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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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과 힘 앞에서 세상은 얼마나 잔인한가?

싱글턴이 파워포인트를 조작하여 다음 자료로 넘겼다. 갑자기 나타난 처참한 사진들에 남자들은 깜짝 놀랐다.

인간의 시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젊은이, 노인, 남자, 여자, 손을뒤로 묶인 채로 죽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목을 잘려 몸만 남은 사람도 있었다.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행위옮긴이)다. 현재콩고에서는 ‘제1차 아프리카 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사망자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400만 명에 이르지. 정전 협정이 여러 차례 무너졌고 지금도 전투가 끝날 기미는 없다."

네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어렴풋한 의심을 읽었는지 싱글턴이 말을 이었다.

"이것은 실제 이야기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은 보도하지 않는데, 말하자면 보도 차별이다. 선진국 보도 기관은 아프리카에서 사람이 몇 사람 죽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현지에서 빈발하는 대학살보다 고릴라 일곱 마리 죽은 사건이 더 크게 보도되는 형편이다. 뭐, 확실히 아프리카인은 멸종 위기종이 아니니까."
싱글턴의 굳은 표정이 움직여서 냉담한 미소로 변했다. 이 남아프리카의백인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옮긴이) 지지자임에 틀림없었다.
"콩고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은 구시대적인 식민지 지배가 남긴 화근이다. 식민 종주국이었던 벨기에의 민족 정책이 그때까지 공존했던 민족 간에 적대심을 심었고, 투치족과 후투족(르완다의 주요 부족들옮긴이)이 대립하게 되었다. 종주국이 자의적으로 투치족을 우수한 민족이라고 정해 우대한결과 후투족의 반감을 샀다. 이 민족들 사이에 증오가 쌓이고 쌓여서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전란에 대해서는 예거도 잘 알고 있었다. 후투계 대통령의 비행기가누군가에게 격추된 사건이 민족 대립의 시발점이 되었고, 폭주한 후투족은투치족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이 학살을 선동하고 수많은 일반인들이 손도끼나 곤봉 같은 무기를 들고 이웃을 죽이기 시작했다.

공격의 창끝은 맨 처음 여자와 어린이들에게로 향했다. 투치족을 쉽게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신속하게 살인 집단이 조직된 배경에는 민족 대립뿐만 아니라 습격에 가담하지 않으면 설령 후투족이더라도 살해당할 거라는 위기감이나, 투치족을 죽인 사람에게는 농장이 수여되리라는 등의 허위 정보가있었다. 극단적인 학살이 일어났다. 희생자 중에는 무딘 날붙이로 전신을난도질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돈을 주며 총으로 머리를 쏴 달라고부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게다가 많은 후투계 주민까지 투치족으로 오인받아 죽었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된 지 100일 뒤, 투치계 세력이 외국에서 군대를 조직해 반격에 들어가자 겨우 사태가 진정되었지만 이미 전 인구의 10퍼센트에달하는 10만 명 이상이 살해된 상황이었다.
싱글턴이 냉소를 머금고 브리핑을 계속했다.
"르완다는 투치족 정권이 들어서자 평화를 되찾았다. 그 덕에 제노사이드를 없던 일로 하자는 역사 수정론자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이 대학살이제1차 아프리카 대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파워포인트 도면이 콩고 주변의 확대도로 변했다. 싱글턴이 손에 든 레이저포인터의 빛이 동쪽 르완다와 서쪽의 콩고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르완다 학살의 주모자였던 후투족 일파가 이웃나라인 콩고로 숨어들어거기서 다시금 국경을 넘어 공격했다. 콩고 정부가 이를 묵인하자 르완다는격노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대립 구도는 르완다 대 콩고로 바뀌었다. 르완다는 같은 투치족 정권인 우간다와 손잡고 콩고의 독립 정권 타도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콩고 동부의 반정부 게릴라에게 군사 지원을 해서 반란군들의 무장 봉기가 일어나도록 했다. 이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서쪽에 있는 수도까지 침공했고 독재자를 몰아내 신정권을 수립했다. 새 대통령 자리에 앉은 사람은 르완다의 지원을 받은 반란군 수장이었다. 여기서 끝나나 했지만 그 후부터 이전투구가 시작되었다."
스크린에는 이어서 세 장의 같은 지도가 나란히 있는 페이지가 나왔다.
콩고 각 지역이 어느 무장 집단의 지배 아래 있는지 그 추이를 보이는 그림이었다.
"새 대통령은 르완다의 괴뢰 세력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때까지 지원해줬던 투치족을 배신하고 동부에 남은 후투족 무장 그룹과 손을잡았다. 말할 것도 없이 르완다가 또 다시 격노했지. 그래서 우간다, 브룬디와 함께 콩고를 침공해 새로운 독재자를 쓰러뜨리려 했다. 새 정권은 궁지에 몰리자 이웃나라에 조력을 구해서 차드를 비롯한 인근의 여러 나라를

우방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1998년, 아프리카의 10여 개국 이상이 관여하는대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싱글턴이 말을 끊었기 때문에, 예거는 손을 들어 발언 허가를 구했다.

"분쟁 당사국에 그런 큰 전쟁을 유지할 만큼의 재력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싱글턴은 아까 지었던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스폰서가 붙은 전쟁이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전쟁의 진짜 목적이 나타났다. 콩고에 잠든 대량의 지하자원, 다이아몬드, 금, 컴퓨터에 쓰이는 희귀 금속, 그리고 유전. 콩고로 침공한 놈들은 지배 지역의 광물자원을 붙들고 있기 위해서 피투성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100여 개나 되는 기업들이 한몫 잡으려 여기에 끼어들었다. 광산 회사 같은 곳은 자원을 약탈하는 쪽에 전쟁 비용을 원조하고 콩고물을 받아먹고 있다. 르완다가 자국 산출량을 상회하는 광물을 유출하는데도 선진국은그것이 약탈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사들인다. 휴대 전화에 쓰이는 콜탄(푸른 금이라고도 불리는 콩고 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희귀금속옮긴이)을 얻기 위해수십만 명의 콩고인이 살해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이나 러시아 두 대국은 겉으로는 콩고 정부를 지지하면서 르완다나 우간다에도 자금을 원조하고 있다. 그게 누가 승리하더라도 지하자원의 권익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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