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하심은 취소되지 않는다 - 유난히 인생이 힘들어 질 때, 기억하세요
김병국 지음 / 할라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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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믿음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지금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 확신이 없다면 우리가 일년 동안 많은 기도를 드리고 많은 봉사를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성경이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자꾸 무엇을 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시다. 우리 하나하나는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실만큼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ㅎ 안의 목차도 보니 유난히 고통스러운 인생, 보이지 않는 사랑, 하늘을 보다, 당신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 등등..

동생과 함께 보고 싶어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신앙서적 산 게 진짜 오랫만인듯..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다 읽었는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나의 어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시는데 힘이 되었다...

 

<책 속에서..>

p.16

다윗의 인생이나 우리의 인생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또한 우리의 실패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윗처럼 실패할 때 우리는 간혹 지금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명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처럼 우리를 다루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세상의 방법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p.19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정하신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가 계속 반항하고 게으름을 피워도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차라리 손을 놓으시면 편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자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수준으로 단련시켜서 그 일을 하게끔 인도하신다.

 

p.20

사명을 받은 우리는 귀중한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가?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힘도 반드시 함께 주신다. 성경에 수많은 구절들이 그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이 말씀 가운데서 "그러므로" 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는 앞과 뒤가 인과관계로 연결될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을 주신 이유가 예수님께 모든 권능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께 모든 권능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원인이 되는가? 그것은 사명을 이루는 원동력이 제자들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한 자들인지 아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으니 제자들에게 안심하고 사명을 맡긴다고 하신 것이다.

 

p.23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인간의 약함과 실패 때문에 취소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다 아셨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우리는 자신의 약함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28

우리는 고난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고난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난의 목적은 어떤 깨달음이 아니다.

고난의 목적은 순종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었을 때 고난은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p.32

우리에게 고난이 계속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하나는 그 고통 자체 때문이다. 무너질만한 고통이 오면 누구나 무너진다.

그런데 고난이 왔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겪는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상태가 아무리 황폐해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성령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는 아니다.

시편은 찬송시와 애통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두 가지 중에서 애통시의 수가 절반을 넘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참혹한 고통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신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봉사와 찬양과 헌금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낸다.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순종과 충성과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p.39

우리의 고난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의 고통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떠나셨다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

 

p.52

남들은 다 앞으로 쭉쭉 달려가는데, 나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쏟아부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게 된다.

 

p.56

우리는 반드시 열등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열등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열등감에 대한 치료책은 무엇일까? 하나님에게는 해결책이 있다. 우리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너희가 고민하는 열등감이 내가 너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다 알고 부르셨다. 그러니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낙심하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을 모를 때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나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하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열등감 때문에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이 인생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내 인생을 아직도 나의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다면 우리는 주의 종이 아니다.

 

p.6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나 자신을 바라보아서는 도무지 담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따라야 할 생존방식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아모스 5장 14절)"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따르고 순종해야 할 법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믿음의 법이다. 그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가 반드시 살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해 놓으셨다.

 

p.71

우리에게 고통이 올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어긋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현실은 우리를 계속 짓누른다.

"예수님이 나의 생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해 보라. 자신의 영적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

고난에 맞춰서 나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충분히 크면 상처는 이미 상처가 되지 못한다. 내 상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옛꿈을 그대로 지켰는데도 아픔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꿈과 비전을 전보다 더 크게 조정해야 한다. 내 상처가 아주 작게 보일 때까지

그것이 내 꿈에 비하면 상처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인생의 비전을 크게 조정해야 한다. 그것이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기억하라 우리의 꿈과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포기했던 꿈,  한 번 아픔에 얻어맞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곡차곡 접어서 내 마음 한켠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그 꿈을 다시 부둥켜 안아야 한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8:13)"라고 말씀하셨다.

 

p.84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고 하면 그것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십자가를 주신 사랑이 있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이 있다.

그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겠다고 하시면 거기에는 제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전2:29)"

라고 말한다.

 

p.93

레위 자손은 금송아지 일로 저주를 받았지만 수백년 간 하나님을 잘 섬겨서 결국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그들이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율법만 바라본다면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보았다.

꾸준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들의 미래를 저주 가운데 방치해 둘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p.172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작은 자들의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작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작게 평가하고 계시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p.193

우리는 회개하고 떨쳐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를 잊었는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해 선한 것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p.229

우리 삶에 불행이 닥치건 행복이 닥치건 그 모든 것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는 신앙을 갖기를 원하는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참된 해갈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장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제게 주십시오. 하나님 자신으로 저를 만족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 중에 이것보다 더 큰 기도는 없다. 그리고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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