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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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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살 때'가 좋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행위가 좋다. 책이라고 하는 키워드를 고르는 느낌. 그때 '' 하고 떠오르는 것들이 좋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이너』 중에서

 

나가오카 겐메이처럼 나 역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확실히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집에 잔뜩 쌓여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북디자인이 예뻐서, 기획이나 컨셉이 재밌어서…' 등등의 이유로 나는 오늘도 책을 산다. 뭐랄까, 책을 사는 행위만으로도 이미 그 책이 나에게 흡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하는 책은 바로 ''과 관련된 책들. 작년에 출간된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이나 가토 슈이치의 『독서 만능』처럼 말 그대로 책과 관련된 책에서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꼽은 어린이책 50권을 소개하는 『책으로 가는 문』이나 박웅현 ECD 『책은 도끼다』처럼 내가 애정하는 인물들이 쓴 독서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책방』『오래된 빛』처럼 서점을 다룬 책에 이르기까지, 책과 관련된 책이라면 분야를 불문하고 모두 모으고 있다. 그런 내게 『책이 좀 많습니다』는 반드시 '사야'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판 『장서의 괴로움』이랄까. 『장서의 괴로움』에 나왔던 것처럼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집이 무너졌다거나 하는 만큼의 장서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우리네 주변 이웃들의 서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편집자로 2, 서점인으로 3, 책을 만들고 팔면서 일해온 지난 5년 동안 내 책장에는 700 여권의 책들이 쌓였다. 내가 만약 『책이 좀 많습니다』의 인터뷰이가 되었다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생각하면서 읽어나가니 더욱 재미있게 읽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서재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기에, 서재 관리법이나 독서법과 관련해 참고할 부분도 많았다.

 



『책이 좀 많습니다』의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서재 관리법

 

P.80 / 기자 서찬욱 

그이가 말하는 책 정리 방법이란 일단 관심이 있는 철학자를 중심으로 그 사람이 쓴 책이나 다른 사람이 그 철학자에 관해 쓴 책을 따로 분류하고, 그렇게 나눈 덩어리를 다시 활동하던 시기별로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나눈 다음 분야별로 큰 흐름을 갖고 다시 배치한다. 이를테면 철학사, 인식론, 역사철학, 윤리학 따위를 각각 떼어 놓는다. 그밖의 책들은 '사회과학 일반'이라는 느낌으로 책장 한쪽 공간을 차지한다.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따위의 책들이다. 문학 작품은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번에 모아 따로 정리한다.

 

P.148 / 선교 정보 전문가 김재서 

책을 사면 한두 번 읽고 나름 판단을 합니다. 이걸 내가 계속 갖고 있으면서 써먹을 책인지, 아니면 몇 년이 지나도 그냥 꽂아두기만 할 책인지를. 고민을 해본 다음 오랫동안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은 과감하게 다른 사람에게 줘요. 내가 갖고 있으면 몇 년 동안 책장 안에서 빛을 못 볼 운명인데, 다른 누군가에는 당장 필요한 책일 수도 있거든요.

 

P.241 / 바리스타 김석봉 

가끔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재미있게 정리를 해놓을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여기 보다시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옆에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두는 식이죠. 두 책을 읽을 때 느낌은 완전히 다르지만, 꽃과 꽃이니까요. 그냥 옆에 나란히 두고 본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책이 좀 많습니다』의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독서법

 

P.17 / 국어 교사 허섭 

허섭 씨가 책 읽는 방법은 유별나다. 어떤 책에 한번 관심이 생기면 거기에 관련한 책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사 모아서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읽자는 생각이 들면 월탄 박종화는 물론이고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이 쓴 것까지 다 사서 읽는다. 심지어 일본사람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그린 60권짜리 만화책 『전략 삼국지』 세트도 갖춰 읽었다. 이렇게 폭넓게 읽으면 책에서 얻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는다.

 

선교 정보 전문가 김재서

P.151

관심사에 따라 책을 정해서 다섯 권을 동시에 읽어요. 한 권당 평균 10장씩, 모두 합쳐 50장 정도를 매일 정해놓고 집중해서 읽는 거죠. 그렇게 읽으면 한 권씩 읽을 때보다 생각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어느 한 가지에 빠지는 위험이 적어서 좋아요.

P.151-152

특히 『코스모스』는 대학 다닐 때하고 20년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읽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책을 한 번 읽고 그냥 덮어두면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책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드는 책이지만, 그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간다는 말이 맞다.

 

P.168 / 대안 학교 교사 전희정 

그래서 책을 읽으면 맨 앞 속지에 느낌을 간단하게 적어요. 그림으로 그려두기도 하죠. 다음에 그 책을 또 읽으면 이미 적어놓은 것 뒤에 이어서 적거나 그리고요. 그렇게 하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 매번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고, 책이라는 게 정보를 얻는 것만 목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죠.

 

P.200 / 자유기고가 전영석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은 여러 번역본을 구해서 비교하며 읽었어요. 『위대한 개츠비』는 김욱동 씨 번역, 『호밀밭의 파수꾼』은 공경희 씨 번역이 탁월했어요. 책을 읽을 때, 특히 번역서를 읽을 때는 줄거리만 생각하지 말고 더 깊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몇 가지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으면 좋아요.

 

P.284 / 수학 교사 조종호 

특히 책을 읽는 한편으로 그 책을 평가한 서평도 함께 읽으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여러 시각에서 쓴 서평과 평론집을 읽는 경험은 나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하고 함께 책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반대로 책을 읽으면 늘 그 책에 관해 누가 어떤 평가를 하는지 궁금해요. 그래서 서평을 많이 찾아봅니다. 저하고 같은 생각을 하든 완전히 다른 방향이든 상관없어요. 책 한 권을 읽은 다음 그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니까요."

 

P.324 / 대학원생 이시욱 

요즘은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기 전에 한번 생각을 합니다. "정말 중요한 대목인가?", "만약 누군가 내 책을 보고 왜 여기에 표시를 해뒀냐고 묻는다면 잘 대답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는 거죠.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 처음 초대되어 그들의 서재를 살펴보며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추측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책장의 책들만으로도 주인의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지 미스터리, 고양이, 요괴와 도깨비에 관련된 책 등등, 책에 등장하는 23명의 인터뷰이들의 사적인 셀렉션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인 헌책방지기인 윤성근님이 인터뷰이의 셀렉션과 어울리는 추천 도서를 골라주니, 한 권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가지 뻗어나가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단순히 애서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넘어서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쁨이 큰 책이었다. (이 책을 덮은 뒤에 인터넷서점 장바구니가 더욱 묵직해졌다는 것이 함정.)

 

덧.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건 편집에 대한 부분인데, 오탈자 실수가 종종 눈에 띄었다. 마지막 인터뷰이인 '대학원생 이시욱' 원고에는, 기존의 톤앤매너와 다르게 문답 형식으로 인터뷰가 정리되어서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고. 애서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인만큼,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을 것인데,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니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 2쇄에는 이런 점들이 반영되어 좀 더 꼼꼼한 책으로 나와주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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