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에는 공교롭게도 아침부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약과 지갑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잠시 나갔다 올게.”

. 조심해서 다녀와.”

 

역시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아내에게는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보내주었다.

817, 오전 9시 반. 쇼와 거리 교차로로 향했다.

더 이상 걷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에 늘 신세를 지는 전동 휠체어에 앉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속 10킬로미터 이상 속도도 거뜬히 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옛날에는 자신의 다리로 활보했던 거리를 바라보며

시속 4킬로미터로 천천히 나아갔다.

 

어째서인지 묘하게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저런 건물이 없었지, 그 오브제는 언제 철거된 걸까,

이 가게는 어째서 망하지 않는 걸까…….

동네 한 군데 한 군데에 추억을 되새기며 그 광경을 눈에 각인시켰다.

분명 더 이상 이렇게 외출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너무 꾸물댔나 보다.

10분 전에는 도착할 생각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되어 있었다.

 

쇼와 거리 교차로.

이 지방 도시의 중심지를 사등분하는 가장 큰 교차로다.

당연히 교통량도 많아서 신호는 보행자 차량 분리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에는 모든 도로에 걸쳐져 있던 거대한 육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다리 기둥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탓에 위험하여 철거했다고 한다.

나는 오랜 사진에서 본 그 육교를 너무 좋아해서 자주 멈춰서는

위를 올려다보고 육교를 건너는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 추억이 담긴 교차로였지만.

도착해서도 역시 약속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오전 10.

쇼와 거리 교차로.

어느새 자신의 단말기에 입력되어 있던 의문의 스케줄.

어쩌면 자신이 입력하고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때가 되면 떠오르지 않을까 하고

얕은 기대감을 안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나 보다.

 

교차로 남서쪽 모퉁이 옆,

공원이라고 부를 만큼 그리 넓지 않은 일대에 아담한 나무가 심겨져 있고,

그곳에 레오타드 소녀가 있다.

수줍어하듯이 손으로 가슴을 가린 육감적인 소녀의 동상으로

내가 태어났을 적부터 쭉 있었던 것이다.

익숙하긴 하지만 모델이 누구인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이곳에 세워져 있는지 등은 전혀 모른다.

약속 장소는 이곳일 테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말고

나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를 멈추고 멍하니 그 동상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왠지 주변의 이목이 신경 쓰여서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보행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이제 그곳에 없었다.

대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지방 도시다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는 도회지의 교차로에 비하면 훨씬 작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다 건넜는데도 신호는 아직 깜박이지 않았다.

보행자 신호로 더디게 바뀌는 만큼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시간이 긴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단 한 사람, 횡단보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이쪽으로 다 건널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이쪽으로 오지도 않고 저쪽으로 달려가지도 않은 채 단지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무리 보행자가 건너는 시간이 길다고는 해도 그런 곳에 계속 서 있으면 위험하다.

휠체어를 움직인 나는 횡단보도로 다가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런 곳에서 뭐 하니? 위험하단다.”

 

내 말에 여자아이가 돌아보았다.

중학생쯤 되었을까?

하얀 원피스를 입은, 길게 뻗은 생머리가 아름다운 예쁘장한 아이였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리러 와준 거야?”

 

데리러 왔다는 말은 조금 과장스러웠지만, 행위로서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신호가 깜박이기 시작했기에 아이에게 맞춰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데리러 왔단다. 그러니 이리 오렴,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고 손을 뻗자 소녀는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손을 뻗은 채 나는 굳어졌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고 차가 눈앞을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선 휠체어를 뒤로 돌려서 동상 앞까지 돌아왔다.

다시 횡단보도를 쳐다봤지만 역시나 어디에도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눈앞에 있던 소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지만,

오랜만이다 보니 역시 한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요컨대 나는 지금 패러렐 시프트한 평행세계로 건너간 게 아닐까.

패러렐 시프트란 같은 시간 어딘가의 평행세계에 있는 자신과

의식만 교체되는 현상이다.

장소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이 세계의 나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비교적 가까운 세계일 테지만,

소녀가 두세 번째 정도 옆 세계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열 번 정도는 시프트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건너간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렇다면 최악의 가능성으로 제로 세계에서는

소녀가 그대로 차에 치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직 IP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아침에 일어났을 시점에 이미 나는 어딘가의 다른 세계에 있었고,

지금 제로 세계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IP를 확인하기 위해서 손목에 찬 단말기에서

음성조작으로 IEPP 화면을 불러내 여섯 자리의 디지털 숫자를 켰다.

이 수치가 0이라면 이곳은 제로 세계지만.

하지만 그 화면에는 숫자가 아니라 [ERROR]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망가졌나……?”

 

무슨 일이지. 이래서는 자신이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지금 제로 세계에 있고 횡단보도에 소녀가 있었던 것이

어딘가의 평행세계라고 한다면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평행세계고

횡단보도에 소녀가 있던 곳이 제로 세계라면…… 몹시 걱정이 되었다.

제로 세계에 간 이 세계의 나는 그 아이를 제대로 구했으려나?

어떻게든 지금 바로 이곳이 어느 세계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타인의 IP를 보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공서에 가면 대체 단말기를 구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심사가 필요해서 바로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뭔가…… 하고 생각하던 중에.

문득 생각났다. 자신이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그게 당연하지 않았던가.

어느 한 과학자에 의해 평행세계의 존재가 증명되어

사실 인간은 아무 자각 없이 일상적으로 평행세계를 이동하고 있다고

판명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칠 만큼 일반 상식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평행세계라는 개념은 픽션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무렵으로 돌아간 것뿐이지 않은가.

그때. 평행세계라는 것은 너무나도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평행세계를 의식한 것은 때마침 10살이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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