파 예정)

죽고 나서 혼자 남은 한명은 외롭거나 절망적이다.(희망적이지 못한 메시지)

 

여기에 무슨 소설적 트릭이나 암시가 끼어들 틈이 있으며

소설의 결말에 대한 무슨 두근거리는 궁금증이 느껴지겠는가?

(물론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이라면 좀 틀려지겠지만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난 애초에 이 소설을 심드렁한, 삐딱한 마음으로 몇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던 여인이 죽었다구? 그것도 젊은 나이에 병으로?

그래서 이 남자가 절망중이라구?

 

그. 래. 서.?

작가님! 더 할 얘기가 있습니까?

주저리 주저리 값싼 감상을 늘어놓으시려구요? 주인공의 입을 빌어서요?

 

 

.................

 

그렇고 그런 얘기일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작가의 문체가 투명하고 심리 묘사가 잘 되어 있다고 한들

신파의 공식을 어찌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소설은 신파의 공식을 전혀 다른쪽에서 무시하고 들어왔다.

 

시한부 인생의 여주인공인 요코는 죽은 순간까지 "행복하다"고 말하고

"죽는 것이 무섭고 슬프다"가 아닌

"내 자신에게 긍지를 느끼게 해줘서 고마와요"라는 마지막 진심을 남긴다.

 

기실 이 소설에서 죽고 사는건 큰 문제가 아니다.

두 주인공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인 야마자키의 어린 시절의 여러가지 회고(주로 좋지 않았던 기억들)와 맞물리며,

(그것은 야마자키가 요코를 만나기 한참 오래전의 고릿적 이야기들이고 요코와는 관계가 되지 않는다)

혹은 현재 자신의 인생의 수레바퀴와 맞물리며

야마자키가

스스로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참담했던 기억에서 회복하는,

그 계기가 되는 요코와의 만남에서 '남은 것'이

소설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 '남은 것'은 참담했던 과거로부터의 회복이고

현재를 살아갈 용기이고

참담한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을 자신감이다.

그 모든 결심과 의지는

"내 자신에게 긍지를 느끼게 해줘서 고마와요"라는 요코의 한마디에서 온다.

 

두 사람의 사랑 때문에

요코가 자신이 자신인 것에 긍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야마자키도

상대의 사랑으로 인해 여러가지 상처들로부터 회복되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된 그런 자기 자긍심으로 말이다.

(현재 요코의 죽음도

야마자키에게는 과거의 것들과 또 연관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로 등장하겠지만

이제 야마자키는 약한 자신의 모습에서 비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코의 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청정해저서

숲속의 오솔길이라도 산책하며 명상이라도 하는 듯한 그런 투명한 감상을 준다.

(둘은 죽음을 미워하며 현실을 비관하기 보다는 둘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위한

기꺼운 대화의 나날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죽음을 노래한 비관적 스토리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을 찬양하는 희망적인 스토리이다.

 

이 소설은 시한부 스토리라기 보다는

삶과 죽음, 희망과 기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의 스토리이다.

(값싼 통속의 장면이나 고민은 없다.

사실적인 묘사 속에 인간의 진심과 고민과 갈등과 공감이 감정적 역류없이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의 입을 빌어 표출되는  작가적 어법이 상당히 철학적이고 내면적이고 자기 분석적이라

"난 단순한 스토리가 좋다"라는 독자라면

하품을 연달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련된 문체와

어떤 보편적인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가진 소설을 궁금해하는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혹은 평소에 이런 저런 가능성에 귀와 마음을 열고 궁금해 하는 독자라면

이런 방식의 연애 소설에

깊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번 읽고 공감해볼만한 소설.

 

소설의 소재는 "희망이 없는"현실과 미래를 묘사한

비극지상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내면 여기저기서 비치는 작가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놀랄정도로 현실지향적이고도 긍정적인데다가

그 외면과 내면의 갭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연한 소설적인 연출로

작가의 메세지가 유려하게 , 그리고 공감적으로

가슴에 스미는 모양이다.

 

아래 귀절들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많이 있다.

 

<인상깊은 귀절들입니다.>

 

나에게 긍지를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마와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안녕.

 

그것은 이 불확실한 인생에 있어서 그녀가 확실히 매달려왔던 물웅덩이처럼, 설령 작더라도 확실한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행복하다.'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 발견한, 그것이 최후의 물웅덩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는 생기 있고, 빛이 있고, 살랑이는 바람도, 바다도 있다. 이곳이 설령 죽기 위한 거리일지라도.

 

요쿄라는 인산이 살아온 길을 무엇보다 웅변해 주는 것이 그녀가 찍은 사진이었다. 태어나고 죽는, 그 의미를 해명하고, 증명하며, 계속 이야기 해온 것이 요코가 필사적으로 찍어온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다.

 

 

죽을 몸이 되니 알겠는데요, 죽는거 별거 아니에요. 괜한 허풍이에요. 솔직히 말해 무섭고, 외롭고, 화나고, 그런 감정들은 물론 있죠. 하지만 그것들을 이겨낼 만한 즐거운 기억이 내겐 많이 있어요.

 

죽는걸 확인하는 검사같은거 이제 안 받을래.

 

그것이 설령 붉은 달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신경쓰며 살기 보다는 모른채 그때를 맞는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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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오사키 요시오라는 작가가 쓴 책은 처음 읽어 봤는데

아마도 보지 못했다면 후회할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라는 단편을 읽고 난 감상은 그러하다.

 

일본 작가들이 내면을 시니컬하게 탐구하는데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말은 가끔 들었지만

(흔히 멋지다는 둥 세련되었다는 둥)

이 책을 읽어 보니 "그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며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뭉글뭉글 솟아났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알고 싶었었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소설의 영상 속에서 대사와 독백으로 선명히 보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여기 또 있었구나" 싶은 반가움의 밀려옴이라고 해도 될런지 모르겠다.

 

내가 소설속에서 좋아하는건 은유나 비유나 암시와 같은 장치들이다.

드러내놓고 말하는것, 돌발적인 행동의 연속에서 외형적인 스토리에 휩쓸려 가는 것에는 그닥 흥미가 없다. 진정한 글읽기의 매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발현속에서 온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단편 하나만 봤을 뿐이지만

이 작가는 그 여백의 미, 간극의 미,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과 대사의 미, 시간차의 미를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는 작가이다. 구차한 설명은 없지만 주인공의.. 잠시의 침묵 후 내뱉는 짧은 한마디..가 절실하게 독자를 소설 속으로 감정이입시킨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화려한 색채로 질서있게 가득찬 서양화라기보다는 배경 공간이 많은 무채색의 수묵화 =-그러면서도 화려한 색채보다 인상적인-느낌이다.)

 

사실 나는

주인공 야마코토군에게 공감을 느꼈고 그의 사고 방식에 그대로 몰입해 버렸다.

 

작가를 생각해보면

이런 독특한 사고방식과 생각을 가진 남자 주인공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작가 스스로의 철학성(여기서는 남의 철학이 아니라 작가가 평소에 생각한 작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주제로 소설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와 체스를 두는 주인공, 결론이 없는 게임, 결론이 없는 인생, 조각에서 느끼는 인생의 의미, 조각에서 느끼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인간이 무의미한 물건을 만든다는 것...

 

까탈스러운 주제라면 이 소설은 지루할까 싶겠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독자는 각자 다른 철학을 가진 세명의 주인공의 관계가 계속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결말을 궁금해 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서 돌발적인 캐릭터는 역시 여자 주인공인 요리코. 그러나 마지막에 충격을 주는 캐릭터는 다른 남자 주인공인 다케이다.)

 

잘 된 스토리는 작가가 만드는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창조해 내가는 스토리라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이 소설은 세명의 서로 다른 주인공이 각자의 개성과 성격대로 어울리거나 맞부딪치거나 회피하거나 비밀을 간직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닿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냈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주인공들의 독백과 사고방식이 스토리에 세련미와 감각과 철학을 불어 넣었다.

 

작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인상적인 대목을 몇 대목 소개할까 한다.

 

'저 조각상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어떤 의미를 전해주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기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조각상의 의미는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그저 그 존재를 느낄 수만 있으면 둘의 관계는 완성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서로 이해나 소통이 불가능한)를 읽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이라도 존재 자체를 존재 자체로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네게 체스가 사유하는 행위 그 자체의 추출이고 실현이라고 한다면,

여기 있는 조각은 존재 그 자체의 추출이고 실현이야.

전혀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들 역시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거야"

 

"의미라든가 무의미라든가 하는 것 역시 인간의 억지일 뿐이지. 조각의 진정한 가치는 존재 그 자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어"

 

"내가 말이야 여기에 와서 한가지 느낀 건,

인간에겐 의미가 있는 물건보다는 무의미한 것을 만드는 쪽이 훨씬 더 어렵겠구나! 하는 것이었어"

-철학은 무의미하고 체스 연구도 무의미하지만, 혹은 조각상도 무의미할 수 있겠지만, 야마모토군의 인생도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남들과 같은 유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도

철학과 사유속의 무의미한 인생-결과나 답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어쩌면 개인적으로는 더 독특하게 가치로운 일이 아닐까

 

'체스를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면 ,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오로지 회사에 얽매여 눈앞에 있는 것만 믿고 거기에 매달려서 살아가는 당신이, 어떻게 체스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의미라는건 돈인가? 지위인가? 명성인가? 정말로 생의 의미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 생각하고 당신은 살아가는가?'

 

'엘리시오는 어째서 구덩이를 끊임없이 파는 것을 생애의 목적으로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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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 한번은 심각하게 되새기며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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