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삶의 주요 변곡점마다 친구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어느 때부터인가 친구가 아닌 직업이나 어떤 사건이 그 변곡점을 차지할 때부터 난 슬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친구를,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였다. 소설 속 소연과 미유가 연주했던 '티타티타'(젓가락 행진곡)의 선율은, 마치 내게도 그 언젠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다. '우리'에서 '나'로 변해가고, '나'는 '우리'를 그리워하지만, 못내 그리움을 극복하지 못한채 나의 영역만 지키고 있다. 속상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슬픔과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외다리 아빠를 버리고 미혼모로 소연을 키웠던 엄마, 그런 언니와 조카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사는 이모 연희, 자식들을 위해 바람 피는 남편을 참고 살아가는 미유의 엄마, 아버지의 높은 기대감에 늘 좌절하며 살아야 했던 언니 은유.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나 그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도 그러하다. 우린 지극히 평범하나 우리의 상처는 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아프다. 작가는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듯 소설을 쓴다. 작가의 문장은 마음의 언어를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 작가의 서사는 시각적 감성을 담보하되 시간의 속성을 한껏 활용한다. 배우고픈 글쓰기다. 


김서령의 단편들을 주로 읽었는데, 장편 소설은 처음이었다. 같은 '1974년'생이란 이유만으로,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처럼 우정을 말해주었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숱한 소설을 읽으나, 추억이 되는 소설은 흔치 않을게다. 요즘 작가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곧 그의 에세이가 나온단다. 반가운 소식이다.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지옥도 같이 시작되는 법이니까.(123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나는 자클린의 말을 빌려 묻는다. 소리 내지 않았기에 아무도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241면)


언젠가 우리는 땅속 지하철에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밖에 뭐가 보여?" "온통 검은 세상." "정말?" "아니……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검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말끄러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우리 모습만 도리어 비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속에서 땅 밖의 세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한동안 가두어지는 것. 땅 밖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몸이 꾸물꾸물해지는 불안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쯤 우리도 다 알아, 라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주눅.(285면)


나는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의 로비에서 나의 한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2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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