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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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본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것을 1980년대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과학의 붐을 타고 수 많은 책들이 출간되던 때다. 각국의 격변적 사건들이 ‘현대사’ 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한국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변혁운동 때문이었다. 동남아시아나 남미,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지역은 이 당시 끓어 넘치는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으면 계속 외면 받았을 지역이다. 흘러넘치는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방향은 일본까지 뻗었다. 1980년대 간간히 소개된 학생운동 관련 서적이나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책들은 이 시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사라져갔다. 일본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은 순전히 민족주의 프레임에 의한 것이었다. 수많은 한일관계 관련 고대사 책들이나 1990년대를 강타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일본을 이해하기 전에 증오하는 법을 배워왔고, 이를 배양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민족주의 프레임에 의해 생산된 일본에 대한 담론, 혹은 스테레오 타입이 그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줬느냐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일본은 왜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는가,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했는가, 왜 위안부를 동원했는가, 등의 질문에서 종래의 민족주의적 해석들은 충분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근대화 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전후보상의 문제, 즉 과거청산의 문제에서 엄정한 시각을 갖지 못한다. 이는 양국 시민사회의 소통을 심각하게 저해하며 서로의 평화운동이 연대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한 마디로, 나는 일본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가까운 이웃나라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으며,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단지 가까워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고, 비슷한 점도 많다. 일본 현대사는 일본을 이해하는 하나의 주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 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한 좋은 자료는 많지 않다. 이를테면 이곳에서도 언급했던 나카무라 마사노리의 <일본전후사>는 한국인을 위한 일본현대사 입문서로서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다. 저자의 史論은 다소 허술하며(貫戰史),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거나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점에서 정치학 출판 부문에서 화끈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에서 펴낸 <일본전후정치사>는 일본현대사 입문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개성은 저자 서문에 핵심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저자인 이시카와 마스미는 “전후일본정치를 논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 책의 컨셉을 말한다.

이런 책은 수록된 정보가 얼마나 객관적이며 잘 정리 되었는가로 그 성패를 판가름 할 뿐이다. 아쉽게도 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은 앞으로 일본현대사나 일본정치를 공부할 때 좋은 참고 서적이 된다는 것이다. 깊은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친절한 안내자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쉬우며 잘 정리 되어있다.

번역도 깔끔한 편이며, 친절한 역주가 돋보인다. 부러 논하지 않고 기록했기에, 두고두고 읽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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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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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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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결하며 경쾌하다. 이 책을 읽고 난 첫 느낌이다.

한 국가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파악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판단할지, 어떻게 묶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본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베네딕트나 이어령이 떠오른다.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여옥의 일본론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분석하는 각각의 이론틀에 대해서 여기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는 오쿠마 에이지가 진단하는 일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쿠마는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을 겪으며 형성된 일본의 독특한 정치 환경에 주목한다. 즉 저자는 1)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 되었는가. 2) 전후 일본의 재무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쿠마의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일본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는지가 될 것이다.

오쿠마는 오늘의 일본을 구성하게 된 가장 큰 역사적 흐름으로 메이지 유신과 전후(戰後,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를 꼽는다. 전자의 의문부터 들어가보자.

2.

메 이지 유신은 근대 일본의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주목한다. 후쿠자와는 당시의 일본을 언제 서양에 침략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전근대의 동양에서 탈피(脫亞)하여 서양이 되는 것(入歐)이다. 즉 강력한 서구화를 추진하기 위해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자와의 바램대로 나아갔다. 후쿠자와가 내세운 첫 번째 과제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국민교육의 실시는 농사일로 바쁜 농민들의 저항을 가져왔다. 아이를 (농업)노동으로부터 보호하고 근대적 주체로 각성시키는 국민교육에 전근대적 농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 가지 계기로 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을 통해 국민교육이 가지는 잠재적 효과에 일본 정부가 눈뜬 것이다. 근대적 습속을 받아들인, 즉 근대적 주체로 각성한 병사는 다른 이들과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근대화로 인한 직업구조의 변화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무직 노동자, 즉 월급쟁이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을 마친 사람들로부터 채워졌다. 빈궁한 농민의 처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샐러리맨으로 신분상승하기 위해서는 너도 나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국민교육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을 제공해 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열강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對 아시아 침략전쟁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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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렇다면 전후 일본은 어떻게 되었을까. 브레이크 없는 침략전쟁이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는 일본만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의해 동원된 조선과 대만, 그리고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나라들의 상처 역시 쉽게 지워지기엔 그 상흔이 너무 깊었다.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을 비무장화 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같이 작용했다. 하나는 미군정이 일본을 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중에는 일본을 전쟁 없는 평화적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희망도 함께 있었다. 일본의 전후개혁이라 할 수 있는 재벌해체, 비무장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 된 것이다. 평화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수정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게 일본은 동구권에 대항하기 위한 반공기지로서 재설정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재군비를 추진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게 해야 했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위대가 만들어지고, 일본은 한국전쟁의 후방기지가 되었다. 그 댓가로 일본은 조선특수라 불리는 경제호황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전후 호황은 일본이 경제 대국화 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후 일본은 착실히 미국의 가신이 되었다. 미국은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했고 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 일본과의 국교를 종용했다. 이 시기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전후 보상문제는 지금도 아시아 주변국가들과 일본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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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라는 부제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입문서로 오해 받을 소지가 큰데, 일단 나부터 속았다. 이보다는 저자의 문제의식(근대화, 평화문제)에 따라 일본 현대사를 간편하게 탐색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특히 이 책은 전후 일본의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들이 어떻게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일본 정치사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들은 왜 재군비 문제에 사람들이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문제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장집은 한국의 분단문제가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미 종속성과 분단문제가 여타 정치적 문제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국의 정치적 대립은 분배문제, 즉 증세와 감세의 좌우 구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친북 좌파라 공격하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보수우익이라 공격한다.

어찌 보면 일본도 평화헌법, 안보조약등의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55년 체제는 사회당에게 30%의 의회지분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실제로 사회당의 역할은 호헌이었지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일본의 정치가 서구와 같은 계급정치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和田春樹 교수를 볼 기회가 있었다. 노학자는 한국에는 안보조약이나 헌법9조 같은 것이 없으므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 안보와 헌법9조는 없지만, 분단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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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원작의 표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원작은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었다.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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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회과학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4
이시다 다케시 지음, 한영혜 옮김 / 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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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에서 나오는 일본학 총서라는게 있는데, 사실 잘은 모른다. 그런 일본학 서적 시리즈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안다. 그리고 문고판이라 가격이 싸다는 것도 안다.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서 본 책. 그러나 값이 싸다고 내용이 싸구려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본의 사회과학을 소개하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쉬우며 종합적이다.

재밌게 읽었지만 현대 일본 사상사는 물론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얇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적은 분량으로 일본의 근현대 사상사를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 하며 저자는 이 복잡다단한 사회과학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사회과학의 통합과 분열을 중심으로 근 현대 사상사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방법론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의 방법을 1) 역사적으로 2) 일본 사회 그 자체의 발전과 관련지어 3) 종합적으로(개별 분과학문을 넘어선) 4) 일본과 다른 사회와의 비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목적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획의 경우 무엇을 담아냈느냐 보다 무엇을 덜어냈으며 어떻게 묶어냈는가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책 말고 일본 사상사에 대해서 접한 내용이 없으므로 다른 것들에 대해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지성계가 하나의 공통 의제로 관심을 모으고 공동체적인 정서를 공유한 것은 세 번 일어났다. 한 번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의 건설과정이다. 어떤 국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모두가 골몰했던 시기였다. 또한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관료집단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지식인들이 국정에 참여한 주요 이유가 되었다. 이후 관료제가 정비되면서 지식인들은 상아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국가학에 매몰되었던 사회과학도 분과별 분화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인 쇼와 초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사회과학의 독점현상이었다. 이 시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과 러시아 혁명, 일본 공산주의 운동의 성장등과 떼어 놓고는 생각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대 지식인들을 싫든 좋든 맑스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끔 했던 맑스주의의 매력은 보편성, 체계성, 비판성이었다. 맑스주의는 메이지 초기 이후 개별 학문으로 분화해가던 지식공동체를 하나로 다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맑스주의로 인해 비로소 사회과학이 사회현실을 법학, 철학, 역사, 경제, 정치등과 같이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상호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자 했으며, 과학자는 일정한 가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지적 조작을 하는 것임을 밝혔다는 것을 이 시기 맑스주의의 의의로 정리했다.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붕괴된 사회과학이 다시금 하나로 모아진 것은 패전과 점령이후다. 저자는 마루야마의 개념을 빌려 이 시기의 지식인들을 ‘회한(悔恨)공동체’라고 부른다. 戰前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움이 모두를 괴롭게 했으며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경외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 맑스주의가 쇼와 초기에 가졌던 맑스주의의 문제점, 즉 수입성, 교조주의, 내부대립의 문제는 여전했다. 결국 5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회한공동체는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식인들의 통합과 분화에 대하여 뚜렷한 주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통합은 통합대로 분화는 분화대로의 이유와 과정이 있었을 뿐이며 저자는 이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에 비해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한 목소리 내기를 원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일본에 대한 많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문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인 정보의 출전과 심도 있는 독서를 안내한다는 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은 쉽게 쓰여 질 수 없는 책이다. 또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일본의 사상사를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데 성공하였으며 자칫 이해하기 힘든 사상사의 흐름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70년대 까지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저자가 이미 80을 넘은 고령이므로 후속작업이 이루어 질 것 같지는 않다.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가 책을 출판한 것이 80년대 초반인데, 이 당시 원고의 초안을 마루야마 마사오을 중심으로 한 비교사상사 연구회에서 발표하고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연구작업이 하나의 사상사로 정리된 것에 대해 마루야마 마사오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또한 저자인 이시다 다케시는 마루야마의 제자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을 공개된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구의 성패를 떠나서 그런 시도 자체가 존경스러워 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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