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닌 것이 없다 - 사물과 나눈 이야기
이현주 지음 / 샨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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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성가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은 그의 동화이다. 이 책은 이레에서 2001년에 출간된 <물物과 나눈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이레에서 붙인 제목처럼, 돌, 쓰레기통, 나무 젖가락, 안경, 잠자리, 손거울, 단소, 빈 의자, 송곳, 도기 등의 사물과 나눈 우화집이다(사물을 의인화하여 대화한다고 어설픈 신학적 잣대를 들이댈까봐 겁난다). 

  

화자인 사람은 어떤 사물을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재단하고 정의하여 개념화한다. 개념화된 사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고 멋대로 다룬다. 그러나 사물들은, 도리어 인간을 부끄럽게 하여 세상 사는 지혜를 가르친다. 세상 사는 이치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 정의로 생명을 가져다 붙이지 말라. 생명은 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호흡할 것이다. 생명은 무릇 그런 것이다. 이 책은 이현주의 동화나 우화가 늘 그러하듯,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읊는다.  


"고맙구먼. 먼저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 주시니... 산다는 게 무엇인가? 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사람 발에 밟혀도 보고, 자네는 밤길에 돌을 밟아 넘어져도 보고... 그러는 게 사는 것 아니겠나? 자네가 넘어져 상처를 입는 것도 그게 다 자네가 살아있어서 겪는 일일게. 그러니, 그래도 굳이 '너 때문에 사는 맛 한번 봤다. 고마워.' 눈 한번 뜨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이 거기 있다네."(15면, '너 때문에'/돌)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을 모아서 주의 깊게 보아라. 그렇게 주의 깊게 볼 때 너는 네가 보는 사물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런 일을 되풀이해라. 습관이 되도록 반복해라."(20면,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쓰레기통)


"그래도 나는 '갈 데까지' 갑니다. 그러니 슬플 이유가 없어요."

"어디가 너의 '갈 데까지'냐?"

"당신도 나와 함께 그리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 묻지 마셔요." 

(38면, '끝은 본디 없는 것이다'/아기 도토리)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참말은 골목 밖에서 들리지 않고,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 제발 너도 나를 믿지 마라."(58면,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마이크)


"자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무슨 냄새든 어차피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는 것이 자네의 숙명일진대, 역겹고 썩은 내가 아니라 향긋한 향내이기를 바라겠네."(119면,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떨어진 꽃)


"자네는 꼭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딱한 종자(種子)로구먼!"(150면, 돌아가는 몸짓/감꽃)


"이현주는 우리의 그런 고민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눈을 맑게 씻어준다. 평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고민했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가 성스러운 목숨들이다. 정말 눈물겨운 생각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있다."(214면, 권정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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