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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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60세의 주인공이 자신의 지난 30년 간의 교수 생활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공부를 등한시했던 젊은 날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급습을 받고 개과천선해서 지방의 대학으로 간다(베를린->지방). 거기서 영문학 교수님을 만나고 학문의 열정(을 가장한 교수님을 향한 인정욕구)을 불태운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묘하게 비밀에 싸여있는 듯하다. 처음 만났을 때 교수님은 굉장히 활기찬 모습이었는데, 다음에 만났을 땐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명력이 전혀 없어보이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갑자기 며칠 동안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기도 한다.

주인공은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학문을 시작하는데, 교수님이 이런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을 밀어낸다. 그래서 주인공은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에 괴로워한다. 또한 교수님이 가진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또한 교수님에게는 젊은 부인이 있는데, 이 부부는 데면데면한 것이 마치 남을 대하듯이 서로를 대한다. 이렇게 교수님과 정서적으로 단절된 그의 부인은 수영 같은 육체 활동을 할 때만 진솔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주인공을 지속적으로 경계하며 거리를 둔다.

교수님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젊은 부인과 수영장에서 만나며 어떤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된다. 주인공과 교수님 부인과의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서, 둘은 결국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주인공은 교수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얼마 뒤 교수님이 자신과 주인공 사이에서 나온 학문적 성취(논문)을 축하하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문밖에서 부인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그 자리를 피하려 한다.

교수님은 결국 부인과 주인공이 불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교수님은 주인공을 사랑한다고 갑자기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 얘기를 해준다. 동성애자로서 살아온 힘든 삶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는 교수님은, 이제 친구로서 이별하자고 하면서 작별 키스를 주인공에게 한 뒤 어서 가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그 뒤로 교수님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며,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교수님에게 가장 큰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감정의 혼란>이라는 제목답게 혼란스러운 책이었다. 동성애가 소재라는 걸 전혀 모르고 봐서 더 큰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경우에, 즉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적 취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삶이 정말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이성애자다. 이 말인즉슨, 짝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상대와 내가 맺어지게 될 가능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성 간 사랑은 공공연하지 않다. 매우 비밀스러우며, 만약 상대방이 나와 같은 취향을 갖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가능성도 있다. 즉 동성 간 사랑의 감정은 두려움이 근간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두려움과 사랑, 이 두 감정의 혼합이 바로 동성애자의 사랑이며, 그래서 <감정의 혼란>이라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성적 취향은 개인의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계속해서 쌓이면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부정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교수님은, 진정 사랑하는 주인공을 위해서 당당하게 이별하는 쪽을 택한다. 만약 이 둘이 이성애자고, 남자와 여자였다면, 자연스럽게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됐을 것이다. 마치 교수님 부인과 주인공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을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주관(특질)이고, 어떤 특질을 타고 태어날지는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오직 우연에 의해 주어질 뿐이다. 삶이란 것은 이리도 잔인하다. <감정의 혼란>을 통해 나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대리 체험으로써 평소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진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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