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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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선은 권리에 앞선다고 말한다.

좋은 삶(선)을 정의하지 않고서 권리만 정당화하는 건 힘들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몸은 개인의 것이니 어떻게 하든 자유다. 그렇다면 자살이나 성매매, 더 극단적으로는 계약적 식인도 자유주의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선을 정의한다는 것은 가치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개인의 몸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과 자유의지가 있기에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살은 개인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기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이처럼 선은 권리에 앞서며, 정의를 말하려면 먼저 선을 논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 또한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80년도 넘은 문제이기에 그 당시의 가해자들은 다 죽었고, 그 후손들만 남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후손들은 우리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을까?

개인은 공동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독일 지도자들은 아직도 유태인 학살 문제가 나오면 사과하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개인은 공동체의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은 공동체와 서사적으로 엮여 있기에 그 둘은 한 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3. 공동체가 공유하는 ‘선’ 관념은 반드시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동체주의자다. 공동체주의자는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 있기에 공동체가 공유하는 선 관념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집권했다. 왜? 공동체가 원하는 것을 교묘하게 조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다만 위기의 시대에 ’공동 선’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에 히틀러 같은 사람에게 표를 준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가 공유하는 ’선‘ 관념은 반드시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4. 정치적 숙고를 통해 ‘공동 선’을 판단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만이 아닌, 숙고를 통해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공동 선’을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듯 저자는 공동체주의자 인데, 공동체주의자는 자유주의자와는 정 반대적 성격을 띤다.

자유주의자가 개인의 권리를 옹호한다면, 공동체주의자는 (공동)선을 옹호하는 식이다.

저자는 빈부격차로 인해, 공동의 영역(공립학교, 군대, 대중교통, 공원, 도서관 등)이 축소되고 쇠락하는 것을 걱정한다.

예를 들어 부자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필요가 없고, 경찰도 사설 경비로 대체하며, 아파트 안에 공원과 도서관, 심지어 학교까지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일반적인 대중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적 영역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 할 것이고, 이는 재정 적자를 불러오게 되어, 위의 공동의 영역이 점차 쇠락하고 열화되어 가는 데 일조하게 된다. 즉 공동체의 와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치적 숙고를 통해 공동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숙고함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가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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