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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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괴로움, 원한과 분노, 그런 감정들은 시간을 뛰어넘어서 남지요, 하지만."

그 어두움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잊혀져 간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잊혀 간다. 그래서 비었다.

"잊힌 게 슬펐군요. 잊혀 가는 게 슬펐군요."

 

고향에서 생긴 끔찍한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나 숙부 댁인 미시마야로 오게 된 오치카.

미시마야는 복주머니로 유명한 두 집 사이에 숙부가 오랜동안 봇짐장사를 하다가 드디어 세를 얻어 낸 가게로 풍류객들에게는 꽤나 이름난 집이다.

집 안에는 흑백의 방. 이라는 방이 있고 숙부는 그곳에서 손님들을 맞아 함께 바둑을 둔다.

그러던 어느날, 바둑을 두기로 한 약속을 앞두고 숙부에게 무가에서 급한 주문이 들어오고 숙부와 숙모는 무가로 간다.

약속을 깨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오치카가 손님의 접대를 대신 맡게 된다.

그리고 오치카는 손님으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손님의 기묘한 이야기를 듣고 얼마 후 손님은 세상을 떠난다. 그렇지만 그동안 품어 왔던 응어리를 다 걷어내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오치카는 풍류를 즐기고 도락을 좋아하는 숙부로 인해 그 때부터 흑백의 방에서 새로운 풍류거리를 담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괴담을 모으는 일. 숙부는 오치카가 이 일을 통해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편안해 질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치카는 그 흑백의 방에서 도락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써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는데..

 

총 다섯 편의 괴담이 담긴 미시마야 변조괴담은.. 괴담이라고 하기엔 기이하고, 농담이라고 하기엔 서늘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오치카가 듣고 있는 장면이 연상되는 서술로 역시 미야베 미유키 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임에도.. 제대로 들어주었을 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속을 털어놓고 후련하게 하며 그 사람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랫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책 안 읽은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갔는데..ㅋㅋ 다시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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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하심은 취소되지 않는다 - 유난히 인생이 힘들어 질 때, 기억하세요
김병국 지음 / 할라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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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믿음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지금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 확신이 없다면 우리가 일년 동안 많은 기도를 드리고 많은 봉사를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성경이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자꾸 무엇을 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시다. 우리 하나하나는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실만큼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ㅎ 안의 목차도 보니 유난히 고통스러운 인생, 보이지 않는 사랑, 하늘을 보다, 당신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 등등..

동생과 함께 보고 싶어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신앙서적 산 게 진짜 오랫만인듯..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다 읽었는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나의 어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시는데 힘이 되었다...

 

<책 속에서..>

p.16

다윗의 인생이나 우리의 인생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또한 우리의 실패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윗처럼 실패할 때 우리는 간혹 지금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명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처럼 우리를 다루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세상의 방법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p.19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정하신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가 계속 반항하고 게으름을 피워도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차라리 손을 놓으시면 편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자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수준으로 단련시켜서 그 일을 하게끔 인도하신다.

 

p.20

사명을 받은 우리는 귀중한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가?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힘도 반드시 함께 주신다. 성경에 수많은 구절들이 그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이 말씀 가운데서 "그러므로" 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는 앞과 뒤가 인과관계로 연결될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을 주신 이유가 예수님께 모든 권능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께 모든 권능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원인이 되는가? 그것은 사명을 이루는 원동력이 제자들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한 자들인지 아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으니 제자들에게 안심하고 사명을 맡긴다고 하신 것이다.

 

p.23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인간의 약함과 실패 때문에 취소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다 아셨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28

우리는 고난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고난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난의 목적은 어떤 깨달음이 아니다.

고난의 목적은 순종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었을 때 고난은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p.32

우리에게 고난이 계속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하나는 그 고통 자체 때문이다. 무너질만한 고통이 오면 누구나 무너진다.

그런데 고난이 왔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겪는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상태가 아무리 황폐해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성령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는 아니다.

시편은 찬송시와 애통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두 가지 중에서 애통시의 수가 절반을 넘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참혹한 고통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신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봉사와 찬양과 헌금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낸다.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순종과 충성과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p.39

우리의 고난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의 고통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떠나셨다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

 

p.52

남들은 다 앞으로 쭉쭉 달려가는데, 나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쏟아부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게 된다.

 

p.56

우리는 반드시 열등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열등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열등감에 대한 치료책은 무엇일까? 하나님에게는 해결책이 있다. 우리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너희가 고민하는 열등감이 내가 너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다 알고 부르셨다. 그러니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낙심하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을 모를 때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나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하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열등감 때문에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이 인생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내 인생을 아직도 나의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다면 우리는 주의 종이 아니다.

 

p.6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나 자신을 바라보아서는 도무지 담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따라야 할 생존방식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아모스 5장 14절)"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따르고 순종해야 할 법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믿음의 법이다. 그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가 반드시 살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해 놓으셨다.

 

p.71

우리에게 고통이 올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어긋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현실은 우리를 계속 짓누른다.

"예수님이 나의 생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해 보라. 자신의 영적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

고난에 맞춰서 나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충분히 크면 상처는 이미 상처가 되지 못한다. 내 상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옛꿈을 그대로 지켰는데도 아픔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꿈과 비전을 전보다 더 크게 조정해야 한다. 내 상처가 아주 작게 보일 때까지

그것이 내 꿈에 비하면 상처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인생의 비전을 크게 조정해야 한다. 그것이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기억하라 우리의 꿈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포기했던 꿈,  한 번 아픔에 얻어맞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곡차곡 접어서 내 마음 한켠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그 꿈을 다시 부둥켜 안아야 한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8:13)"라고 말씀하셨다.

 

p.84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고 하면 그것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십자가를 주신 사랑이 있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이 있다.

그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겠다고 하시면 거기에는 제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전2:29)"

라고 말한다.

 

p.93

레위 자손은 금송아지 일로 저주를 받았지만 수백년 간 하나님을 잘 섬겨서 결국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그들이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율법만 바라본다면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보았다.

꾸준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들의 미래를 저주 가운데 방치해 둘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p.172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작은 자들의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작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작게 평가하고 계시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p.193

우리는 회개하고 떨쳐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를 잊었는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해 선한 것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p.229

우리 삶에 불행이 닥치건 행복이 닥치건 그 모든 것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는 신앙을 갖기를 원하는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참된 해갈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장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제게 주십시오. 하나님 자신으로 저를 만족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 중에 이것보다 더 큰 기도는 없다. 그리고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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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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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그들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노래는 이제 더 이상 한 끼의 밥과 노역을 피하기 위한 구실이 아니었다. 그들이 노래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윤 동 주의 마지막..

스기야마 도잔의 마지막..

와타나베 유이치의 마지막..

최치수의 마지막...

 

p.16

소리는 하늘보다 파랬고 바람보다 맑았고 별보다 반짝였다. 자신의 몸에서 뽑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수도승처럼 정진하는 죄수들.

먼지와 빛과 함께 허공을 떠도는 선율, 뒤섞이는 소리들의 화음. 그 소리를 들으며 스기야마는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자신의 장기를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뜨거운 심장을.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야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p.33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동주에게 죽느냐 사느냐는 생과 사를 뜻하는 용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To be 가만히 있느냐 Not to be 가만히 있지 않느냐 즉,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p.137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기억은 시간과 함께 숙성되며 모든 기억은 소중하니까,

고통스러운 기억조차 삶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니까. 혼자만의 사랑 또한 그의 인생을 이룬 소중한 한 부분일 것이다.

 

p.154

나는 그렇게 얻은 잿더미 위의 승리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승리는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부서진 양심과 잿더미가 되어버린 인간성 밖에는..

 

p.178

감사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감사하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으니까. 나는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웠다.

 

p.234

나는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를 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이 더러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를 잡아가둔 자들도, 그를 그 지경으로 만든 자들도 일본인이었다.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는 나도 일본인이었다.

전쟁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들 모두는 일본인의 이름으로 벌어진 이 더러운 전쟁에 동의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용서받아야 할까? 아니, 우리들은 모두 용서받을 수 있기나 한 걸까?

나는 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p.240

나는 그를 잃어야 하는 것이 분했다. 그를 잃어야 할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였다.

 

p.251

그는 한편의 시로 나를 꾸짖고 나를 일으켰으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더럽고 악의적인 현실 앞에 무릎꿇지 말아야 했다. 일어서서 맞서야 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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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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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눈부시게 푸릅니다.

                    -윤동주 "길" 중에서.. - "

 

하늘, 바람, 별, 시

윤 동 주

히라누마 도주..

 

나라를 잃고 말을 잃고 글을 잃었던 망국의 시민..

자신이 내놓은 자식같은 시어가 불길 속에 사그라져 가고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그의 스물네살 첫째달은 왜 그리도 부끄러웠을까..

 

불온한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수인번호 645번 히라누마 도주.

그리고 주로 조선인 사상범들이 수용된 제 3 수용동을 관리하던 악명높은, 야생의 위험함이 풍기는 간수 스기야마 도잔의 갑작스런 죽음.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윤동주와 스기야마의 있을 수 없을 것 같던 만남과 이야기들..

스기야마 도잔의 교대였던 와타나베 유이치는 스기야마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제 3 수용동의 일인자 같은 존재인 최치수와 최치수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조용한 영향력을 가진 윤동주에 대해 알게 된다.

 

그냥 나의 짧은 글로 이 책을 설명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너무... 좋고 너무 먹먹해서.. 읽는 내내 울먹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활자의 고마움....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망국의 슬픔을 그의 아름다운 시어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 자료에 근거하였고 허구인 부분도 많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리고 먹먹한 일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몹시 슬펐다.

원래 참 좋아하는 시인인데... 가장 좋아하는 시인... 나의 닉네임을 짓게 된 근원...

 

읽는 내내 마음이 서걱서걱 거렸다..ㅠㅠ

아무래도 이 책을 구입해야할 것 같다.

 

<책 속에서..>

p.9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p.37

사람들은 필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 글씨의 형태와 윤관과 위치는 쓴 사람의 심성과 욕망 뿐 아니라 당시의 기분과 분위기까지 말해준다.

 

p.49

나는 그들이 꿈꾸는 책을 건넸지만 가끔은 그들이 원하는 책을 건네지 않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넘겨주고 싶지 않은 책들. 영원히 나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책들...

 

p.67

열두 권의 책은 한 줄의 연기와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나는 아직 불씨들이 깜박이는 재 위로 손을 가져갔다. 따스했다.

죽어버린 책들의 식지 않은 체온, 바스러진 활자들, 죽어버린 단어들, 스러진 음절들....

오래 참은 숨을 내뿜는 고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되새겼다.

 

p.84

"당신도 죄 없이 끌려왔군요."

 

p.85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를 읽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읽은 것처럼.

 

p.100~101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한 줄의 글로 족했다.

한 줄의 문장에도 배고팠던 나는 활자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나의 영혼은 언제나 영양부족 상태였다. 살아 있는 문장을 만나고 싶었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촉촉한 속살을 가진, 갓 구워 낸 문장, 굳은 몸을 녹이듯 영혼을 녹이고, 안식을 주는 글.

 

p.157

말을 마친 그녀는 조여진 태엽 인형처럼 연주를 시작했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튀어 오르면 건반은 해머를 밀어 올렸고 해머는 현을 두드렸고 현은 떨리며 향판에 부딪혔다. 음들은 이어지고 뒤섞이며 어둠 속으로, 메마른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절망의 등짐은 벗겨지고 일상의 비루함은 사라졌다. 살고 싶다는 희망, 누군가와 손잡고 싶은 연대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열망이 솟았다. 나도 모르게 피아노 선율을 따라 노래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나의 지친 영혼을 끌어안았다. 피아노 소리는 밀물과 썰물처럼 내 가슴을 쓸었다. 내가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나의 슬픔은 극복되고 있었고 영혼은 치유되고 있었다. 음과 소리들이, 간격과 이어짐이 주위를 채웠다. 정적 속의 맥박, 고요 속의 아우성. 아름다웠다. 이 질척거리는 세상에도 깃털 같은 희망을 믿고 싶어질 만큼.

 

p.169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p.178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10절)

 

p.218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에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 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죠.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요.

 

p.220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p.225

조국을 잃어버리고,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이름을 잃어버린 청년.

 

p.236

도대체 시가 뭔데 너 같은 놈이 여기까지 왔지?

말씀 언 변에 절 사. 시는 말의 사원이지요.

 

p.239

시는 삶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시를 써왔어요. 잉크로 종이에 쓰는 대신 온몸으로 거리에다 시를 썼죠

 

p.259

스기야마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승전? 전쟁에 이기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전쟁과 싸워 이기는 인간은 없다. 죽음과 싸워 이기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면 모두가 패자다. 승자 조차도 자신이 얻은 승리 때문에 고통 받고 파멸당한다. 그러니 이기는 자에게도 지는 자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전쟁으로 상처입는 건 똑같으니까.

 

p.265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목적어 없는 첫 문장은 무언가에 쫓기듯 절박한 자기고백이었다. 그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조국도, 모국어도, 자신의 이름조차도,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들을 가진 적조차 없었던 건지도.

 

p.273

시는 네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명이야. 시가 죽으면 넌 죽은 목숨이라고!

 

p.278

그러므로 문장은 말하는 자의 심경을 반영하지 않는다. 문장은 바로 말하는 자 자신이다. -스기야마의 메모-

 

p.286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별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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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은혜 (탁상용, 스프링) - 맥스 루케이도의
맥스 루케이도 지음 / 가치창조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정녕'에 주목하라. 다윗은 확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확실한 약속을 하고 확실한 기초를 세우시는 분.

우리의 기분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우리가 믿음을 잃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그분은 확실한 하나님이시다!!

 

일년동안 나의 잠자리 옆을 지켜준 일용할 은혜365

하나님의 말씀과 맥스 루케이도의 깊은 묵상이 담긴 이 묵상달력은

지쳐 그냥 쓰러져 자고 싶은 날에도 잠깐의 짧은 쉼과 힘이 되어 주었다..

늘 그렇게 옆에 있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준 2012년 한 해 동안의 동반자.

 

2013년에는.... ^^

또 어떤 묵상들로 나를 채우실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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