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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화씨 451 - 환상문학전집 12 ㅣ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7월
평점 :
책을 불태우는 세상. 주인공은 ˝방화수˝인데, 책에 불을 붙여서 없애는 직업이다.
그들은 왜 책을 불태우게 됐을까?
1. 짧고 말초적인 것을 찾음
2. 재미 없는 것은 내팽개침
3. ‘총명‘한 이들에 대한 질투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책 불태우기 운동˝이 시작되어, 법적으로 책을 읽는 게 금지되고 만약 걸릴 시 책과 집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사람들은 벽면 디스플레이, 귀마개 라디오(이어폰 같은 거), 수면제(약물)을 즐기며 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부분에서 약간 <멋진 신세계>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같은 느낌이 난다. 기술을 경계하는 sf소설 특유의 분위기.
요약해놓으니 엄청 재미있는 소설 같은데, 사실 읽으면서 노잼이었다.
왜냐하면 작품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성이나 연출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서사도 뚝뚝 끊어져서 뭔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번역의 문제인지 묘사도 무척 이해가 안 된다. 전반적으로 심상화가 잘 안되고 몰입이 잘 안되는 책이었다.
사실 이건 내가 이전에 읽은 책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미시마 상 소설(<달리는 말>)은 정말 잘 쓴 소설이니까(주제는 역겹지만).
<달리는 말>이 작품적 완성도는 높은데 주제가 저열하다면,
<화씨 451>은 주제는 괜찮은데 작품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
작가의 다른 책 <화성연대기>에서는 잘 못 느꼈는데, 레이 브래드버리는 확실히 단편을 훨씬 더 잘 쓰는 것 같다. 장편을 타이트하게 끌고 나갈 능력은 안 되는 거 같다.
˝(<물랑루즈>라는 영화에는)0.5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장면들이 4560개나 있습니다. 카메라가 가만히 정지해 있질 않아요. 그러니 당신이 생각할 틈을 전혀 주지 않죠. 그렇게 폭격하듯이 뭐가 계속 쏟아지는데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영상의 문제점은, 장면이 계속해서 변하기에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책을 빼앗고 싶거든 그것을 태울 게 아니라, 더 재미있는 것들을 계속 주면 된다. 영상의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현대인들 대부분은 글자 보는 것을 좋아한다. 커뮤니티와 뉴스를 탐독하는 것도 다 글자 보는 일 아니던가.
다만 사람은 새로운 것에 더 마음을 뺏기기가 쉬우므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올라오는 인터넷 공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공감됐던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계속 치약 광고가 나와서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요즘은 정말 어디든 디스플레이가 있고, 소리가 나온다. 가만히 있는 무음의 책에 정신 집중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어디든 끊임없이 광고(정보)가 주입되는 세상은 우리의 ˝여가˝를 약탈해간다. 그 결과, 책을 읽거나 생각할 시간(여가 시간)이 부족해진다.
˝학교 다닐 때 자네 반에서 특별히 ‘총명’했던 친구, 다른 애들이 납인형처럼 멍하게 앉아 있을 때 열심히 손들고 대답하던 친구가 있지 않았던가? 다들 그 친구를 미워했겠지.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 몰려가서 때리고 짓밟았겠지.
...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열등감에서 책을 불태우는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책을 읽는 행위에 과한 우월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책 읽는 사람은 우월하다˝는 메세지가 너무 구리다고 생각한다. 우월감은 열등감의 그림자다.
현대에 들어 독서율이 낮아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독서를 기피하는 게 아닐까?
결국 책은 ˝자기가 좋아서(재미있어서)˝ 읽어야 한다. 사실 뭐든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