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10주년 기념판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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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오히려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인 셸리 케이건은 먼저 죽음을 정의하려고 한다. 예로부터 죽음을 정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크게는 두 가지가 있다.

1. 육체-영혼 이원론 :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2. 물리주의(일원론) : 사람은 오직 육체다.

1은 종교적(특히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죽음이란 육체의 끝일 뿐이고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실상 1의 관점에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육체의 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2의 관점에서 육체의 끝은 곧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 저자인 셸리 케이건은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당신이 죽었다면 곧 죽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말하는 내용은 얼마 안 되는데, 분량의 대부분을 당연한 것에 대한 사변적인 논증에 쓰고 있다. 겉으로만 요란한, 실제로는 다 아는 맛인, 그런 음식점 같았다. 말이 길다는 건 무지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심적인 위로가 된다는 이유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에서 철학의 유용함과 무용함을 동시에 느꼈다. 모든 생각을 근거에 입각해서 한다는 면에서 철학의 유용함을 느꼈고, 심적인 위로를 무시하는 저자의 오만함이 실제 세상과 괴리되어 있는 데에서 철학의 무용함을 느꼈다.

나는 근거 따윈 없어도 심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는 예술이나 종교에서 많은 심적인 위로를 받으며, 모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것이 명제적 참(객관적 진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예술(종교)을 없는 것으로 취급해야만 하는가?

피카소의 큐비즘은 실제 대상과 같은 모습이 아니므로 거짓인가?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으므로 예수는 거짓말쟁이인가?

예술(종교)은 사실에 대한 탐구가 아니다 그저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저자의 입장이 굉장히 재수 없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위안)을 느끼지 못하고 사실(참)에 천착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가 바라는 삶의 자세가 아니다. 사람들이 예술(종교)을 믿는 이유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삶의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믿음을 단지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헛된 것으로 치부하는 자세는, 정말 재수 없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죽음에 대해서만큼이나 삶에 대해서도 골몰했다.

삶의 고통(두려움)은 변화(죽음)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온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가정으로 사는 게 최선일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기준은 여러 가지기 때문에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일에 국한될 게 아니라, 그걸 함으로써 자신이 정말 보람을 느낄 일이어야 할 것이다.

삶은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한 번뿐인 기회이다. 나 또한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간 의식 없는 물질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지만, 그 전까지는 부모님께 선물 받은 삶을 소중히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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