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가르쳐주세요!" 축구를 공놀이로만 생각하던 녀석들에게 먼저 보험처럼 다짐을 받아두었습니다. "축구, 말도 못 하게 힘들어. 정말로. 그래도 할래?" 아이들의 대답은 "좋아요!"였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물었지만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보자. 그때는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행복의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무척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왕년에 뭘 했든 처자식 입을거리먹을거리 챙기지 못하는 놈팡이가 될 바에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게 중요했다. 낮은 자세로 삶을 대해야 했다. 그러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공사판 막노동은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개똥밭에서 구를 수도 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그게 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