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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 우리 딸을 토닥여줄 엄마의 그림 편지
안노라 지음 / 해토 / 2021년 6월
평점 :
우리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미술과 인문학 이야기~♡
책을 펼치며 처음 든 생각은 '책에 나오는 작가의 자녀인, 누가 느루는 좋겠다.' 였다. 엄마가 너무나 교양넘치고, 글을 읽을수록 사람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나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매개로 해서 삶의 지혜, 미술사, 역사, 철학, 인문학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작가의 안목과 지식에 탄복하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그 친절한 목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미술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보았을 그림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에 작가의 시선과 상상력을 더해서 들려주는 이야기,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림의 이야기가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철학적인 사색을 더하게 된다.
다리가 있다는 건 걸을 수 있다는 것이고, 걷는다는 것은 의지와 방향을 갖는다는 것 아닐까? '머묾'과 '떠남' 사이에 '행함'이 있고 동서남북 외에도 '마음의 방향'이 있으니까. 인간은 걸음으로써 내면의 파장을 고스란히 다리에 전해주지. 결국 인간의 다리라는 것은 자신을 자신에게 데려다주는 메신저인지도 몰라.(p.11)
나는 이십대 초반에 파리에서 살았다. 그리고 꽤 오랜시간 매일아침이면 로댕박물관이 있는 전철역에서 내려 담너머로 로댕의 작품이 보이는 정원을 흘깃거리며 출근을 했다. 현실이 쨍한 사진과 같다면 그림은 화가의 프레임과 필터로 걸러졌기에 그 아름다움이 다른 거겠지? 그런데 그 그림을 바라보는 그녀의 프레임과 필터는 또다른 시각으로 화가의 인생을, 작품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걸러준다.
책에 나온 미술가들이 파리에서 활발히 활동했기에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레 나의 젊은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도 엄마의 입장보다는 편지의 수신인인 느루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느루야, 만일에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이다."하지 않고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 죽이던 당대를 사는 한 여자로서 "싫어요."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략)
수태고지를 그린 많은 화가들 중, 엄마 마음과 같은 화가가 있었던가 봐. 신의 말씀에 끄덕이는 마리아가 아닌 "어쩌면 좋아." 하듯 놀라서 도망가는 마리아를 그린 그림도 있구나. 이 화가의 너무나 인간적인 마리아를 만나보겠니?..(p.123)
작가가 이 그림을 통해서 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무엇일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어서 책장을 서둘러 넘겼던 기억이 있다.
잘 익은 원두의 빛깔을 닮은 책표지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잔의 커피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고 배우는 것을 에스프레소를 닮은 전공서적을 통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감상의 즐거움을 배우고 싶은 거라면 쓴 에스프레소 보다는 깔끔한 아메리카노, 부드러운 카페라떼나 시나몬향 솔솔 나는 카푸치노, 한 스쿱의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즐기는 아포가토 같은 책을 통해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
그림이 에스프레소라면 안노라 작가의 일상과 사유, 그리고 누가 느루에 대한 사랑은 한 펌프의 시럽, 시나몬파우더, 휘핑크림, 달달한 바닐라아이스크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근사한 바리스타가 되어 한 꼭지의 이야기마다 대단한 메뉴로 선보이는 그녀의 책은, 혼자읽기 아까운, 그래서 따스함을 지혜를 교양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느루야, 멋진 엄마를 둔 네가 부럽다. 그리고 이 편지를 세상의 많은 느루들에게 선물할 수 있게 책으로 엮어준 엄마에게 고맙다.