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해온 주소지에 서있는 것은 오래된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방 한 칸 한 칸이 얼마나 비좁은지는 건물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근처에 대학이 몇 군데나 있어서 주로 그 대학생들의 입주를 전제로 한 건물일 터였다.

1층 가장 안쪽이 와키사카 다쓰미의 방이었다.

프레임에 온통 녹이 슨 자전거가 현관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작은 창문 너머는 깜깜했다.

도어폰이라는 세련된 기기는 눈에 띄지 않아서 고스기는 직접 문을 두드려야 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와키사카 씨, 와키사카 씨, 라고 두 번 불러봤지만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집에 없나?” 고스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녁 먹으러 나갔는지도 모르죠. 잠시 기다려볼까요?”

시라이의 제안에 그러자고 대답하면서 고스기는 옆집을 살펴보았다.

문패는 달리지 않았지만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스기는 그쪽 현관문 앞까지 이동해 노크해보았다.

곧바로 네에, 라고 남자 목소리가 응했다.

잠깐 실례 좀 해도 될까요?” 고스기가 말했다.

누구십니까?”

관청 사람입니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요.”

대답은 없었지만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하지만 체인은 걸어둔 상태였다.

문 틈새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아마 대학생일 것이다.

고스기는 경찰 배지를 제시했다. “저녁 시간에 미안하네.”

청년의 눈이 둥그레졌다. 두려움과 놀람이 섞인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

옆집의 와키사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뭔데요?”

와키사카와는 평소에 왕래가 있나?”

청년의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합니다. 같은 대학이고 해서요.”

가이메이대학?”

, 라고 청년은 대답했다.

근데 학부는 달라요. 저는 공학부, 그 친구는 아마 경제학부일 거예요.”

고스기가 이름을 묻자 청년은 마쓰시타 히로키라고 밝혔다.

와키사카와 마찬가지로 4학년이라고 했다.

와키사카가 지금 집에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어디 갔는지 알아?”

마쓰시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모르는데요.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아서…….”

학생은 오늘 계속 집에 있었어?”

아뇨, 오전에는 학교에 갔어요. 집에 돌아온 게……3시쯤이었나?”

그 뒤에는? 어딘가 외출했어?”

아뇨, 혼자 집에 있었어요.”

와키사카는 어땠지? 집에 있는 것 같았어?”

글쎄요…….” 마쓰시타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죄송합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직접 본 건 아니라는 거지?”

, 그렇죠. 오늘은 못 봤습니다.”

집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없었어?”

들렸을 수도 있지만,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이 아파트가 워낙 벽이 얇아서 밖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거든요.”

와키사카의 휴대전화 번호는 알고 있나?”

아뇨, 모르는데요.”

메일을 주고받은 적은?”

그것도 없어요. 볼일이 있으면 직접 가는 게 더 빠르니까요.”

그러면 와키사카와 친한 사람 중에 자네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여기에서도 마쓰시타는 트릿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가 자주 놀러오는 것 같긴 하던데, 제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허탕인가, 하고 고스기는 낙담했다.

이 대학생에게서는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됐습니까? 제가 내일까지 꼭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어서요.”

, 이거 미안하게 됐네. 협조해줘서 고마워.”

고스기가 인사를 건네자 마쓰시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체인은 풀어주지 않았다.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네.”

고스기가 속닥거린 직후, 코트 속에서 스마트폰이 착신을 알렸다.

난바라에게서 온 것이었다.

, 고스기입니다.”

와키사카는 만났어?”

그게요, 지금 집에 없어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어서

여기서 좀 더 기다려볼까 하던 참입니다.”

그 아파트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없었나?”

옆집에는 물어봤는데 그리 친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 그래? 근데 혹시 문 손잡이는 만지지 않았지?”

문 손잡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와키사카 집 현관문 손잡이 말이야.

혹시 만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거야. 아니면 벌써 손을 댄 거야?”

초조한 듯이 난바라가 재우쳐 물었다.

고스기는 와키사카의 집 쪽으로 몸을 돌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아뇨, 우리는 손대지 않았는데요.”

좋아. 그럼 그대로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 곧 그쪽으로 감식반이 나갈 거야.

문 손잡이의 지문을 채취하기로 했으니까 아무도 손대지 않게 잘 감시해.”

사건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 발견된 겁니까?”

아까 얘기했던 대로 우편함 바닥에 숨겨뒀다는 그 부엌문 여벌열쇠야.

감식반에서 조사해본 바, 피해자의 것도 아니고

후쿠마루 부부의 것도 아닌 지문이 찍혀 있었어. 게다가 명백히 최근에 찍힌 것이래.

그 부부의 아이들은 지난 일 년 동안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하니까

이건 범인의 지문일 가능성이 높아.”

그 지문, 사건현장에서도 발견되었어요?”

현장에는 여러 개의 지문이 남아 있어서 지금 대조 중이야.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자네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뒤 고스기는 시라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부엌문 여벌열쇠에 지문이라고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범인이 그런 걸 남겨두고 갈까요?”

 시라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깜빡하는 실수라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사람을 죽인 직후이고 보면 도망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져서

그런 것까지는 미처 신경을 못 썼는지도 모르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원박스 왜건이 나타나 바로 앞 도로 옆에 섰다.

슬라이드 도어가 열리고 모자를 쓴 감식반 담당자 두 명이 내렸다.

고스기는 그 둘 다 면식이 있었다.

늦게까지 잔업하느라 수고가 많네.”

나이 많은 쪽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느닷없이 생고생이지 뭐야.”

내일부터는 더 힘들걸요?” 고스기가 말했다.

일단 본청 사람들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맞장구를 치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관할서 감식반은 초동수사로 대부분의 업무가 끝난다.

본청 사람들에게 턱짓으로 지시받을 일은 없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나저나 문제의 그 집은 어디야?”

저기예요.” 고스기는 와키사카 다쓰미의 집을 가리켰다.

저 자전거도 이 집 사람 것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나이 많은 감식반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젊은 파트너에게 뭔가 귀엣말을 했다.

곧바로 두 사람은 작업에 들어갔다. 젊은 쪽이 현관문 손잡이의 지문을,

나이 많은 쪽이 자전거의 지문을 채취하기로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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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7-12-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을 읽어보면서 풀어보고 싶어지네요^^

고귀한 수영이 2017-12-2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슬슬 게이고옹 특유의 감질맛 나는 사건이 시작되는 군요.

애니는재미있어 2017-12-2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밝혀지는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