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아이는 오늘 같은 반 남학생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던 것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아직 조금 이른 감도 있지만,

물론 그 눈물을 무시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손녀가 눈물을 흘린 이유가

그런 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백…… 안 할 걸 그랬어……!”

 

내가 보기엔 귀여운 이유라도,

본인은 지금 세상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슬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그 슬픔을 위로해줘야겠다 싶어서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아이, IP를 보여주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손목에 감긴 웨어러블 단말기를 가리켰다.

아이는 새빨갛게 부은 눈으로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고 단말기를 조작했다.

홀로그램으로 확대 표시된 모니터 안에는

IEPP라는 글자 아래에 여섯 자리의 디지털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정수가 세 자리, 점을 사이에 두고 소수가 세 자리.

소수 세 자리는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어지럽게 변해갔지만,

정수 세 자리는 또렷한 숫자를 표시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 숫자가 [000]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것은 이미 배웠을 터이다.

 

아이. 아이는 조금 전에 고백 안 할 걸 그랬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가 용기를 내 고백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

평행세계에 대해선 학교에서 이미 배웠지?”

.”

아이는 말이지, 고백을 함으로써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낳았단다.

 제로 세계의 아이는 차였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분명 맺어졌을 거야.”

……다른 세계의 내가 맺어졌더라도 이 세계의 내가 차이면

아무 소용도 없잖아.”

그렇지 않아. 어떤 세계의 아이도 같은 아이야.

아이는 23의 세계로 이동한 적 있지?”

몇 번인가 있어.”

그 세계에 있던 할아버지는 미웠어?”

안 그랬어!”

고마워. 할아버지도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단다.”

…….”

평행세계는 이 세계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의 세계야.

 그러니 아이의 용기는 반드시 어딘가의 세계에서 보답받고 있을 거야.

다른 세계에서 맺어진 아이도 같은 아이야.

그건 즉, 아이의 고백이 쓸모없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

……이해 못 하겠어.”

 

역시 아직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일렀던 걸까.

그렇지 않아도 평행세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그 화제로 무척이나 고민한 적이 있다.

다만, 잘 모르겠다며 입술을 뾰로통하니 내민 귀여운 손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슬픔을 달래다니,

정말이지 어른들이나 쓸 법한 고지식한 수단이지만 말이다.

 

그럼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아이는 차였지만, 그 덕분에 다음엔 온 세상의

누구와도 맺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넣었단다.

아이는 분명 더 멋진 남자아이를 만날 거야.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거지.”

더라니, 어느 정도?”

글쎄…… 할아버지 정도?”

안 돼! 더 젊은 사람이 좋아.”

 

손녀에게 차였다. 은근히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선 기운은 차린 것 같다.

이 빠른 회복력도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혼자 남게 되면 다시 울기 시작하려나.

방을 나가는 아이의 등을 배웅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고 불을 껐다.

그리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쩌면 앞으로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떴더니

오늘의 고백이 이루어진 평행세계로 이동해서

한때의 행복에 얼떨떨해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역시 맺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제로 세계의 아이를 대신해서

그 세계에서 찾아온 아이에게 물어보자.

그쪽 세계의 나는 고백에 성공한 너를 어떤 말로 축복했느냐고.

분명 그것은 지금 내가 상상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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