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써요, 뭘 쓰라고요? - 김용택 선생님의 글쓰기 학교
김용택 지음, 엄정원 그림 / 한솔수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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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글이 되고, 글은 생각과 태도와 철학이 되어,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생태를 이룬다. 그리하여 글은 하나의 나무를 심고 꿈꾸는 것이다. `좋은 글`은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것이다. 김용택 선생님의 따뜻한 신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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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박원순.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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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디, 박원순의 야심과 우리의 희망이 패배하지 않기를
[서평]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정치의 즐거움>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철학자가 아닌 정치이론가로 불리길 바랐다. 철학자란 '단독자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치이론가는 '한 인간이 아닌,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하는 인류'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렌트에게 인간 삶의 조건이란, 타인과 함께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정치는 절대적 진리의 논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설득과 합의의 열린 공간이며, 정치란 그 열린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하여, 정치적 인간이 '후마니타스(인문학이란 개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인간다움'이란 뜻을 가졌다)'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박원순의 행보를 지켜보며, 광폭의 시대 속에서 정치의 '공공성'을 뜨겁게 열망했던 아렌트가 생각나는 것은 우연일까. 아님, 희망의 전조일까. 

전태일, 조영래, 그리고 박원순

<정치의 즐거움>(박원순, 오연호 지음|오마이북 펴냄|2013년 7월)

'오연호가 묻다' 시리즈의 첫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첫 출간 땐 시리즈 제목은 없었지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직전 진행된 인터뷰는, 그의 서거 직후에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로 출간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두 번째 인터뷰는 조국 교수였고 <진보집권플랜>으로 묶였다. 정권교체를 향한 조국의 구상은 담대했고, 희망이 가물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조국 현상'으로 설렜다. 세 번째 인터뷰는 법륜 스님으로 시대의 화두인 '통일'을 다뤘다. <새로운 100년>에서 법륜 스님은 통일한국 '100년의 미래'에서 '1000년의 꿈'까지 설파했다.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는 끝내 슬픔으로 남았고, 조국의 구상은 벅찼으나 결국 실패했고, 법륜의 꿈은 뜨거웠으나 여전히 아득하다. 지금도 숱한 격동의 찰나로 급변하는 이 땅 한반도에서, 그 모든 슬픔과 희망은 여전히 유효한지, 묻고 싶다. 이번엔 박원순이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2012년 12월 말, 정권교체를 바랐던 48%의 사람들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 박원순을 찾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정치의 즐거움>이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클린턴이 당선되었다. 그가 당선된 직후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운동가였던 넬슨 만델라였다. 클린턴이 가장 존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선구자인 미국의 마틴 루터 킹(1928-1968)의 영향을 받았고, 루터 킹은 노예무역제도 철폐를 위해 20년간 투쟁했던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의 영향을 받았다. 

박원순은 클린턴에서 윌버포스까지를 인용하며 "역사는 앞선 자들을 본받는 사숙(私淑)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 나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박원순을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박원순을 인권변호사로, 시민사회운동으로 이끈 이는 조영래(1947-1990) 변호사다. 그리고 조영래의 가슴에는, 전태일 열사의 뜨거운 죽음이 새겨져 있었다. 박원순의 회고 앞에 오연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태일 평전> 1부 중 한 장의 제목이 '서울에서의 패배'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로 일하고 분신한 곳이 청계천 평화시장 아닙니까? 조영래 변호사가 1970년에 <전태일 평전>을 쓸 때, 그의 눈에는 평화시장이 서울의 모든 문제점을 집약해놓은 곳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조영래의 후배 박원순이 '서울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서울시장이 되어 있네요. 역사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61쪽) 


민주정부 10년 동안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상당수가 정치권의 부름을 받았고, 박원순은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시민사회운동을 고집하며 버티던 박원순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피땀 흘려 일군 상식의 틀과 민주주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치의 후퇴는 곧 시대의 후퇴였다. 

고심하던 박원순은 49일간 백두대간 종주에 오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뇌와 번민의 나날들이었다. 속리산에서 비를 맞으며 종일 울며 걷던 2011년 8월 9일은 '인간 박원순이 정치인 박원순으로 진화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다음은 그날의 산중일기 중 한 대목이다. 

"내가 직접 보고, 만나고, 들었다. 지역과 지역, 마을과 마을을 돌며 애써 희망을 보려하였지만, 그리고 희망의 단서들을 발견하려고 했으나 이 삼천리강토는 아비규환이고 깊은 한숨으로 뒤덮여 있다. 애써 외면하고 또 외면하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억울한 생령들의 눈물을 마주하고 말았다. (중략)

끝없이 쏟아진 폭우로 동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내 자신의 역할과 운명에 대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했다. '이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박원순, <희망을 걷다>; 박원순-오연호, <정치의 즐거움>, 85쪽에서 재인용)

'한반도에 사는 모든 억울한 생령들의 눈물'을 마주한 박원순은 울고 또 울었다. 희망의 단서를 찾고자 했으나, 삼천리 강토는 깊은 한숨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치인 박원순'의 회심이 움트는 순간이다. 그날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만둔다고 말하기 전이었다. 2011년 8월 28일, 종주 41일째 날에 박원순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지지율 50%의 안철수가 지지율 5%의 박원순을 지지하고, 지난한 선거과정을 거쳐 마침내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박원순의 1년 6개월, 이미 실현된 희망의 단초들

박원순은 '절망적인 상황을 이유로' 절망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할 일이 많은 지금은 절망도 사치'인 까닭이다. 그리고 정치가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지난 1년 6개월 간의 시정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다. 오연호가 묻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희망의 출처'였다. 이 책엔 앞으로 실현될 꿈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희망의 단초로 그득하다. 

뉴타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취임 후 첫 3개월을 마치 3년처럼 일하여 '뉴타운 출구 전략'을 마련하였다. 뉴타운을 통해 주민들이 한몫 잡겠다는 투기적 발상을 하게 된 것은, 그 본질을 모른 채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뉴타운으로 지정되면 그 지역민의 70~80%는 쫓겨난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이 장미빛 공약으로 내걸고, 건설업자들이 황금알을 낳는다고 유혹했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뉴타운 지역의 정확한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주민들에게 뉴타운 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박원순은 이를 '작은 치유'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실태 조사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동안 뉴타운 추진 과정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해드리는 작은 치유입니다. (중략) 반대자가 상당히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의 없이 사업이 추진된 것 자체가 폭력이에요. 또 설사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기적인 수법이 농후했어요. 건설회사들이 OS(경호경비용역)를 동원해 주민들을 꼬드겨 동의를 받아오게 했거든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서울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중략) 이런 나라는 거의 없어요. 후진국의 상징이죠. 수도 서울에서 생명까지 앗아간 용산참사가 일어났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146-147쪽)


그 밖에도 박원순은 보도블록 개혁을 통해 서울시 행정의 원칙과 철학, 태도를 혁신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시작하고, 2012년에 1133명, 2013년에 6231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013년 안에 협동조합 지원을 통한 2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서울시립대학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였고,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통해 기후변화세계시장협의회(WMCCC) 의장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전수조사를 통한 노숙자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복지기준인 '서울시민복지기준선'의 발표 및 보건지소의 확충 등을 실현하고 있다. 

고건 시장 시절 6조원이었던 서울시 부채는 이명박, 오세훈 시장을 거치면서 20조로 불어났다. 하루 이자만 20억 원이다. 박원순은 복지 재정을 확대하면서도 부채를 1조 가량 줄였다. 한강르네상스 사업, 한강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던 당시 서울시는, 이를 통해 한강이 서울의 랜드마크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원순의 생각은 다르다. 박원순은 이미 서울에는 랜드마크가 많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북한산. 둘째, 조선의 수도였던 600년, 한성백제의 수도였던 500년의 역사. 셋째, 사람, 바로 서울시민들이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멀리 가지 마라, 우리 안에 어머어마한 재산이 있다! 랜드마크 세우지 마라, 우리 안에 랜드마크가 있다!"(224쪽)

'박원순의 야심', 우려와 희망


박원순은 '하늘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없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체화했고, '전태일과 조영래의 꿈'에 평생을 걸었고, 자신이 가는 길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하며, 시대의 화두를 둘러싼 경쟁이 정치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박원순의 정치 핵심은 "소통과 참여, 거버넌스(Governance, 공공경영)"에 있다. 69만의 트위터 팔로워와 직접 소통하고, 정보 공개와 모든 시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무엇보다 반대자들과의 적극적인 대화와 설득을 통해 거버넌스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그의 '정치적 야심'은 사람에게 닿아 있다. 오연호는 '박원순'적 맥락에서 '야심(野心)'을 "거친 들판에서 실천하며 대안을 만들어낸다"의 의미로 해석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인간 삶의 조건과 후마니타스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의 꿈은, 대부분 박원순의 정치적 야심 속에 충족된다. 물론 이제 겨우 1년 6개월 지났을 뿐이므로, 보다 냉철히 그의 행보를 지켜 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렌트의 텍스트가 실현되는 우리 시대의 정황은, 처음 만난 정치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치인은 내 평생 처음이었으니까.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했다. 허나 박원순은 이렇게 고쳐 말한다. 박원순이 묻고 서울시민이 답한 거라고. 그렇다면 애초 오연호가 묻던 희망의 출처는, 이제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부디, 그의 야심과 우리의 희망이 패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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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연애 + 결혼 + 육아 책 시리즈
김종필.정신실 지음 / 죠이선교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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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서평] 발칙하고 괘씸한 결혼 이야기 <와우 결혼>



부제가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발칙하다. 살짝 마음이 상한다.  


나도 그런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 결혼에 관한 각종 책을 섭렵했고, 무도한 권위를 휘두르던 선배들을 보며 남자의 반성문을 가슴속에 대필했고,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뭇 여성들로 인해 충분히 분노했으니까. 거기다 자매를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결혼예비학교"란 것도 이수했다. 하여, 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 뿐만 아니라, 연인들의 교범이 될 것이며, 나의 일상은 아내의 칭찬으로 채워져야 마땅했다. 그래서 나도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라고 외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그럴 줄 알았다. 


맞벌이로 시작한 신혼 땐, 그래도 티가 덜 났다. 서로가 바빴고, 우린 뜨거웠으니까. 우리의 로맨스는 간혹 명절 때 시댁과 친정으로 오가며 삐걱대는 신경전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내가 전업 주부의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책으로 미처 닿을 수 없는 아내의 실존 앞에 나의 무식은 탄로났다. 이론으로 겸비된 나의 필살기는 곧잘 좌절했다. 육아와 살림의 '일부'를 '봉사'하는 것으로, '간지' 나는 문장을 엮어 연서를 쓰는 것으로, 비상금을 털어 깜짝 이벤트와 선물을 선사하는 것으로 '멋진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야, 나의 각성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결혼, 공부가 필요하다 


<와우 결혼>(김종필, 정신실 지음|죠이선교회 펴냄|2013년 6월)


그런데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보아하니 신혼도 아닌데. 며칠 괘씸한 마음으로 책을 노려보며 뜸을 들이다 드디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문에 쓰인 저자들의 '이실직고'를 발견한 까닭이다.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 충천한 자신감의 출처는 저희 안에 있지 않습니다.(8쪽)


그럼, 그렇지! 살짝 누그러진 마음에 시작한 독서는 소소한 즐거움이 너울거렸다. 단걸음에 달음질하여 책의 마지막까지 질주했다. 이번엔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그들은 '충천한 자신감' 대신 서로를 향한 솔직함과 겸손함을 겸비하려 노력했다. '생각의 차이'는, 치열한 공부와 다른 부부와의 연대를 통해 극복해 나갔다.

 

폴 투르니에는 결혼을 "단순히 한 번 반짝이고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새롭고 경이로운 모험"이라고 정의했다. 결혼은 모험이다. 이 책의 저자 김종필(JP)과 정신실(SS)은, 결혼은 모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공부'라고 정의한다.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하나 됨'을 선언하지만, 선언된 '하나 됨'은 죽음으로 헤어지는 날까지 이뤄가는 것"이므로, 서로를 배우고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공부'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여러 면에서 JP와 비슷했다. MBTI 성격유형 검사 결과가 'INTJ'라는 점도 그렇고(어쩌면 MBTI라는 방식으로 성격유형을 구분하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비슷할지 모른다), 대화 형식으로 나눠 서술된 부분 중 JP의 속내가 그러했다. JP가 SS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거나 억울한 마음을 말할 때,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까지도 비슷했다. 좀 나쁘게 말하면, 비슷했으므로 건질 게 가물었다. 반면, SS의 서술 영역엔 도드라진 밑줄이 난무했다. SS와 달리, 마음이 상하면 침묵 모드에 돌입하는 내 아내의 속마음을 읽는 듯 했고, 간혹 내 탄로난 무지에 부끄러웠다. 


맞다. 공부가 필요하다. 결혼 생활엔 공부가 필요하다. '부부이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정복할 수도 없으므로' 부부는 서로의 존재를 사랑과 인내로 탐사할 필요가 있다. 


보통의 결혼 관련 책들은, 은근슬쩍 중간에 다소 진지하고 경직된 언어로 '부부의 성관계'를 다룬다. 생물학적, 사회적, 신학적 함의를 다루며 결혼의 완성이자 최고 미학으로 그것을 칭송하지만, 독자들의 심기는 그만 차갑게 내려앉는다. (그러니 그 책들이 그리 안 팔리는 것이다!) 근데, 이들은 책으로 중매해, 책으로 연애했던 다소 '재수 없는' 스토리를 들려준 뒤, 결혼에 골인한 다음 이야기부턴 곧장 '부부의 성관계' 문제로 돌진한다. (2장의 소제목은 "공부하는 성에서 즐기는 성으로"이다. 즐기는 성!)


평등한 부부가 되기 위한 훈련은 침실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의식을 통해, 자기 몸을 내어 주는 헌신과 지극한 정성으로 상대와의 합일을 이루는 연합을 실천하는 것이다. 절정의 에로티시즘은 그 헌신과 연합에 대한 최고의 상찬으로 주어진 축복일 것이다. JP는 이 대목에서 "곧장 욕구만을 채우려고 했던" 천박한 남자의 욕망을 성찰한다. 그리고 "용납과 받아들임, 고백과 기댐"을 다짐한다. 남자의 용기는 성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결혼은 합의와 협의를 이루어 가는 과정 


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살아가기'와 '페미니즘적으로 살기'라는 밑그림을 그렸다. 세계관을 공부한다는 것과 그 세계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층위는 사뭇 다르다. '페미니즘적으로 살기'란 명제는, 한국의 지극히 평균적인 '시댁 세상'(오죽하면 '시월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겠는가!)에선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JP와 SS는 종종 싸우고 갈등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남자 독자와 여자 독자들은, 각각의 진영에서 그들의 싸움에 한껏 휘말릴 때, 그들처럼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싸운 만큼 서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JP와 SS가 비교적 원만하게 합의에 이르는 지점은 자녀 양육 문제이다. '준비된 JP'를 '선도적 SS'가 이끄는 모양새다. 그들은 '평등한 부모'를 꿈꾸며, 진정한 양육은 부모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에 의해서'라는 점에서 합의에 이른다. 따라서 양육 기술을 익히는 것 못지 않게 부모 됨을 공부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JP와 SS는 인식의 수용 방식과 소통 방식의 차이에서 '이견'을 발견하고, 상대의 방식을 수용함으로 극복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도 종종 실패하여 다투고 갈등할 것을 짐작한다. 낭만 어린 기대보다는 객관적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지켜야 할 '싸움의 법칙'도 챙긴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사는 방식'에 차츰 합의에 이르고 끈질긴 협의를 도모한다. 


우리는 가정의 영적인 가장은 두 사람이 함께하기, 또는 더 재능 있는 것에서 리더십의 역할을 분담하기에 합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의 비전 파트 가장은 남편이다. 남편은 나무(구체적 사실)보다는 숲(의미, 비전)을 보는 데 탁월하니까. 나는 실무 파트의 가장. 남편이 비전을 제시하면 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그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하면 나름 완벽한 리더십의 통합이다.(85쪽)


배우자는 나의 가장 절실한 타자 



SS는 "'가장이라는 신화'에 당신을 꿰맞추느라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라고, JP는 나는 기껏 "무늬만 페미니스트"였다고 고백한다.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비단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타자를 향한 사랑의 기본이다. 다만 배우자는 나의 가장 절실한 타자일 뿐이다. 특히, SS의 다짐은 이 메마른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성찰이자 결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199쪽)


JP와 SS를 향한 '괘씸'과 '재수 없음'의 혐의는 취하한다. 그 이유는 첫째, "와서 보라!"라고 한 것은, 결국 그들의 연약함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혜이므로. 둘째,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한데, 그들이 제시하는 반짝이는 추천 도서 목록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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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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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데는 한두 시간이면 족하지만, 주인공 `김병수`의 아포리즘을 읽는데는 하룻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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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둔자 (막심 고리키 지음/이강은 옮김/문학동네)

막심 고리키는 20세기 소비에트연방에 저항하며,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민중을 혁명으로 이끈 예술가다. 이데올로기의 폭압에 저항하며 인간다움을 견인하는 것이 예술의 소명이었다. 이 책은 고리키의 대표 단편선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입문서로 충분할 듯 싶다. 


2. 진저맨 (J. P. 돈리비 지음/김석희 옮김/작가정신) 

이 소설은 1955년 제2차세계대전 직후 쓰여진 작품으로, 신성모독적, 음란하고도 비속적 언어, 초도덕성으로 무장한 '진저맨'('생강색 머리의 남자'라는 뜻)의 이야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수백 가지 판본으로 5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그리고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던 그 시대적 정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절대 가치가 무너지며 불안과 허무가 엄습하고, 그 자리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신하던 시기, 바로 그때 '진저맨'은 맹위를 떨친다우리나라엔 다소 늦게 소개되는 느낌이나 김석희의 번역이므로 일단 신뢰하고 환영하는 것이 마땅할 터. 


3. 파과 (구병모 지음/자음과모음)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이 가속도 높은 남성적 필치로 한 '전직' 연쇄살인범이었던 독거 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구병모는 60대 '현역' 여성 킬러를 형상화한다. 환갑이 넘어 '업계'의 대모의 반열에 오른 주인공의 눈에 어느덧 타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김영하의  소설이 파멸되어 가는 한 남성 살인범의 비극을 다뤘는데, 구병모는 평생 청부 살인업자로 살았던 주인공에게 구원을 선사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를 기억한다면, 그 궁금증은 설렘의 또다른 은유다. 


4. 여름 거짓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김재혁 옮김/시공사)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잔상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지독한 고독, 혹은 욕망. 그리고 휘몰아치는 시대의 폭력. 그 간극을 유유히 관통한 슐링크의 서사에 나의 죄의식은 출구를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이번엔 그의 단편집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책은 대부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찰나의 흥분에 가깝다. 슐링크는 다소 난해한 감정이입의 단계를 거쳐 집요한 서사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단편도 그러할까. 그러기를 기대한다. 도서 소개 문안에 이런 문장이 있으니, 좋은 시작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찾고자 거짓말을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정말 행복해지는가"


5.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예판에서 구매했는데 집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서점에서 보았다. 약속 시간이 한시간 넘게 남아 서점에 들러 매대에 놓인(쌓인)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압도적 서사'가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에 맞는 말이다. 언뜻 꽤 오래 전에 쓰여진 그의 전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작처럼도 느껴졌다. 김영하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또 김영하의 절정은 아직 오직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 정도면 훌륭하다 싶다. 책을 읽는데는 한두 시간이면 족하지만, 주인공 '김병수'의 아포리즘을 읽는데는 하룻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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