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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ㅣ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사회에서 80년대는 사상사적으로 반공의 족쇄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학문연구가 가능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해방감은 80년대 초반의 네오맑스주의의 우회로를 거쳐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극단화된다. 어쩌면 이는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홍역일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은 동구 사회주의 붕괴의 충격을 받으면서 맑스주의의 거대한 균열과 치유할수 없는 타격을 입게된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사상조류는 다양해졌다. 일단 긍정적이다.
사실 한국의 사상사는 외부의 시대흐름과는 대단히 동떨어져있었다. 70년대 서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나기 시작해 80년대 그 전성기를 맞게된다. 서구에서 80년대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기존의 낙관적 근대인식(맑스주의로 대표되는)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였다.
오히려 한국은 70년대 조금씩 비판이론등 네오맑스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광주이후 사상의 흐름은 급진전되는데, 당시 많은 이들이 타이핑 된 T.B.D나 One Step를 몰래숨겨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러알사나 서구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과 이해가 결여된체 어떻게 그런 책들이 읽혔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읽었다고 한다. 그만큼 맑스-혹은 급진적 사상에 대한 열망과 관심이 대단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알튀세와 비판이론등 네오맑스주의를 수입하던 한국은 조금씩 종속이론을 들여오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실제로 들어온 것은 종속이론이 아니라 그것의 일본판임을 지적한다. (난 이러한 지적을 넘어서 저자가 한국의 사상사에서 일본이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 서술해주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이는 제일한국인이라는 저자의 입장에서 볼때 대단히 유리한 연구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종속이론은 사구체논쟁의 시작과 함께... 무진장 깨져버리구... 이후 한국의 변혁이론은... 원전! 원전! 원전! 이 되어버린다. 뭐 그 이후에는, 스탈린과 김일성만 남았다지...
한국에서 사회사상이 왜 이러한 우회로를 겪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보통 반공 일변도의 사회체제와 그 변화를 이야기 한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80년대 중반에 맑스원전이 본격적으로 읽히기 이전의 수입사상들은 모두 맑스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사상들이다. 왜 이런 것들을 접한뒤에 그렇게 교조적으로 흘러갔는지... 그동안 읽었던건 모두 황이었단 말인지. 혹은 이전의 저작들을 읽었던게 아니라... 색인의 '마르크스'만 찾아서 발췌독을 했다는 건지.... 쩝. 여하간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이 좀 더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문헌들과 관련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씌여진 책인만큼 당대의 논쟁들에 대한 분위기 혹은 야사적 배경에 대해서 저자는 잘 알지 못하는 듯 싶다. 때문에 거론하는 사람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어떤 국면에서 어떠한 이론을 전개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아마 이런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국)사람은 이런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 욕하기는 참 어렵다. ㅋ
처음으로 80~90년대의 사상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어떤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다소 횡설수설해보이는 전개도 다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이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우울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학자들은 대체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