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스로 해야만 할 일을 한 거요. 오랫동안 계속 별러 온 일이었지."
"우리는 책 방화수이기도 하지. 일단 읽은 책은 태워 버립니다. 발각되면 안 되니까.
머릿속에다 감춰 두는 게 제일 안전하오. 다른 사람이 보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듣게 만들 순 없소. 자신들이 필요할 때 와야 하오.
"‘사람들은 전부 자신이 죽을 때 뭔가를 남긴단다. 아이나 책, 그림, 집, 벽이나 신발 한 켤레, 또는 잘 가꾼 정원 같은 것을 말이야. 네 손으로 네 방식대로 뭔가를 만졌다면, 죽어서 네 영혼은 어디론가 가지만 사람들이 네가 심고 가꾼 나무나 꽃을 볼 때 너는 거기 있는 거란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네 손이 닿기 전의 모습에서 네 손으로 네가 좋아하는 식대로 바꾸면 되는 거란다. 그저 잔디를 깎는 사람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과의 차이란 바로 매만지는 데 있지. 잔디를 깎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정원에 있지 않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있단다.
책을 불태우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불붙은 성냥개비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2년 전 쯤에 바사(Vassar) 여자 대학의 한 진지한 숙녀가 편지를 보내왔다. 나의 『화성 연대기』를 우주 신화의 한 실험으로 너무나 재밌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덧붙이기를,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더 많은 여성캐릭터와 역할을 집어넣어서 작품을 새로 쓴다면 어떻겠는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라고 했다. 그보다 몇 해 더 전에, 나는 역시 같은 책과 관련해서 ‘왜 작품 속 흑인들이 죄다 그렇게 비굴한가, 왜 다시 쓰지 않는가.’라는 내용의 우편물을 몇 뭉텅이만큼 받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비슷한 즈음에 남부의 한 백인은 내게 적어 보내길 내용이 흑인에게 너무 호의적이라며 이야기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배알도 없이 내 작품들이 책도 뭣도 아닌 꼴로 책장에 가도록 고분고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네 심판들이여, 부디 외야석으로 모두 돌아가길. 링 위의 주심들도 가서 샤워를 하시길. 이건 나의 게임이다.
반면에 저는 정치적인 것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의 모든 분위기를 본 거죠. TV와 라디오의 영향, 혹은 교육의 빈곤 등등. 학교 선생들이 더 이상 독서를 가르치지 않는 세상을 전망할 수 있었어요. 배우는 게 적을수록 책도 더 멀리하게 되겠죠.
문제는 교육이지 정치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책읽기를 싫어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랬지요.
독서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
0.5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장면들이 4560개나 있습니다. 카메라가 가만히 정지해 있질 않아요. 그러니 당신이 생각할 틈을 전혀 주지 않죠. 그렇게 폭격하듯이 뭐가 계속 쏟아지는데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등장인물들이 당신을 써야만 해요. 그들이 당신을 컨트롤하는 겁니다. 플롯도 그들이 짜요. 제가 컨트롤한 적은 없습니다. 전 그냥 그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살도록 놔둡니다.
비티가 어떻게 해서 책을 불태우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만의 사연이 있잖아요. 한때 독서가였지만 인생에서 몇 번의 위기를 겪은 뒤에, 그러니까 어머니가 암으로 죽고, 아버지는 자살하고, 연인과는 헤어지고, 그리고선 책을 펼치니 공허함 뿐이었죠. 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에 반기를 들고 불태우기 시작한 겁니다.
하루 일과를 꼬박꼬박 해 나간다면, 주말, 월말, 그리고 연말에는 당신이 했던 모든 일들에 만족을 느낄 거라고 믿습니다. 그건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지 그릇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니 행동을 잘 하면, 매일 글을 잘 쓰고, 잘 움직이면, 연말에는 스스로에게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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